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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 위에 은혜 (요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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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위에 은혜 (요 1:16-17) 

요즘은 뉴스가 “강남스타일”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서울 광장에서 열린 무료공연에 8만명이 모여서 손을 흔들며 온 몸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온 세계가 말춤으로 야단들입니다. 그만 보면 웃음이 나오고 몸이 흔들립니다.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미남도 아닙니다. 장동건 같거나 세련된 도시남자 같지도 않습니다. 나는 처음에 저렇게 촌스러운 말춤이 어떻게 강남 스타일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매력은 너무 잘생기지 않고 적당히 생긴 것입니다. 그의 매력은 생긴대로 노는 것입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그는 열등감이 없습니다. 어디다 세워도 당당합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칠 수 없습니다. 자기 보다 키 큰 사람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 옆에서도 위축되지 않습니다. 강남스타일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에너지가 매력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7절) 율법은 모세가 원조,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이 원조, 강남 스타일은 싸이, 박재상이 원조입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말 춤을 추라 하고, 우리는 은혜 받고 동광스타일로 노래하며 살아가십시다.

  
󰊱 우리가 다 모이자!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가 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부흥회는 “우리가 다 모여야” 합니다. 다 모여야 다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그들은 다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한곳에 모였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1,4)
  
“다른 언어”는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만 모인 것이 아니라 다 모였습니다. 그때 당시는 믿는 자가 120명 정도였습니다. “다”라는 말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를 말합니다. 이번 부흥회는 다 모여 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임이 없으면 은혜도 없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마18:20)고 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한 아이를 말합니다. 온 가족이 모이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모이는 모임이 교회입니다. 모임없이는 교회도 없습니다. 기도 모임도 다같이 모이고, 성경공부 모임도 다같이 모입니다. 교사 모임, 성가대 모임, 구역 모임, 모임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친, 예수님의 아우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다른 성도들이 다같이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에게 은혜의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모이기를 소홀히 하고는 은혜 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모일 때 영적 생활이 발전합니다. 교제를 위한 모임, 회의를 위한 모임, 예배를 위한 모임, 은혜를 받기 위한 모임 등 모든 모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모인 제자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으나 도마는 못 보고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가보니 가족 친족 그리고 친구들이 다 모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께서 당신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을 통해 주실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다 충만한 데서 받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그의 충만한 데서” 그는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예수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데서 나온 영광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적대적입니다. 은혜는 진리와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은혜는 은혜이고 진리는 진리입니다. 은혜는 베풀어주는 것인데 반하여 진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은혜는 진리를 까다롭다 여기고, 진리는 은혜를 멍청하다고 여깁니다. 한 집에서 살수 없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은혜는 후한 덕이지만 진리는 냉정한 정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만 소유했고 어떤 사람은 진리만 소유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두 극단이 완전히 결합합니다. 은혜도 있고 진리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진리로 살게 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시다. 
  
내가 본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은혜와 진리가 싸웠습니다. 은혜파는 기도했고, 진리파는 제자훈련을 따랐습니다. 나는 은혜도 진리도 서로 대적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교회가 되어갔습니다. 일리는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구리는 어디 갔습니까? 십리가 있어야 진리가 됩니다. 
  
충만이란(플레로마pleroma), 하나님의 권능과 신적 속성과 권능의 전부를 의미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9-20)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충만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충만하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충만, 예수님의 충만은 우리를 만족시킵니다. 우리의 필요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손을 내밀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감질나게 주지 않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주십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줄지 않습니다. 주다가 모자라지 않습니다. 충만한데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듯이, 예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안수집사들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우리도 다 충만한데서 받아 충만할 줄 믿습니다. 

   
󰊳 우리가 다 은혜, 은혜 받자!

“...은혜 위에 은혜더라!”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는 말입니다.   은혜란 카리스마, 매력, 아름다움, 사랑스러움입니다. 영어로 ‘charm’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마리아에게 문안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눅1:28) “평안할 지어다!” 명령입니다. 평안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평안하려면 반드시 은혜 받아야합니다. 이번 부흥회 기간에 은혜 위에 은혜를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벳은 은혜 받은 마리아를 보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은혜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자란 번성하다, 성공하다, 뜻한바가 이루어진 만족한 상태입니다.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약4:6) 은혜 받았지만 더 큰 은혜, 더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복을 받았지만 복에 복을 더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은혜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첫째 은혜요,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힘입니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고난을 참을 수 있는 힘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 박해를 견딜 수 있는 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에 가시가 있었지만 주님이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셨습니다. 은혜는 병들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은혜가 소멸되지 않습니다. 병들어 괴로워도 사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9)
  
은혜 받으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압니다. 배고픔도 풍부함도 어떤 환경에서라도 살아가게 하는 비결을 배웁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2,13). 
  
은혜 받으면 부요 의식이 생깁니다. 자존감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평 불만 속에서 살던 사람이 자유와 평안이 있고 누구를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넉넉하고 만족한 사람이 됩니다. 
  
은혜 받으면 영광스럽게 됩니다. 온유함으로 위대하게 됩니다. 담대함으로 위대하게 됩니다. 충성함으로 위대하게 됩니다. 너그러움으로 위대하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오만한 자리에서 내려와 겸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싸이처럼 당당하고 담대하게 됩니다. 나의 나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라! 이런 고백이 있기 바랍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때는 지금 오늘뿐입니다. 때란 적당한 시간 결정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부요란 재물이 넉넉함을 말합니다. 풍족하여 베푸는 삶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이 부요함 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가진 자가 부요한 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요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게 하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은혜 위에 은혜! 복에 복이 더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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