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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입을 열어 전하게 하소서 (잠 31:7-9, 엡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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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을 열어 전하게 하소서

한국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상필이란 백정이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양반이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왔습니다. 먼저 온 양반이 “얘, 상필아, 고기 두 근만 다오” 했습니다. 최상필은 “예” 하더니 고기를 잘라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다른 양반이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백정이지만 나이 든 사람인데 마구 대할 수 없어 “최서방, 고기 두 근 만 주시게” 하였습니다. 최상필은 “예” 하더니 큰칼로 베어 듬뿍 주었습니다. 먼저 왔던 양반이 최상필에게 불평을 하였습니다. 같은 두 근인데 내 것은 작고 저 것은 크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진 것입니다. “예, 손님 고기는 상필이가 자른 고기이고, 저 어르신 고기는 최서방이 자른 고기입니다”. 먼저 온 양반은 할 말을 잃고 돌아갔습니다. 입은 잘 열어야 덕을 봅니다.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어떤 입이 복이 있을까요? 어떤 말이 상급이 있을까요? 어떤 입이 상급이 클까요? 복음을 전한 입이 복이 있고, 복음을 전한 말이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이 복음을 전하는 입이 되어 하늘나라의 복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입은 마음의 하수구이고 말은 배설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쓰레기로 차 있을 때 우리의 말은 배설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복음이 차 있으면 우리의 말은 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이렇게 패러디해봤습니다. “입은 마음의 맑은 샘이고 말은 생명의 열매이다”. 우리의 입을 열 때마다 샘물 같은 영생의 말씀이 솟아 우리의 말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놀라운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입의 역할은 여러 가지입니다. 먹는 일을 합니다. 말하는 일을 합니다. 숨 쉬는 일을 합니다. 입맞춤을 합니다. 얼굴의 표정과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입은 참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과 말하는 것입니다. 
  
입은 칭찬도 하고, 욕도 합니다. 욥기 2:10에는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한 말에 대한 욥의 태도를 말합니다. 욥의 아내는 입술로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으로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고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입은 저주와 축복이 함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이 애급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모압왕 발락은 두려워하여 선지자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저주하라고 데려왔는데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민수기 23:12에는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합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입의 말씀이 축복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라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천사장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로 사가랴는 입이 닫혀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을 낳자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자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은 “우리 집안에 그런 이름이 없다”고 하였지만 그는 천사가 준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하여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의 말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였을 때 비로소 입이 열렸습니다. 왜 입이 닫힙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격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을 때에 입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때, 엉뚱한 말을 전할 때 입이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청각장애인들이 모이는 ‘영농교회’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 가서 설교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찬양대는 열린 입으로 할 수 없으므로 수화로 합니다. 찬양대이지만 목소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찬양대입니다. 찬양대원보다 수화를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전파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가, 이런 기도의 부탁이 우리의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9에는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부탁하는 기도의 제목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입을 열어야 하는 까닭은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비밀이지만 이미 공개된 비밀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미 비밀이 아니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비밀입니다. 지금도 복음이 비밀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비밀이 아니기를 기대하십니다.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은 언젠가는 풀립니다. 성공의 비밀도 있고, 건강의 비밀도 있고, 삶의 비밀도 있습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노출되기를 원하시는 비밀입니다. 복음은 값싸지 않는 고귀한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공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22장의 가사를 보세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과 나 사이에 가진 기쁨, 복음의 은총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마태복음 5:1에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고 합니다. 2절에는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산상보훈은 예수님이 입을 열어 전하신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비밀을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서기관과 같지 않은 권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이 비밀을 전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이 비밀을 전하느라 고난을 당했습니다. 전하는 복음이 비밀이기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믿은 자 외에 알 수 없는 비밀이기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받은 자 외에 모르는 비밀이기에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8:35에는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고 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광야에서 이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34에는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가이샤라의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숨겨진 비밀을 풀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목포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만나는 사람에게 늘 “샬롬! 샬롬!”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얼굴에 병색이 있고 시꺼먼 분을 만나 “샬롬”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분이 목사님의 친절에 감동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지 3개월이 지나 목사님과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형편을 목사님께 얘기했습니다. 그는 돈도 잘 벌고, 명예도 얻었고, 가정도 행복하고, 평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피곤하고 몸이 부어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진해보니 간암 말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이 걱정하고, 회사도 걱정하고, 친구들도 걱정하고,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죽을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 분은 ‘나는 곧 죽을 놈’이란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살놈! 살놈!’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죽을 놈, 죽을 놈” 하는데 목사님만 “살놈, 살놈”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나는 죽을 놈이 아니고 살 놈이다’. 목사님의 말에 그는 소망을 가지고 약을 먹었습니다. 의사의 지시대로 운동을 하고, 몸을 추스렸습니다. 

