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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권하라! (눅 24:24-35)

첨부 1


강권하라! (눅 24:24-35) 

루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열 살 어린이의 마음은 과자로 움직이고 (먹을 것 만 주고 입만 달콤하면 움직일 수 있다), 이십대에는 이성으로 움직이고, 삼십대에는 즐거운 쾌락을 찾아 움직이고, 사십대에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에는 탐욕에 이끌리고, 육십 대에는 명예에 움직인다’했습니다.  아무리 큰 돌도 지렛대만 있으면 움직이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계문화의 발달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큰 짐들을 쉽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 백 명이 달려들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콘테이너를 기중기가 쉽게 움직입니다. 엄청난 산(山)도 포크레인 몇 대에 의해서 없어지고 그 흙은 바다 간척지로 옮겨집니다.   

안동댐이 수몰 될 때 오백 년된 거대한 은행나무를 움직여 안전한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현대 기술에 의하면 원만한 고층 아파트도 벽돌 한 장 손실 없이 그대로 움직여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쉽게 모든 것을 움직이지만 가장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로도 과학의 힘으로도 군대의 힘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의 몸둥이는 강제로 움직일 수 있지만 마음은 움직이기 어려운 것 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거의 불가능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이 엄청난 하나님을 움직인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두 제자들의 숙소에 들어가실 마음이 없고 그냥 그 동네를 지나가실 의향 인 것 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고 들어가신 이유는 제자들이 강권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에 유비 현덕이 제갈공명을 모시러 갑니다. 거절합니다. 세 번이나 강청하러 갑니다. 그날은 낮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이 깰 때 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강권[强權 para-βιαζω ] 옆에서 강하게 권한다는 뜻입니다. 

① 주님이 가르쳐 주신 제일 좋은 전도법 - 강권입니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②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 방법 역시 강권입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③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응답 방법 - 강청입니다. 
[눅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④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도 강권입니다. 
[눅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3.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4. 바울이 루디아의 집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행 16: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창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룻 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행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그 떠나려는 나에게 주인은 더 있다 갈 것을 강권하였다.  
그녀는 여동생의 강권으로 맞선을 보러 나갔다.

NIV (눅 24:29) But they urged him strongly, "Stay with us, for it is nearly evening; the day is almost over." 
So he went in to stay with them.

KJV (눅 24:29) But they constrained him, saying, Abide with us: for it is toward evening, and the 
day is far spent. And he went in to tarry with them.

예루살렘 서쪽으로 25리 (10km) 떨어진 곳에 엠마오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엠마오(Emmaouv")의 단어적인  뜻은 온천이란 뜻입니다.  이길을 누가와 글로바라는 두 제자가 실의에 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이 때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건넴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시지만 그들은 영안이 가리워져 예수님인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을 던집니다. 왜 이렇게 얼굴이 수심이 가득하고 슬픈 빛이 있습니까? 누구신지 모르시지만 우리와 같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면서 시내에서 된일을 모르십니까? 신문도 안보고 라디오도 안 듣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한 사실을 모르십니까?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한 자로 믿고 따랐는데 무참히 죽고 나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습니까? 한편 어떤 여자들 몇 명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본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눈으로 보지 않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이 말을 듣자마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중하십니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1.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눅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주님은 분명히 그들과 동행하고 계셨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엠마오 두 제자들만 못 알아 본 것은 아닙니다. 어린 사무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찾아오셔서 부르셨지만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함께 하십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버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 시인의 말에 나옵니다. 내가 어려울때 어디 가셨습니까? 발자국이 네 개다. 힘들 때는 발자국이 두 개다. 하나님 정작 어려울때 나를 떠나신것 아닙니까? 아니다. 자세히 보라. 자신의 발자국은 없고 주님의 발자국이 깊이 깊이 파인것이다. 주님이나를 안고 가신 것이다. 


2. 강권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눅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곧 강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을에 가까이 오시자 그냥 지나쳐 가실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강청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강청하는 기도요 강청하는 믿음입니다. 

② 히스기야의 기도 십오년의 생명을 연장하는 기도 -
히스기야는 유다나라의 13대왕(B.C.728-697)으로서 25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14년을 통치하던 39살 무렵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죽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더이상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그의 생명은 15년의 연장을 받아 54살에 죽게 됩니다.


