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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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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울 것이 없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안토니오라는 수도사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오랜 세월 수도했습니다. 이제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을 졸업한다고 생각하고 구두부터 수선하려고 수선공에게 갔습니다. 구두 수선을 하는 동안에 물었습니다. “식구는 몇 명입니까?”“아내와 아이들 8명으로 모두 10명입니다”“그러면 구두를 수선하여 열 식구가 굶지 않을 수 있습니까?” 구두 수선공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주님의 종들의 신발이 오랫동안 편안하고 해지지 않도록 수선할 뿐입니다. 이것에만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요” 이 수선공의 말을 들은 안토니오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아직까지 수도가 덜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에게 그 청지기에 관한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주인은 그를 불러다가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눅16:2). 이렇게 사표를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청지기는 이 말을 듣고 "내 직분을 빼앗기게 됐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말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하며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일꾼들이 진리와 비 진리를 분별 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오르도토문타)은 '곧은' 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오르도스)와 '절단하다' 는 뜻을 지닌 동사(템노) 의 합성어입니다.

석공이 대리석을 바르게 자르듯, 농부가 쟁기로 밭을 곧게 갈 듯, 경주자가 운동장을 규칙대로 달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가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별하여 삶에 적용하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작곡가 헨델 (George F. Handel)이 가발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에 가발은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난처해하던 헨델에게 한 아가씨가 가발을 찾아다 주었습니다. 근처 이발소에서 일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헨델은 그녀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헨델은 그녀에게 자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야' 의 친필 악보를 주었습니다. 내심 그녀와 결혼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델이 그 이발소에 들렀습니다. 아가씨는 헨델이 온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녀는 무심코 동료 이발사에게 "머리를 말게 악보 몇 장만 주세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헨델은 조용히 이발소를 빠져 나와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악보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여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말씀을 읽고 듣지만 모두가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은 성령께서 조명해야만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성경은 한 권의 책으로 보일 뿐 살아있는 말씀으로 와 닿지 못합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한자어가 있습니다. '제 밭에 물대기' 라는 뜻인데 자기에게 이롭게 되도록 멋대로 언행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뜻에 맞도록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나의 뜻을 고쳐야 합니다.
혹 말씀에 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듣기 좋은 말씀과 먹기 좋은 말씀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일꾼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항해하는 자들이 지도를 바르게 볼 줄 아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배를 잘 조종할 줄 알아도 지도를 볼 줄 모르면 나중에는 아주 엉뚱한 곳에 도달하거나 바다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그것을 바로 실천할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자기 몸을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충성된 일꾼이 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합니다.
일꾼이 세대에 물들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경을 통하여, 예배 설교를 통하여, 골방 기도를 통하여, 또는 서로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예민하게 청취하여 언제 어떠한 때든 그 지시대로 생활해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의 표적인 구름이 성막 위에 떠오를 때는 그것을 신호로 하여 전진했습니다. 가령 머물고 싶은 때라도 길을 진행했습니다. 반대로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비록 진행하고 싶더라도 머물러 있었습니다. 구름이 떠오르기를 참고 기다렸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행동해야 할 때는 과감히 행동하고 억제해야 할 때에는 인내로 억제하는 참된 용기를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러하지 못할 때 부끄러운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종달새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조그만 상자를 들고 나무 밑을 지나갔습니다. 상자 안이 궁금해진 종달새는 젊은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지렁이가 가득하지.”그 말에 구미가 당신 종달새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지요?” 젊은이는 상자를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네 아름다운 깃털 하나와 지렁이 한 마리를 바꿀 수 있단다.” 종달새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깃털 중에 몇 개가 뽑힌다고 해서 크게 표 나지는 않을 거야.’종달새는 깃털을 뽑아 젊은이에게 내밀고, 지렁이를 받아먹었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종달새는 하나가 더 먹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날아다니며 땅을 살펴야만 지렁이를 구할 수 있었던 종달새는 나무 위에 앉아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종달새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면서 자꾸만 깃털을 뽑았습니다. 어느새 종달새는 깃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벌거숭이가 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진 종달새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어디론가 포르르 날아가 버렸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또 그것을 고집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항상 복음을 바로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 잘못된 것을 추구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개인기도 시간에 슬피 울며 기도하는 나이 많은 권사님이 있었답니다. 그 권사님의 기도는 너무나 애절하고 긴박했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그냥 죽으면 안돼요. 너무 불쌍해요. 주여, 믿습니다. 살려 주세요" 권사님의 기도소리가 얼마나 크고 절실했던지 목사님의 귀에까지 들렸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랐답니다. 

