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신앙 (벧전 2:1-10)

첨부 1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신앙 (벧전 2:1-10)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 문답서> 를 보면 신앙에 대한 요리 문답이 모두 107개가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첫째 질문이 “사람이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는 질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첫 번째 값어치가 어디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답합니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이란 나도 기쁘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하며, 나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웬만해서는 주일에 교회 와서는 인상 쓰지 마세요. 피차 보기가 흉합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까지 기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 거거든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즐거워하려고 주일에 나왔는데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해보세요. 이 얼마나 이중으로 죄를 짓는 일입니까? 주일은 교회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하면 좀 웃어주세요. (서로 웃으며 인사) 

우리에게는 의지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당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유사종교들이 호시탐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은 가운데 살고 있지만 그것들에 의해 내 영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시고 지금도 나를 사랑하셔서 힘든 세상, 한숨이 절로 나오는 세상 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실망도, 근심도 크지만 그래서 당시에는 언제나 캄캄하고 절벽 같은 상황이지만 돌아서보면 늘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회복시켜주시고, 치유하여 주셔서 오늘이 있게 하시며 또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자리로 이끄시는 은혜가 있어서 그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충만히 살아간다는 우리들의 의지적인 이 고백이 기쁘게 신앙 생활하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원리가 오늘도 살아가는 각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서 기쁨으로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한 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을 통해서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직은 레위 족에서만 할 수 있었던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9절을 보면 우리들의 신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만인제사장설>이라고 신학적인 용어로 정의하기도합니다. 고로 우리 모두는 거룩하게 살아야하는데 그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신앙원리란 어떤 것입니까? 
그 원리의 첫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버릴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생각과 의식과 사고가 아직도 이씨 조선시대의 고루한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이건 뭔가 잘못 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분명히 세상은 모든 것이 빨라지는 과학과 정보시대인데 이런 시대적 상황과는 맞지 않게 아직도 한국에는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 있답니다. 바로 점집입니다. 국제화 시대니 디지털 시대니 하면서 표면으로는 선진 문화를 표방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뒤 구석에는 점술이나 역술이 성행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곧 대학입시철입니다. 골목골목마다 또 한 번 난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 초, 중·고등학교 교사 숫자보다 무속인과 역술인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들도 인터넷 사이트와 스마트폰 역술 어플리케이션으로 하루 운세와 미래의 운명을 점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국내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의 연간 매출액 규모는 2,784억 원에 이르렀고, 한국역술인협회 등의 추산에 따르면 철학관 운영, 무속인 등 전국의 역술인은 45만 명에 이르고 관련 시장 규모는 2조~3조원 대에 달한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각 대학가를 중심으로 사주카페가 들어서고 유명한 서울의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 주변에는 사주카페나 벤처 형식의 역술원이 촌을 이뤄 소위 <무속 벨리> 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뒹구는 신문 쪼가리에 이런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수려한 경관, 냉·온방 완비, 봉고차 항시 대기, 협회회원 우대> 무슨 광고 같습니까? 식당, 카페, 숙박시설이나 유락시설의 광고가 아닙니다. <한국 민속신문> 에 실린 굿당 광고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점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30%가 교인이라고 하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세상 불안과 염려와 걱정을 버리지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사실은 그것들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적인 위로를 허탄한 것에서 얻겠다는 것이지요. 구원받았다는 성도들마저도 이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으니까 세상에는 거룩하지 못한 요소들이 영적독버섯처럼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절은 이외에도 우리들이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성취 욕구를 위해서 남을 해치려는 심사인<악독>을 버리라고 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짓되고 간사한 언어로 속이는<기만>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겉과 속이 달라서 가면을 쓴 것 같은<외식> 과 <시기>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비방하는 말>을 버리라합니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중상하는 말은 정말비겁한 자의 행동이요, 불신앙적인 소행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교인들에게서 참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들추어내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어쩜 이렇게 오늘 우리들에게 던져지는 비수 같습니까? 

사람의 생리작용 중에 정말 중요한 작용이 배설 작용입니다. 이 배설작용을 잘 하지 못하면<요독증> 이라는 병이 걸리게 되고 자칫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 신앙생활의 독소들을 버리지 못하면 <영적 요독증> 에 걸려서 우리의 영혼이 죽게 됩니다. 조금도 유익하지 않는 이것들은 빨리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다 버려야합니다. 또한 제대로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버렸으면 또 다른 것을 사모해야하는 것이 신앙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무엇을 사모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2절은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고 말합니다. 배고픈 갓난아이가 얼마나 엄마 젖을 달라고 보챕니까? 다른 것을 주면 혓바닥으로 밀어내고 거부합니다. 이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갓난아이가 갈비탕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해물 탕 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탕수육을 달라고 하는 갓난 아이 보신 적 있습니까? 만둣국 달라는 갓난아이는 없습니다. 달라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어도 먹지 못하고 소화도 못시킵니다. 이런 영양소가 갓난아이에게는 아무런 필요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엄마 젖에 들어 있는 영양소뿐입니다. 이것만 먹으면 질병도 이길 수 있고, 엄마 젖만 먹으면 머리도 좋아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심정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부탁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신령한 젖>입니다. 그런데 이 신령한 젖을 먹고 난 사람에게서 왜 악독의 독소가 나오고, 기만의 독소가 나오고, 비방하는 독소가 쏟아져 나오는 겁니까?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거나 하나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을 먹으면<영적 소화불량>에 걸리거나<영적식중독>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죽어서 천국에 갔고 다른 한 친구는 지옥에 갔습니다. 어느 날 천국에 살던 친구가 지옥에 있는 친구가 궁금해서 멀리서 지켜보는데 놀랍게도 지옥에 있는 친구가 진수성찬에다가 호화판술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생활이 좀 지루했던 이 친구가 지옥의 친구가 부러워서 사정사정해서 지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물고문, 불 고문 다 하더니 바늘 위를 걸어 다니는 고통을 매일 겪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이 사람이 “며칠 전에 보았던 진수정찬에 호화판 오락과 술 파티는 어떻게 된 거냐” 고 항변하자 옆에 있던 책임자가 말하기를 “이 멍청한 친구야! 그때 그 코스는 세상에 보여 주기위한 관광코스였지” 라고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보기에 즐겁고, 먹을 때 맛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놀이가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남을 궁지에 몰아넣고 의롭지 못한 일에 야합하여 즐거워하는 그 순간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나를 흔들고 나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관광코스일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독소에 취해서 살지 말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절 하반 절에 보면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신앙원리의 최종적인 목적은 자라나는 데 있다고 합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젖을 처음으로 한번 맛본 다음부터는 정신없이 빨아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 말씀을 제대로 받아먹기 위해 애쓸 것이요 신앙이 자라나지 않을 수 없다는 필연적인 신앙공식이 성립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10년, 20년을 믿어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까? 높고 귀한 직분 자가 되어도 왜 자라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까요? 분명히 어디엔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젖을 빨아 먹는 입에 상처가 난 채로 빨아서 그렇습니다. 속에 병균이 득실거리는 채로 신령한 젖을 아무리 빨아본들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에 그 정신과 신앙으로 아무리 말씀을 들어본들 그것이 나의 신앙에 성장을 가져다줄 리가 만무합니다. 이 독소를 가지고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자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거룩하라고 말씀하면서 일러 주는 원리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버릴 것을 버리고 사모할 것을 사모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아름다운 신앙을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