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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대하 6: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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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대하 6:12-42) 

시 보다는 그림이 있는 시화가 이해하기 싶습니다. 오늘 설교는 현장감 있는 설교가 되어서 설교자나 청중이나 피차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부왕의 뜻대로 성전건축을 완성하고 성전 봉헌사에서 성전이 성전되도록 하기 위한 결단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 성전중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들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으로서 백성들을 대표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의 중보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성전이십니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했습니다.

Ⅰ. 솔로몬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6장 13절에 『 …저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서 있는 자세가 자립과 자존의 의미라면 무릎 꿇는 자세는 반대로 의존과 복종의 자세입니다. 

무릎 꿇는 자세는 존경의 자세입니다(왕하 1:13). 경배의 자세입니다(롬 14:11; 빌 2:10). 겸손의 자세입니다(마 17:14; 막 10:17).
에스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스 9:5). 다니엘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단 6:10). 베드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9:40).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눅 22:41).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는 하늘을 향해 손을 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공개시키는 기도의 자세 외에 간청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기도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마 26:36-46).

따라서 솔로몬의 기도는 공중기도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손을 펴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곧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고하고 간청하는 곳입니다. 이와 병행해서 우리가 손을 펴고 악수하는 행위는 내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숨김없이 보이는 진정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Ⅱ. 솔로몬은 언약에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본문 6장 15절에 『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도 『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17절에 『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42절에 『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언약에는 반드시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이 언약을 유지하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비에 새겨진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에 실패하자 이미 언약하신대로 새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새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새언약의 목표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렘 31:33; 호 2:23; 계 21:7).

다윗에게 약속한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7장 8-16절에 『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확실하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만들어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동일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삭과 야곱과 오고 오는 신앙의 자손들에게 확인되고 또 재확인되는 것입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하나님의 약속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도 변해가는 상황윤리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에 『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고 했습니다.


Ⅲ. 솔로몬은 겸손한 제사장적 기도를 했습 니다. 

본문 6장 18절에 『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성전을 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여호와 앞에 분향(예배)하기 위해 짓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제사장적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6장 19절에 『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낮은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해서 영웅적인 자세로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영웅적인 자세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종의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더 나아가 빚진 자의 자세로, 죄 많은 세리의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1) 성전중심의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0절에 『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2)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하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1절에 『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2-23절에 『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하므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대로 갚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죄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4-25절에 『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때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내려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6-27절에 『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6) 성전을 향해 백성들이 무슨 기도나 간구를 할 때 하늘에서 들으시고 각 사람대로 사유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29-31절에 『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며 주의 길로 행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7)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만이 아니라 일반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도 유효하다는 고백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6장 32-33절에 『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8) 대적들과 생사를 넘는 전쟁이 있을 때도 이 전을 향해 기도하거든 돌아보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6장 34-35절에 『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이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 보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9) 주께 득죄한 모든 백성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시고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39-40절에 『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 보옵시며 주께 득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라고 했습니다.

10) 솔로몬 자신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시고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본문 6장 41-42절에 『 여호와 하나님이여 일어나 들어 가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평안한 처소에 계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의 제사장으로 구원을 입게 하시고 또 주의 성도로 은혜를 기뻐하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서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자는 솔로몬이 아니라 그 왕권은 다윗의 혈통을 좇아 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은총"이란 말은 언약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신 7:9,12; 느 9:32; 단 9:4; 미 7: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는 말과 성전에서 기도한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왕상 8:29-30; 8:38,42; 대하 6:20,29-30; 시 5;7; 138:2; 단 6:10; 겔 4:7; 21:2).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주님의 몸입니다(엡 1:23; 4:12; 5:30; 골 1:18,24).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막 11:17). 교회는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손을 펴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을 공급하는 관수로입니다. 교회(성도)는 교회(성도)를 위해 제사장직 기도를 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도한다면 샤머니즘 신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까지 가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람들의 사랑행위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제가 올해 만 60세(회갑)가 되는 해입니다. 집의 나이로는 61歲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얼마 전에 매입한 제1교육관에 이어 그보다 입지가 더 좋은 70평 대지에 3층 건물을 주셨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우리는 이 건물을 갈보리교회 이름으로 등기했습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주차장 부지를 달라고 만 4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처음보다 적어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성전 건축의 영광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단에 우리 교회처럼 많은 공간을 주신 교회도 드물 것입니다
목사관과 건물 4동에 약 300평의 대지와 기도원 부지 약 4만 3천 800평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공간자원은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쓰거나 공적기관을 사칭한 그 어떤 기관도 사사로이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권주의 행위나 그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없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공적으로 언약의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선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충성스럽게도 이 일에 물질로, 기도로 참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그 분량에 따라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둘 것입니다. 즐겨낸 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기쁘게 받으셨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언약)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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