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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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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충 지은 탑은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공을 들여서 지은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고, 정성을 다한 일은 그 결과가 헛되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도 이 속담의 교훈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레슬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 선수가 인터뷰를 통해서 “나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땀을 흘리고 열심히 연습했다는 것이고,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땀 흘린 수고의 댓가를 거둬들였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공을 들여 쌓는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은 ‘공을 들인 탑은 절대로 무너지는 일이 없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했어도 순식간에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법칙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나폴레옹은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프랑스 황제가 됐습니다. 그는 승승장구하면서 여러 나라들을 정복했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에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서 52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인생의 실패와 몰락에 대해서 탓할 사람은 나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었으며,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겠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더 높고 화려한 인생의 탑을 쌓기 위해서 발버둥 쳤겠습니까? 하지만, 그 공든 탑도 결국은 무너졌고, 공든 탑도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을 들여서 탑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탑을 쌓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 속에서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벨탑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앞을 보면, 노아와 홍수, 노아의 후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인간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관영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에 인류는 새롭게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또다시 죄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하고도 인간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고 말이 하나였다고 말씀합니다.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어학자들도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말을 가지고, 그들이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어가 하나이니까 서로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데, 그 통하는 마음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한 데에는 지혜롭고 악한 데에는 미련해야 되는데, 그들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선한 데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2절을 보면,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서 거기에 거주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동방으로 옮겨갔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동쪽을 향해서 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계시고,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반대방향으로, 다른 쪽으로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동쪽을 향해서 옮겨가다가 그들은 시날 평지를 만나게 됩니다.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땅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후손들에게 땅에 편만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들은 더 이상 흩어지지 않고 함께 거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의 지배자는 ‘니므롯’이었습니다. 본문 앞에 있는 창세기 10장 8절 말씀을 보면,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니므롯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손자, 구스의 아들로 그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은 대적자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해서 신적 권위에 도전하고 백성들을 압제하고 침략 전쟁으로 명성을 떨친 최초의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비옥한 땅에 함께 모여서 니므롯의 통치 아래에서 도시를 형성하고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 왕국’을 건설하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언어를 가지고 한 말이 3절에 나옵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그들은 벽돌을 굽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나무나 돌, 흙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 재료를 가지고는 건축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높은 건물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술이 발전해서 벽돌을 견고하게 굽고 역청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이 되니까, 마음 먹은 대로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컴퓨터를 만들어낸 것 이상으로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벽돌과 역청이라는 신기술을 사용해서 성읍과 탑을 건설하게 됩니다. 지금도 이라크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벨탑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하고 그려 놓은 상상의 그림들이 있는데, 그림들을 보면 지구라트를 참조해서 많인 그린 것 같습니다. 지구라트는 구운 진흙 벽돌로 쌓아 올렸는데 기록상으로 가장 높은 것은 거의 90m에 달했다고 합니다. 1층을 3미터로 계산해 보면 30층 높이나 됩니다. 4천년에서 6천년 전에 이런 높이의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읍과 탑을 쌓으려고 하면서 그들은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할 때에 벽돌로 우리가 살 집을 그냥 소박하고 튼튼하게 만들자는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탑 꼭대기기 하늘에 닿도록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하는데, 하나는 우리의 이름을 내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갖고 사람들은 열심히 벽돌을 굽고 공을 들여서 성읍과 탑을 건설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5절 말씀에는 은근한 유머가 담겨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인간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성과 대를 쌓아갔지만, 하늘에서는 그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야 보일 정도로 그것은 작은 것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것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달에서 보면 바다나 사막과 같이 큰 것만 보이지 육안으로는 어떤 인공건축물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려 8백여 미터로 지상에서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버즈두바이라는 빌딩도 높은 곳에서 보면 그냥 하나의 점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만든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도 우리가 보기에는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변변찮습니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시고 6절과 7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은 인간들이 한 족속이고 한 언어를 가지고 일을 도모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지금은 바벨탑을 쌓는 작은 일을 했지만, 이후에는 함께 어떤 엄청난 죄악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해서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의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새겨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온 땅으로 흩어져서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뜻을 거슬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동방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한 곳에 정착해서 그곳에서 성읍과 탑을 건설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불순종은 죄고, 죄로 인해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대로 죄의 결국은 사망이고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불순종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인간의 의지와 뜻대로 공을 들여서 탑을 세우려고 했지만 그 탑은 건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공든 탑을 쌓느라 땀을 흘려봐도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탑을 쌓는다면 헛된 수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바벨탑 사건과 함께 눈여겨 볼 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창세기 12장입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벨탑 사건에 이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묘하게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에서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한 곳에 정착해서 그곳에서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반면에,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정착해서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는 고향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약속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불순종의 모습과 순종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나면서 그 결과를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말씀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설 수 있습니다. 