3. 예수님을 모시자 생각지도 못한 놀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① 영안이 열렸습니다.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알아보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다시 본문 31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영어에는 이런 경우를 가르쳐 '눈이 열리는 체험'(eye-opening experience)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기도하는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식탁에서 였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합니다. 기적은 기도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는 식탁에서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교회당서만 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사실 한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교회당에서 예배할 때만 기도할 때만 일하시는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좁게 이해한 적이 많았습니다.(성과 속을 나누는 이원론의 영향으로) 

그러나 이제 개혁자들은 일상의 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미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서 중세기의 전통적인 성화가 아닌 일상의 정물이나 자연을 그릴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소위 17세기 화란파(Dutch School)화가들을 통해 일터의 하나님, 가정에서의 하나님이 증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속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입니다.

유명한 렘브란트도 이 <엠마오에서의 식사>라는 그림을 통해 이 식탁에서 눈이 열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하인이 음식을 서브하는 순간 눈이 열린 두 제자가 각각 놀라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까? 카라바지오의 그림은 더 인상적입니다. 수염도 없는 평범한 청년 예수님, 그러나 그분을 예수님으로 알아차린 두 제자의 놀라움의 인상이 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예배의 자리에서만 아니라 식탁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후 청교도들은 그들의 식탁 벽에 이런 인상 깊은 글자판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식탁의 손님이시고 모든 대화를 듣는 분이시다"(Christ is the unseen guest at every meal, the silent listener to every conversation) 

이 달의 추천도서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라"에 보면 인도 땅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를 방문한 저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성과 속이 분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거기서 모든 봉사자들은 요리, 청소, 식사 준비, 배식, 세탁, 환자 돌봄등 모든 일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일과 함께 기도에 더욱 열심이었음이 그를 감동시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루에 여섯 번씩 일을 멈추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기도가 일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과 기도가 분리되지 않았고 일속에서 그들은 주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가르치고 싶어한 레슨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를 만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제발 눈을 뜨고 나를 보라. 네가 걷는 길에서도 네가 밥먹는 식탁에서도 너는 나를 만날 수 있다고."

② 깨닫는 시간을 가집니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그들이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3)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물고기는 물에서만 살 수 있고 모든 식물은 흙속에서 살아가듯이 모든 신앙은 성경 말씀 안에 있을 때만 바르게 성장하고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놀라운 것은 성경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똑 같이 느낀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씀에 대한 감동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것을 느끼는 순간 두 제자는 엠마오에서 잠을 자지 못합니다.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말씀을 감동을 받고 말씀에 은혜를 받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예수님을 만나면 비로소 인생의 진리가 깨달아 집니다. 길에서 만난 소경

③ 사명을 회복하고 용기와 소망의 시간을 갖습니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그렇습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을 모시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 납니다. 
이번 집회에 무엇 보다도 가족들을 강권하여 은혜 받게 해야 합니다. 강권하여 데려다 놓으면 그 다음은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가인은 믿음도 없고 정성도 없고 성의도 없고, 성격도 난폭하고 거짓말장이었습니다.동생까지 죽인자였습니다. 분명히 죽어야할 자였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햇습니다.‘가인이 하나님께 고하되 내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지면에서 나를 쫒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그렇지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기도하나만 정성껏해도 면해졌습니다.

세계 2차 대전때에 불란서가 독일나치스의 군대에게 패해버리고 영국에서 도와 주려고 건너갔던 30만대군이 자기들만으로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해협으로 도망할때에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태연히 있었습니다.  

그때에 조오지6세가 온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군대를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온국민이 그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독일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나서 비행기가 한대도 떠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한대도 움직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국편에서는 도버해협이 거울같이 잔잔했다고합니다. 영국까지 30만명의 군인이 무사히 왔습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살고 있던 롯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범죄가 너무 극악했습니다.  성범죄입니다. 남자가 남자끼리 부끄러운 일을 하는 호모섺스가 이미 이때 성행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유황불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마도 큰 화산이 폭발하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다 죽어갈때 롯의 가족은 살수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소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눈을들어보니 나그네 세사람이 자기집옆을 지나갑니다. 그사람들을 불러서 여늬 사람과 같이 정성껏 대접을 했더니 그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은 대접을 받고 아브라함에게 세가지 축복을 합니다.
첫째는 내년이맘때쯤 아들을 갖게될것이다.  가장 필요한 약속입니다.
둘째 축복의 조상이 될것이다.

