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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을 만나야 온전해진다 (마 5: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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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을 만나야 온전해진다 (마 5:46-48)


사람은 사람답지 못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하나님같으신 분이십니다.
로마 신화 이야기입니다. 제우스신이 밑에 신들에게 사람과 짐승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조금 후 보니 짐승이 사람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명령하였습니다.

“짐승이 너무 많으니 사람으로 바꾸어서 사람이 더 많게 하여라.”
그래서 많은 짐승들을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예 사람으로 만든 사람과 짐승으로 만든 사람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사람다운 사람과 짐승같은 사람이 공존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온전하기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예수님도 온전한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온전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온전하여 지면서 우리에게 온전하여 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는 스스로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사람들은 온전할 때 일을 마치게 됩니다.
집을 지을 때에도 준공 검사가 나야 완벽한 건물입니다. 
개 훈련을 시킬 때에도 3일간 굶깁니다. 그리고 개가 좋아 하는 고기덩어리를 앞에 던집니다. 주인이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개훈련이 온전하여 진 것입니다.

아라비아에서 왕이 타는 말을 훈련시킬 때에도 그렇습니다.
사막을 3십리 뛰게 합니다. 그리고 땀을 쪽 흘리고 지키게 하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리고 물가로 데리고 갑니다. 주인이 “마셔!”라는 말을 하기까지는 마시지 않아야 온전한 말이 됩니다.
하나님게서도 우리가 온전하여 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온전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가요? 무엇이 온전한 것이 온전한 것일가요?

1.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온전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말에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이솝 우화가 있습니다.
해질 무렵 길을 거닐 던 이리가 자기의 긴 그림자를 보고 탄복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덩치가 큰 데 그까짓 사자를 두려워 하였구나! 이것 보라구. 내 몸의 길이가 3M도 넘쟎아?”
그리고 이리는 사자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겠다. 내가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것이다. 물론 사자도 내 밑으로 오게 하겠다.”
이리가 하는 말을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었던 맹수들이 달려 들어 이리를 당장 잡아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말은 인격입니다. 칼로 난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입으로 난 상처는 오래 가는 법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말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잠 25;23)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 25;15)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 20;15)

“선한 말은 꿀송이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은 악을 쏟느니라”(잠 15;28)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혀는 양약같으니라”(잠 12;17-18)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란에서 보전하느니라”(잠 21;23)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잠 18;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잠21;6)

그렇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온전한 삶입니다.

살인범 김 기환이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우ㅢ 지존파라고 하는 살인 집단이었습니다. 김기환이 사형당할 때 마지막이 보도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가난하였습니다. 미술 선생님이 미술시간에 미술 도구를 가지고 오지 못 하고 그림을 그리지 못 하고 있는 김 기환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이 새끼!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
다음 미술시간을 앞두고 또 그렇게 심하게 맞을 것이 두려워서 미술 도구를 훔친 것이 첫 번 도둑질입니다. 도둑질이 나중에 살인범으로 자랐다고 고백하고 죽었습니다.
말 한 마디 실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망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에만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입니다.

2. 구제가 온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1)

