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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축복하는 가정 (창 4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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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는 가정 (창 48:1-22)

* 유머 - 사진 한장과 함께

명절 때 쫄쫄 굶은 조상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귀신이 말했습니다.

“추석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진 조상귀신이 말했습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 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프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했습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 (조상 귀신의 이갸기를 통해 제사의 무의미를 알게 합니다.)


한국사를 구분하며 제천신앙, 하나님 신앙일 때는 부강했는데 불교나 유교시대를 살아 온 고려, 조선왕조시대에는 나라가 약해져 망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한민족 고유의 것이 아닌 되놈의 풍습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불상’은 사람의 수공물로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는 우상입니다(시 115:6). 조선의 백성들은 그 조각한 ‘우상’ 앞에 절하는 것도 모자라 더 이상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엎드려 절을 하기 시작 했다는 것입니다. 

절이란 절을 받는 대상 앞에 엎드려서 코를 땅에 박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입니다. 천손민족이 그와 같은 자세로 헛된 것을 향해 절을 하면 하느님의 질투를 격발시켜 마침내 조선 백성에게 아주 혹독한 징벌이 임했습니다. 급기야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요.

오늘의 본문말씀은 요셉이 나이 많아 자신의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두 손을 들어 요셉의 두 아들의 머리에 안수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오늘은 추석명절인데 헛된 제사보다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축복으로 의미있는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이제 요셉의 덕으로 애굽의 고센 땅에 와서 평안한 여생을 보낸 지 17년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그는 대제국 애굽의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총리대신이고 그의 나이 벌써 57세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힘을 내어 위엄을 지니고 요셉과 그 두 아들을 축복하는 권위를 보여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사 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백성이 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후손으로 주리라고 언약하신 사실을 말하고, 요셉이 애굽 여인에게서 난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각기 지파를 이룰 족장의 반열에 오르게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의식을 통하여 확고해지고 권위가 형성되고, 질서가 유지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두 손 들어 축복한 대로 하나님은 이루어 주셨으며, 백성들은 축복하는 자의 권위를 존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야곱은 베델에서 만나고 브니엘에서 축복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믿는 신앙에 의지하여, 바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는 사실에서 권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이 루스에서 내게 나타나사 복을 허락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의 루스는 베델의 본래 이름입니다. 야곱이 베델에서 확실한 영적 체험을 가졌듯이,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여 구원받은 중생의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그리고 모든 환난에서 이기게 하시고 오늘까지 인도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자녀를 축복하시고,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 땅의 젊은이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미워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자는 점점 권위가 실종됩니다. 그러나 축복하는 자에게 사람들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시고 권위를 세워 주십니다. 저는 지금도 아들 전도사가 집을 나갈 때는 절하게 하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축복하며 키우십시오. 손자를 축복하십시오. 쓸데없이 자녀들과 불화하지 마시고 진심으로 축복하시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권세로 축복하느냐고 누가 물으신다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축복하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트르먼(Harry truman) 대통령이 어느 날 트르먼 기념도서관에 들렸습니다. 마침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와 있다가 노인 대통령을 발견하고 모여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우리들 나이 때 인기가 있었고, 반장을 하셨나요?" 트르먼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정반대였단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몹시 나빠서 안경이 없으면 맹인과 같았고, 공부도 별로 잘 하지 못했으며, 게다가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은 놀라서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어요?" 대통령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확실히 믿었단다. 이것은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다. 하나님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믿어 주시니 못할 일이 어디 있겠니?".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권위뿐 아니라 어른된 권위를 가지고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였고, 야곱은 지금 본문에서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일찍이 그의 부친 이삭에게서 축복받던 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28절-29절에 보면 이삭의 축복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진 것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른된 자는 모름지기 어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어른 노릇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의 언약이나 축복과 관련하여 기록할 때는 이스라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식하였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가 죽으면 그 시신을 가나안으로 옮겨 달라고 하는 유언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축복기도를 빠뜨렸습니다. 

이미 노쇠하였으나 본문 2절에 보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책임을 다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축복하는 책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자녀, 내 손자 내가 축복하지 않으면 누가 축복합니까?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식사시간마다 가장이 자녀를 축복하는 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자녀를 축복합니까? 주일 저녁 식사시간이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을 가장이 자녀를 축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본문이 이스라엘 축복기사는 두 가지 관심을 보여 줍니다. 첫째는 5절에 야곱이 요셉에게 이르기를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손자들을 아들들의 반열에 세운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사랑했고, 죽은 줄만 알았는데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그 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12아들을 통해 각기 지파를 이루어 한 민족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요셉을 축복하되 그의 두 아들을 각기 지파를 이루어 족장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함으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함으로 요셉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실은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므로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이 있는 쪽에 세우고, 차자인 에브라임을 왼손 편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어긋 맡겨 축복했습니다. 

요셉이 그 아비에게 "그리 마옵소서 므낫세가 장자입니다" 하였으나 야곱은 "나도 안다. 나도 안다"를 연발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의도적으로 야곱은 에브라임을 우수로 므낫세를 좌수로 축복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왼손은 오른손의 보조적 기능 밖에 없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축복하려고 할 때에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신 일일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관습이나 전통에 꼭 매이시지 않습니다. 법이나 전통은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매이면 하나님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도 다윗의 모든 형들에게 기름을 붓지 않고, 그 아비인 이새가 추천하지도 않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택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축복대로 에브라임의 후손들이 므낫세의 후손들 보다 더 강대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축복하는 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축복권이 교회와 성도의 가정에 계승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권위가 인정되고, 가장의 축복이 있는 가정을 세워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교역자의 권위가 인정되고, 담임목사의 축복의 권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나라가 잘되고 권위가 다시 세워지는 출발이 됩니다. 무릇 어른된 자들마다 축복하기를 힘쓰시고, 모든 자녀된 자들마다 축복받기를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명절에는 자녀들을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는 복된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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