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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것을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고전 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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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고전 11:2-16)


오늘 본문의 초점은 예배에서의 태도와 몸가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결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의 문제나 남녀 사이의 본질적 차이의 문제가 그 초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여러 차례 강조되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인 신자들이 지켜야 할 최우선적인 도리였습니다. 그 신자의 도리란 사랑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고,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행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절제하거나 유보하거나 아니면 영원히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 또한 그 신자의 도리라는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서의 평안과 교인들 사이의 일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교인들이 불화하고 시험 들지 않기 위해서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망과 자유를 버릴 줄 아는 것이 귀한 일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쓸 당시 고린도의 문화와 관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문화와 관습을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의 평안을 꾀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복음 안에 수용하기 위해서 신앙과 구원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한 기존 문화와 관습에 충격을 주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믿음에 의해 깨닫게 되고 소유하게 된 자유라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분란과 시험을 일으키고 교회 밖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살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오늘의 주제를 다룬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을 인정하는듯한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잘못하다가는 남녀 간에 싸움이 일어나게 할 소지도 있고 오늘날에는 여성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말들입니다. 그 첫 번째 예로 본문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한 것입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3절은 그 안에서 언급되는 남자와 여자와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의 계급구조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면 하나님, 그리스도, 남자, 여자의 순으로, 아니면 그 역순으로 말하는 것은 더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이시고, 그리스도는 남자의 머리이시며,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하든가, 아니면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서로 말하지 않은 것은 사도 바울의 의도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남자와 여 사이의 서열상의 순위를 말하는 데 있지 않았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하는 말은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존재이고 남자 아래 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 바울이 하고자 한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단지 그 당시의 고린도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을 따라 말한 것입니다. 즉 부부나 한 가정을 대표하는 것은 남편이나 아버지였던 그 시대의 일반적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자들이 행실을 잘못하면 그 부부나 가정을 대표하는 남편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있으니 여자들은 남편이나 가장의 명예를 위해서 그 행실을 잘 다스려야 함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내가 잘 하면 남편이 빛나고, 그리스도인들이 잘 하면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며,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시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본문 3절인 것입니다. 결코 여자에 대한 남자의 본질적 우월성을 신학적으로 주장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4-5절도 얼핏 들으면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을 정당화한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예배를 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여자는 반드시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하는 차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원불변의 명령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자유와 구원을 얻은 남녀 사이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그 당시의 일반적 관행에 역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교인들 사이에서 불화나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시의 일반적 관행을 따르는 것이 지혜롭겠다는 사도 바울의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세계에서는 남자들은 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배에서는 신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의미로 머리를 무엇으로 덮지 않았습니다. 즉 신 앞에서 머리를 덮는 것은 불경과 불순종을 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신전에서 제사 드리는 사람들 가운데는 제사에 제물로 바쳐질 짐승들이 내는 소음이 너무나 시끄럽고 그 짐승들을 잡을 때 나는 비명소리가 너무나 듣기 힘들어서 머리에 무엇을 쓰는 사람들이 흔히 있었습니다. 머리를 덮는 것이 길게 밑으로 내려오면서 귀를 가려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짐승의 제물을 바칠 일도 없고 예배드릴 때 짐승의 소음과 비명을 들을 일도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머리에 쓸 이유도 없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신 앞에서 머리를 덮는 것을 불경과 불순종으로 여기는 사람들 눈에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머리에 씀으로써 불경한 사람들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데 주저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신데 그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히 무엇을 씌운다는 것은 그를 욕되게 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영적으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체적인 머리를 의도적으로 살짝 교차시키며 예배에서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더하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여자들이 예배 때 머리에 쓴 것을 벗는 것은 왜 반대로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는 의문이 당장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 당시 여자들은 반대로 예배에서 다 긴 머리를 하거나 너울로 머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본문 6절에서 말하듯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머리를 깎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다 여자에게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고 집 밖에 나가 있으면 정숙하지 않은 여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정숙하지 않은 여인으로 보이는 것은 그 남편에게 욕이 돌아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자들은 머리를 가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뒤따르는 7절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이 말은 남자는 하나님과 직통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하고 단지 남편에게만 속해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은 여자가 정숙한 여인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이 그 남편에게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인인 남편이 영광스럽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코 남녀 사이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8-9절의 말도 당시의 일반적 의식을 반영한 말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한 것입니다. 부부사이나 가정을 대표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편이며 여자가 잘 하면 남편이 빛나니까 여성들이 행실을 반듯하게 하는 것이 남편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 그 말의 취지입니다. 

이렇게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관행에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으려는 자세의 중요함을 강조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남녀 사이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게 될 위험을 의식한 사도 바울은 그런 사고의 흐름에 한 번 제동을 걸 필요를 느낍니다. 그래서 쓴 것이 11-12절의 말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 없이 여자 없고, 여자 없이 남자 없으며,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 아니시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동등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남녀 간의 차이의 문제에 관해 할 말을 다 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원론적인 말을 한다면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은 남녀 사이에 차별을 두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현실을 너무 무시하고 행동하다가는 사회로부터 반감을 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을 복음에로 불러들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으며 아직 믿음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른 교인들 사이에서조차도 오해와 불화와 분란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교인들 사이에 하나 됨을 위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잘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도 바울은 묻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예배 때 머리를 가리고 안 가리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자유로워진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시의 비그리스도인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을 정숙하지 않은 여자들로 볼 것이고,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지 않으려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느냐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물은 것입니다. 교회 밖은 고사하고 교회 안에서조차도 그런 여자들을 보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인하여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강조하며 머리를 남자들처럼 짧게 깎거나 아예 박박 밀거나 아니면 긴 머리를 요란스럽게 틀고 장식해서 자기의 미와 부와 신분을 과시함으로써 교회 안에 불화와 분란이 생기게 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4절에서는 남자들에게 묻습니다: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하거나 가리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처럼 남자들도 머리를 길게 기를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남자는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관행이고 그래서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굳이 이에 반하는 행동으로 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고 이상한 자들이라는 오해를 사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일을 꼭 해야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회 안에서 머리 문제로 불화와 분쟁이 일어나게 만들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머리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얻은 자유라 할지라도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펴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그런 머리 문제로 시끄럽게 논쟁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로 결론을 내립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불필요한 논쟁은 교회의 평안을 깨뜨립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는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유보하거나 포기하며, 논쟁하고 싶은 생각을 물릴 수 있는 자유함과 넉넉한 마음을 갖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추석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이번 추석이 되기를 빕니다. 남자들은 놀고먹으며 여자들만 상 차리느라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 추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또한 그 문제로 부부간에, 시누이와 올케 간에, 형제간에 다투고 삐치고 불화해서 헤어지는 추석이 되지 않기를 빕니다. 가족 간에 모이는 명절 때마다 서로 서로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일에 솔선수범하여 가족 간에 평안이 넘치는 새문안의 모든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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