그리고 필시 권사님 가족 중에 급환으로 입원을 한 사람이 있거나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나보다 짐작을 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권사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가서 조용히 물었답니다. "권사님, 기도 중에 누구를 꼭 살려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위급한 가족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그 권사님은 울먹이면서 "목사님 너무 너무 불쌍해요, 꼭 살아나야 해요. 목사님도 기도해 주세요." "그럼요 저도 기도할께요. 누가 그렇게 위급한가요?" 그랬더니 이 권사님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목사님은 텔레비젼도 안보세요? '장미빛 인생' 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맹순이가 암으로 죽어가잖아요. 불쌍해요. 기도해주세요. 그 권사님은 맹순이를 살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아가 인정된 자가 되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지 기독교 교리만을 전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생명을 전달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복음 전도자는 새 생명을 일꾼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남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힘쓰며 노력하며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 충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인정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황태자가 죄인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을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황태자를 만난 죄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억울한 사람을 잡아 가둔 게 틀림없었습니다. 황태자는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가 '무슨 죄로 들어 왔느냐'는 황태자의 질문에 자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들어와 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황태자가 그 중 가장 무거운 죄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죄수는 대답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가 가장 큰 죄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황태자가 그 죄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모르는 큰 죄인이었소.' 황태자는 북받치는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황태자는 그 죄인을 곧 석방시켜 자신의 비서로 삼았다합니다.

일본에 다카바다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었다합니다. 그는 기독교에 들어와서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버렸다합니다. 그는 '일본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유물사관밖에는 읽으라고 장려할 만한 책이 없다.'라고 하며 <자본론>을 번역하여 출판하였고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였다합니다. 그런 중에 그는 결핵에 걸려 끝내는 회복하지 못했다합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 오자 그는 성경과 찬송을 찾아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합니다. 세상 떠날 시간이 임박해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졌다합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하나님께로 가네. 모든 과거의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 없이 간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합니다. 
  
사람 앞에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캐스퍼라고 하는 스위스의 작은 시계 공장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계가 잘 안 팔려 부도위기와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끼니를 거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점잖은 신사가 와서 시계를 사갔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도 신이 나서 이젠 되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이 시계를 산 후 하는 말이 “며칠 전, 옆의 집에서 시계를 샀는데 그 시계가 가지 않습니다.” 캐스퍼가 옆집의 그 시계를 고쳐 주고는 손님에게 판매한 시계를 다시 달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보던 아들이 화를 냈습니다. 아들에게 말하기를 “받아서 복된 돈이 있고, 복되지 못한 돈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이틀 후 다시 찾아왔습니다. “나는 무역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시계를 사다가 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신의 것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그만치 2년 치를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좌절 속에서 살고 있던 중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실망과 낙담을 이겨 보려고 몇 달 동안 계속 해서 기도드렸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일을 중단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잘될 때까지 기도를 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동료 선교사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동료의 집에 갔을 때 그는  벽에 씌어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습니다. “감사하라” 이 말씀이 가슴속 깊이 와 닿는 순간 그는 스스로를 반성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찬양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었는가?’그는 번민과 좌절에서 벗어나 침울한 기도 대신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중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자들에게로 즉시 돌아가서 그들에게 찬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때 선교사의 간증을 들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복이 임했고, 그동안 풀리지 않고 있던 문제들이 찬양을 통하여 해결되었다합니다.
  
재능도 드려야 합니다.