의사는 3개월밖에 못 살 것이라고 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오히려 건강이 회복되고,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목사님에게 “목사님, 감사합니다. 내 육신도, 영혼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비밀은 생명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생명이고, 복음의 비밀은 생명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내용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를 하게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고 살리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바울이 외치고 싶은 한 마디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입을 열 때마다 복음의 비밀이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은 복음의 비밀을 폭로하는 입이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0:10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복음을 받은 사람이 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입을 열고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신은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20에는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사신은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신은 할 말을 담대히 해야 합니다. 
  
‘사신이 됨’이란 ‘프레스뷰오’란 헬라어인데 전권대사(ambassador)가 된다는 뜻입니다. 전권대사는 최고통수권자의 입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두 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고린도후서 5:20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고 합니다. 사신은 왕의 전권을 맡은 영화로운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신은 자기 주인의 말을 정확하게, 용감하게, 담대히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911사태 11주년 기념일에 리비아에서 리비아주재 미국대사가 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미국대사가 죽고 나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강한 보복의지를 발표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강하게 보복을 선언하였습니까? 대사란 미국을 대표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죽었으니 미국의 대통령이 나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4에는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바울이 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말은 대사로서 우리를 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제가 23년 전 연동교회에 부임 시 당회원과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몇 가지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양보하라고 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양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양보하지 못할 것 

첫째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교단의 헌법입니다. 교단의 헌법은 개정되기 전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바꾸어 시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교회의 오랜 전통과 역사입니다. 전통과 역사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 바꾸고 양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을 양보하지 못합니까?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니까 내가 바꿀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신’은 대사인데 내 맘대로 바꾸고,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주신 분의 말을 그대로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고 싶어 애급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등 떠밀려 애급으로 갑니다. 출애굽기 4:12에는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합니다. 담대하게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갈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에게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하나님이 직접 필요한 말을 그 입에 주어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1:9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예레미야의 입에 주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신탁을 받고 그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말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공회에 잡혀 가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공회의 위협을 겁내기 않았습니다. 사신은 담대히 적극적으로, 당연히 필연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복음전파는 바울의 필연적 의무인 것입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공회에 잡혀갔습니다. 공회 앞에서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였고,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그 입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입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꾼들을 보세요. 스데반, 빌립, 디모데, 마가, 누가 그리고 모든 교회의 일꾼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당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전한 자들입니다. 
  
현대의 설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의 배달꾼입니다. 저는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포함한 회중에 주신 말씀을 배달사고 내지 말고 잘 전하는 것이 좋은 설교입니다. 배달사고 내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기 위해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담대하게 전해야 좋은 설교입니다. 
  
포르투갈의 프란시스 사비에르는 요한 3세의 위촉으로 인도, 중국, 일본까지 다니며 선교하였습니다. 그는 1552년 선교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국왕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유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왕에게 보낸 유서는 당당했습니다. “폐하도 어느 날인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날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날을 위하여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십시오.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한 왕이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결산의 날을 위해 준비하십시오.” 그 옛날에 왕에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선지자 이사야를 좋은 말씀의 선지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어 부젓가락으로 그의 입을 숯불로 지졌습니다. 그의 입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후에 얼마나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바로 전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연히 전해야 할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입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결론 

우리나라의 맥도날드 햄버거의 빵 두께는 17mm이고, 고기두께는 10mm이고, 햄버거 전체는 44mm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동양인 성인의 입의 크기가 평균 50mm입니다. 44mm의 햄버거를 입에 넣으면 꽉 찬 느낌을 주고 부담이 없어 더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햄버거는 입에 맞춤형 빵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입에 맞는 맞춤형 말씀입니다. 누구나 전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각자에게 맞춤형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맞춤형 말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당연히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4세기에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크리소스톰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황금의 입”이란 뜻입니다. 크리소스톰이 설교할 때면 성도들의 박수와 눈물과 회개 때문에 설교가 중단되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설교시간에 위정자들을 거침없이 꾸짖었고, 사치와 향락을 깨우쳤습니다. 그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의 입이 마음을 여는 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을 통하여 당연히 전할 말씀 담대히 전하여 사람을 깨우치고 변화시키고 구원받게 하는 놀라운 우리의 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입에 맞춤형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당연히 전할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담대히 전하는 주님의 사신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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