공을 들여서 탑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쌓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저 열심히 탑만 쌓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열심히 공을 들여서 우리 인생의 탑을 쌓아가고 있습니까? 그 탑을 쌓아갈 때에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탑을 쌓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내 맘대로 탑을 쌓고 있습니까? 탑이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 가운데 쌓은 탑은 아무리 튼튼해 보여도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서 쌓은 탑은 굳건히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을 과신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돌과 진흙이라는 자연산 재료보다 그들이 만들어 낸 인공의 건축재료인 벽돌로 자신들의 능력을 뽐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진 이 기술로 높은 탑을 쌓으면 제 2의 홍수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가진 이 기술이 없어서 낮은 집에서 살다가 홍수에 멸망당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 능력으로 높은 탑을 쌓아서 아무리 큰 홍수가 다시 세상을 덮는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으로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혼잡케 하시니까 모든 수고가 헛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을 시편 기자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에서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인간이 제 아무리 재주를 부리면서 집을 짓고 성을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켜주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해방된 지 67주년이 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파수꾼의 경성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공들여 쌓은 탑과 그들의 능력과 수고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좀 약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겸손하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의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시고 그 능력으로 함께 해주시고 승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강함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고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탑을 세울 수 있습니다.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과, 자신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기도 없이 내 능력으로 어떻게든 열심히 탑을 쌓아보려고 땀 흘리는 사람입니까? 내 능력으로 쌓는 탑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쌓는 탑은 분명히 다릅니다. 한 쪽은 약한 탑이고, 한 쪽은 무너지지 않는 강한 탑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의 탑을 쌓아간다면 우리의 능력으로는 쌓을 수 없는 든든하고 탄탄한 탑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허영심에 대해 보게 됩니다. 시날 평지에 모인 인간들이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했던 두 가지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는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높은 탑을 건축하고자 했던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고층 빌딩은 싫어하시고, 높게 쌓아올린 탑은 다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무시하면서 영적인 교만과 허영심 가운데서 탑을 쌓으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부서장이나 기관장이 되면,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이런 업적을 남겨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 내가 잘나서 갖게 된 것처럼 여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채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뒤로한 채 나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모든 초점을 하나님께 맞춰야 되는데, 초점을 우리에게 맞추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게 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들과 하나님이 주신 지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쌓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야 되겠다는 허영심으로 건축했습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사무엘과 사울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기념비를 세우게 되는데, 그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사울은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후에 자아도취에 빠져서 자기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기념비를 세웁니다. 반면에, 사무엘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기념비를 세웁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자신에게 영광을 돌렸던 사울의 결국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사무엘의 결국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결국을 안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메달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우리 나라와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대국입니다. 사실, 이 나라들은 여러 개의 나라가 하나로 합쳐진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개최국 영국이 당연히 좋은 성적을 얻었는데, 이 네 나라를 빼면 우리 나라가 1등인 셈입니다. 204개국이 참가했고, 1-4등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는 거니까, 200개의 나라들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등수 5등을 우리 나라가 차지했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이름을 높여야 됩니까? 우리 나라가 잘 나서 이렇게 됐으니까, 우리의 이름을 내야 합니까? 이렇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데 간 데 없고, 내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내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광을 위해 짓는 바벨탑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무너져야 하는 바벨탑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탑을 쌓아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성을 쌓든지 탑을 쌓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일을 해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인생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열심을 다해서 집을 지어보지만, 그 열심 때문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세워집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들여 쌓아도 모래 위에 세우는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내 능력으로 내 영광을 위해서 쌓는 탑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건축하는 것이 반석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흔들림 없고 견고한 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인생의 공든 탑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쌓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무너져 버릴 불안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탑은 말씀 위에 세워야 합니다.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워갈 때에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든든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열심히 탑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원하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바벨탑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에벤에셀의 아름답고 든든한 인생의 탑을 쌓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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