기도해서 얻은 한나 한나는 원래 아들을 낳을 수없는 여인이었습니다.그러나 기도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 장사 지내준분입니다.

누군가가 선교사에게 아프리카에서의 선교활동을 정말 좋아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선교사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이 일을 좋아하느냐고요? 천만에요. 저와 제 집사람은 더러운 것은 딱 질색이에요. 우리는 상당히 섬세한 감각을 지닌 편이거든요. 그 냄새나는 고약한 오두막에 기어들어가는 일은 아예 몸서리쳐져요. 그 무지막지하고 불결하며 야만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그러나 자기가 싫다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나요? 좋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것은 선교사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우리는 그저 '가라'는 명령을 강권을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라>는 책을 쓴 메리 포플린(Mary Poplin)은 개신교 신자였지만 그녀의 나이 40대 초반 대학 교수로 예수님을 만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미국 텍사스에서 인도 캘카타의 마더 테레사가 일하는 곳으로 2달간의 자원봉사자로 떠납니다. 맬콤 머거리지라는 기독교 작가의 책을 읽다가 마더 테레사가 일하는 인도의 사랑의 선교회는 단순히 사회사업 센터가 아니라 "복음을 살아가는 곳"이란 말이 그녀를 자극하고 도전한 것입니다. 

그때는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두 해전이었습니다. 두 달간의 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가는 메리에게 86세의 마더 테레사는 미소를 머금고 메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세요."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훨씬 쉽지요. 그러나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리에 가정에 일터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져  오세요. 그곳이 바로 예수님을 위한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니까요. 당신에게 보고자 하는 눈이 있다면 세계 도처에서 캘커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부디 당신의 캘카타를 찾아 가십시오." 메리는 자기 고향 미국 텍사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캘카타는 마더 테레사에게 명한 곳이었지 자기의 사역지는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찬 대학 캠퍼스가 바로 그녀의 엠마오요, 캘카타인 것을 발견하고 대학교실로 되돌아갑니다. 이제는 막연히 대학 교수가 아닌 섬겨야 할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그들의 손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잡아 주기로 결심하면서 말입니다. 그녀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녀는 살아계신 주님을 보게 되었고 그녀를 기다리는 젊은 영혼들을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4) 한가지만이라도 잘하자

사람은 모든것을 다잘할수는 없습니다. 한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세계의 먹고사는 직업이 얼마전까지만해도 4만가지라고하더니 요즈음 20만가지라고합니다. 이직업에 만물박사같이 다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아니고 한가지만이라도 잘하면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 무하마드 알리라는 미국 권투선수는 주먹하나로 성공해서 죠프레저와 경기때에는 1분에 2억씩 벌었답니다. 1초에 300만원씩입니다.

* 손기정씨는 마라톤하나잘했다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영식집사라는 분은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혼자하는연극 모노드라마로 세계를 다니고있습니다.

* 일본 오차노미에가면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는데 오뎅집입니다. 오뎅국맛이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비결은 불을 꺼뜨리지않는다. 지금 3대째 내려오는 곳입니다. 일본에 온소문이 났습니다.

*성주 동곡에 가면 유명한 식당이 있습니다. 도지사도 시장님도 총장님도 간다고 가자해서 갔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뭘잘하는가? 칼국수하나 잘한다. 할매국수 원조 국수한가지라도 잘 하면 성공합니다. 현풍이 얼마나 큽니까? 현풍하면 할매곰탕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가지일에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동계올림픽에 김기훈선수 금메달 3개땃다. 매달 125만원 나온답니다. 스케이트하나만 잘타도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만 잘해도 됩니다.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것을 다잘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한가지만이라도 잘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 빈야드 교회는 찬양하나 잘하므로 만명의 교회가 모입니다. 음악사랑하는 교인이 모입니다. 예배를 드릴때도 사부로 찬양합니다. 온교인이 성가대입니다.

* 코럴릿지교회는 일대일 전도운동 잘해서 대교회가 되었습니다.

* 갈보리 채플은 성경공부하나 잘해서 세계적인 교훈가 되었습니다.

* 우리교회는 강권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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