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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의 책임입니까 (겔 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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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책임입니까 (겔 3:16-21)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의 영적인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17절 말씀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바벨론 포로 초기 때 활동하였던 제자장인 동시에 예언자입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3차례 포로로 잡혀갑니다. 에스겔은 1차로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바벨론에 온 후, 포로 생활 5년째 되던 해에 소명을 받고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로써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유다가 완전히 망하고 난 후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과 회복을 선포하면서 백성들이 회개를 통한 신앙회복을 촉구했던 선지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선민이지만 우상들을 섬기고, 하나님보다 주변 강대국을 더 의지하며, 탐욕과 토색과 착취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끌려와서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마음보다는 바벨론에 정착하며 안주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하며, 이방 종교로 개종하며, 바벨론 나라로 국적을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거룩한 선민이 아니라 이방 민족 중에 한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영적으로는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구원의 기회와 회복의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에스겔 선지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은 에스겔에게만 해당되는 사명입니까? 물론 아닐 것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5:2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임무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막 16:15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리고 행 1:8절에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다가 죽으면 의사자(義死者)라고 하여 국가가 가족과 자녀들을 보훈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나, 철로에 떨어져 위급한 상황을 맞이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철로에 뛰어 들어 구하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잠시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선행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선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영혼을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지상 최대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주된 의무이자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 1: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고 했고, 또 예수님께서는 눅 15:7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천국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며, 또한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상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전도는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4대의무가 있습니다. 납세의무, 국방의무, 근로의무, 그리고 교육의 의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무가 있습니다. 납세의 의무는 헌금의 의무이며, 교육의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이며, 근로의 의무는 봉사의 의무이며, 국방의 의무는 생명을 살리는 전도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선택이 아닌 성도의 의무로 이것을 이행치 않으면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파수꾼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난 2일 밤에 북한군 병사가 강원도 고성지역 동부전선 철책을 넘어 귀순한 것 때문에 군당국과 국회가 시끄럽습니다. 북한군 병사가 귀순한 것은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어수선하냐면 우리 군의 경계태세에 심각한 허점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3개나 넘어서 총 5.5Km를 50분동이나 걸어서 통과하여 전방소초 장병들의 숙소인 생활관 문을 두드리며 귀순 의사를 표시할 때까지 우리 군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고, CCTV와 열상감지장비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발각되지 않고 귀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경계 태세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북한군이 도발을 목적으로 이렇게 넘어왔다면 우리 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문제로 책임공방이 치열합니다. 누가 책임을 져야합니까? 아마도 당시에 근무를 섰던 병사들과 지휘관들, 그리고 국방부 고위직까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직접 죽이지 않았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않았으면 살인죄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그냥 구경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살인 방조죄입니다. 경찰은 몰라서 구속을 시키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을 묻습니다. 따라서 전도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 정도가 아니라 전도는 것은 우리들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파수꾼이 외치지 않고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18-19절을 보십시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악인들이 악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책임을 맡은 파수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지 않으면, 죄악에 빠져 있던 사람이 죄악 중에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사람이 죽게 된 책임은 말씀을 외치지 않는 파수꾼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였는데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아 죽게 된 것은 자신의 책임이기에 파수꾼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우리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에 간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책임의 절반은 당연히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 복음을 듣지 못해서, 아무도 예수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9:16절에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을 다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그 결과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는 말씀입니다. 

또 20-21절을 보십시오.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 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가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므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앞의 말씀과 의미는 같지만 대상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사람은 불신자에 대한 내용이라면, 이 말씀은 믿다가 낙심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잃은 양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인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지금은 예수를 떠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서 다시 믿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피값을 우리에게서 찾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은 다니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 다시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는 일도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에서 등록하여 다니다가 지금은 나오지 않는 장기 결석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해 우리 교회는 2백 명을 전도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전도 축제에 5백 명을 초정하도록 목표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이것은 사람들을 채우기 위한 목표가 아닙니다.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떠나서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한 거룩한 목표입니다. 

전도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도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전도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사람들이 오기만을 바라겠습니까? 

우리가 작정한 5명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역 안에 장기결석자로 있는 성도들에게도 이번 기회에 초청하여 다시 교회로 모시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기독교 초기에 유명한 부흥사이셨던 최권능 목사님이 전도사 일 때, 평양시내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버스 안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천당 가세요" 하면서 열심히 전도를 합니다. 마침 당시 신학대학의 교수인 채필근 목사님이 그 버스에 앉아 있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신학교수인 채필근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권능 목사님은 그 앞에 가서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고 소리쳤습니다.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 채필근 목사님은 "최전도사! 나야 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최권능 목사님이 채필근 목사님을 향하여 큰소리로 "벙어리 교인이구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채필근 목사님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벙어리 교인은 아닙니까? 입이 있지만, 복음을 들었지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영적인 벙어리는 아닙니까? 이번 새생명 전도축제 및 잃은 양 찾기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영적인 파수꾼이 되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고백교회 지도자였던 마르틴 니뮬러 목사님이 전쟁이 끝난 후에 “전쟁에 대한 책임백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가 굉장한 논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임백서에서 히틀러는 별로 비방하지 않고 오히려 독일교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니뮬러 목사님이 이 책임백서를 발표하기 전에 꿈을 꾸었는데, 똑같은 꿈을 일곱 번이나 꾸었다고 합니다. 그 꿈이 어떤 꿈이었느냐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을 통과해야 하는 꿈인데, 질문에 합격을 해야 심판대를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니뮬러 목사님은 주님의 질문을 받고 쉽게 합격을 받고 심판대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뒤에 따라오던 사람이 질문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왜 예수를 믿지 않았는가?" 그때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주님, 아무도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인데 바로 히틀러였다는 것입니다. 

이 꿈을 꾸고 난 후에 니뮬러 목사님의 생애와 관심을 온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백서”를 통해 히틀러가 그처럼 악독하게 전쟁광이 된 것은 바로 자신과 독일교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자신과 독일 교회 목사들은 히틀러와 대항해서 싸우고 히틀러가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니뮬러 목사님은 결론적으로 "이 일에 대해서 크리스천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 복음을 듣지 못해서 삶이 뒤틀리고, 공허하고, 불안해서 세상에 쾌락에 취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오늘 우리들이 증오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의 그 죄악과 심판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형제들, 친척들이 만약 예수 믿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죄악 가운데서 죽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들이 늘 여러분과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들에게 한 번도 예수 믿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무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나는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대답한다면 우리가 그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 나라의 파수꾼들입니다.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 죽어가는 영혼들도 살리고,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고 별과 같이 빛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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