예수님은 온전하고자 하면 구제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은 온전의 조건이 됩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이들이 온전한 이들입니다.
얼마 전 나는 우리 교회에서 멀리 살고 있는 집사님댁 심방을 다녀오면서 전철을 탔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전철에서 구걸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허리에 앰프를 찼습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가 지나갈 때 집중되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나는 같이 심방다녀 오는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돈을 넣을 텐데 살짝 넣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가만히 돈을 올려 놓을 것입니다. 알가요? 모를 가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실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정말 모르게 있는 정성을 다 하여 1000원짜리를 가만히 올려 놓았습니다. 놓자 말자 그가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아! 아무리 몰래 구제하여도 아는 구나!”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하는 선행도 다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 청전이나 춘 향이를 아는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명한 구제 이야기입니다.두 명의 유대인이 사업차 동행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두 명이 앉아서 구걸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이 돈을 꺼내어 주면서 다른 동행인에게 말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돈이 필요해. 줄 수 있는 만큼 주어야 해.”
그러나 그 사람은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구제를 거절하였습니다. 조금 갔을 때 낯선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낯선 사람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이웃 도시로 장사하러 가는 길입니다.”
낯선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생각이지요. 당신들은 이웃 도시로 갈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음의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영혼을 불러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의 영혼을 불러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어길 수가 없습니다.”
두 명은 놀라서 땅바닥에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방금 시각장애인에서 구제하였던 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는 50년 생명을 연장시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방금 구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친구는 지금 죽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구제하지 않았던 친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가족을 한번만 보고 죽게 하여 주십시오.”
“안 됩니다.”
“내가 지금이라도 구제하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잠간의 시간을 주십시오.”
천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몇 년만이라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겠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천사는 사라졌습니다. 두 명은 혼이 났습니다. 그 후부터 두 명은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구제하며 아름다운 생을 살았습니다. 구제에 언제나 앞장서는 삶이었습니다.
구제하는 삶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내가 미국에 들어가면 늘 유대인 책방에 가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늘 다니는 유대인 책방 <다윗의 집>에 들렀습니다. 살 것을 다 사고 나오려는 데 책방 주인이 내 손에 8불을 쥐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책방에만 있느라고 구제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유대인은 구제가 생명입니다.나 대신에 남을 구제하여 주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사업을 축복하십니다.”
나는 8불을 받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거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자선 단체에서 통을 들고 다니면서 모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넣었습니다. 남을 도와 주는 것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단계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두루 살피며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두 학생이 학비 마련을 위해 세계적 명성의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출연료 2000 달러에도 못 미치는 1600달러 수입이 고작이었습니다. 두 학생은 하는 수 없이 400달러 차용증서를 주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차용증서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600달러를 돌려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돈으로 경비를 지불하고 돈이 남거든 둘이 10% 나눠 갖이세요. 그리고 돈이 남거든 나한테 주시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파데레프스키가 폴란드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두 학생 한명이 후버로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세계대전과 경제 공황으로 굶주림과 싸워야 했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기였습니다.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할 총리로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 때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원조 식량이 도착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후버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신세를 갚았을 뿐이지요.”
구제는 온전입니다.

3. 인내가 온전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딛 2;2)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인내하면 온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지 못 하는 삶은 온전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온전하시다는 말은 예수님은 어떤 것도 참을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침 뱉음을 당하시면서도 참으신 분이십니다. 인내하여야 온전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이 찾아와도 인내할 수 있는 삶이 참 온전입니다.
어느 분이 <고통받는 자의 8복>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통속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희망찬 내일이 저희 것이요
아픔속에서 하나님의 눈동자를 의식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치유를 받을 것이요
억울함과 공격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의 상급이 저희 것이요
실패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재기의 힘을 받을 것이요
허물속에서도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늘 나라 평화를 받을 것이요
고독속에서도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솟는 기쁨의 샘을 받을 것이요
눈물속에서 새 것을 창조하시는 주님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의 일을 합동하여 유익하게 될 것이요

시련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배나 되는 축복을 받을 것이니라.“
인내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1980년대 미국 윌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광고 문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이제껏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당신은 넘어지고 말았지요.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 당신은 물에 빠져 죽을 뻔했지요. 처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야구 방망이가 공에 맞던가요? 강타자들, 홈런을 제일 많이 치는 타자들은 아웃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R. H. 메이시는 7번이나 실패한 뒤에 간신히 뉴욕의 가게를 성공시켰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존 크리씨(John Creasy)는 564권의 책을 출간하기 전에 753통의 거절장을 받았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714번의 홈런을 날렸지만, 1330번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실패를 걱정하지 마세요. 실패하여도 인내하시고 끝까지 나가세요.” 

인내는 온전을 이룹니다.

4. 사랑하는 것이 온전입니다.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하나님이 안에 거하고 계신 것이고 온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얼마 전에 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소망교회 오 병용장로님은 71세로서 삼립 산업 주식회사의 사장입니다. 소망교회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장로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소망교인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으면 사장이고 나이가 많지만 달려가서 시체를 닦아 주며 수의를 입혀주는 염을 25년간 1,826명을 하였습니다. 어느 때 장례가 나더라도 언제든지 달려갔습니다. 회사일보다 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부패된 시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다 닦아 주었습니다. 염으로 수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늙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오 윤식 집사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교회 염을 도맡았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없으신 분이 왜 이런 일을 대를 이어서 합니까?”
부자는 대답하였습니다.
“가장 슬플 때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이렇게 사랑하면 마음문에 열여서 쉽게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도 기도 노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에 3시간 내지 4시간씩 기도하고 있다는 보도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그 분야로는 그 분이 최고라는 인식을 받을 무엇을 찾아서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사랑은 힘입니다.

5. 믿음을 행하는 것이 온전입니다.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약2;22)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은 온전한 삶이 아닙니다. 믿는 바를 그대로 행하여야 온전한 삶이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온전이 아닙니다.
믿고 행하면 온전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도 그가 믿는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몸의 죽은 것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7-22)

믿는 바를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행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할 수가 있을 가요?

1. 모든 면에 인내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2.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3.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4. 믿음을 행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5. 사랑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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