조지 베브리 쉐아는 한때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방송국의 프로그램 편성자였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예수님을 믿었으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카고의 어느 운동장에서 신학교를 갓 나온 젊은 전도사가 열고 있는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돈도 인기도 얻었지만 내 인생의 목적을 잃었어.” 그날 밤 그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 자기 일생을 하나님께 다시 바치기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얼마 전에 예수 믿는 어머님 친구가 한번 작곡해 보라고 주셨던 가사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사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 내용은 다시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 지금까지 받았던 돈의 배 이상을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지 베브리 쉐아는 이 부탁을 한마디로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오늘 밤 저는 제 목소리를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제 목소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여 질 것입니다.” 이 전화를 끊고 난 후, 그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물질도 드려야 합니다

미국의 큰 플라스틱 회사 사장으로 이름난 부자 스텐리 템 씨는 날로 번창하고 바빠만 가는 회사 일로 인해 옛날처럼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지 못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큰 회사는 네 번째 도산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마음속에는 물에 빠져가던 베드로가 주님을 찾아 구원을 받던 일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 그는 급히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리 플라스틱 회사의 사장은 하나님이시며, 매 수익금의 51%는 사장님의 것입니다.’라고 한 서약입니다.

그 후 그는 매일 2시간씩 회사 일을 사장이신 하나님과 상의(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그 회사는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고, 수익금의 51%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교회에 드려졌습니다. 그 결과 연간 200만 달러 이상의 순이익금을 내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삶도 드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분이 허름한 옷을 입고 비행장에 앉아 있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보니 한국 사람이 분명한데, 말을 걸고 싶어서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그 분은 아프리카에 선교를 다녀오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목수라고 했다합니다. 아프리카에 교회를 지으려고 6개월을 생각하고 갔는데, 3개월 만에 교회를 짓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시간을 낼 수 있었냐고 물어 보니, 서울에 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 했다가 시간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좋은 일군이 되려면 그 시간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어서 자기가 한가한 시간을 조절해서 그 동안 밀린 십일조의 시간을 6개월로 하고 아프리카에 갔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보니 처음에는 아프리카 인들이 말을 안 듣고, 일도 성실하게 하지 않고, 돈만 요구하였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일을 끝내고 집에 가려던 사람이 목수의 옷이 좋다고 상의를 벗어 달라고 해 벗어 주었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은 속옷 셔츠를 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남은 옷을 요구해 모두 벗어 주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그 마을의 사람들이 목수를 부르기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선교사도 많고, 목사도 많았는데, 당신이 작은 예수라고 했다합니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도와줘서 6개월 걸릴 교회를 3개월 만에 공사를 마치고, 선교사에게 옷을 얻어 입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꾼이므로  주의 일을 함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어느 날 아침 급한 용무로 대통령을 방문한 비서관이 응접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복도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무심코 옆을 지나려다 비서관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구두를 닦는 사람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용모를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각하, 스스로 그런 일을 하시는 모습이 세간에 알려지면 좋지 않습니다.' 비서는 전부터 대통령이 시골사람같이 거칠고 촌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다고 수군거리는 세간의 말을 듣고 난처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음먹고 어려운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잔잔히 미소를 띄우며  '허, 구두 닦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자네 생각이 틀렸다고 느껴지지 않나? 대통령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야. 세상에는 천한 직업이라고 말할 직업은 없지. 다만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지라고 대답했다합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선교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고국 선교 단체가 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을 도울 선교사를 보낼 예정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는 쉬운 길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리빙스턴이 회신을 보냈습니다. "쉬운 길로 오려는 선교사를 파송하려면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전혀 길이 없어도 오려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그리고 길이 없어도 오려는 사람이 나에게 필요합니다.” 쉬운 길을 찾아 알려 주면 쉽게 오고 쉽게 갈려고 하니 그런 일군은 선교에 필요 없다는 강한 의미입니다. 혹 신앙의 쉬운 방법만 찾는 일꾼이 아닙니까? 쉽게 직분을 감당하려는 모습은 아닙니까?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좋은 일꾼 되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좋은 일꾼 되는 달에 성례에 참여하며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인정된 자가 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자가 되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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