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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계획하라 (삿 4:17-22)

첨부 1


함께…계획하라 (삿 4:17-22)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7)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8)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19)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0)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1)
<사사기 4장 17~21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오늘밤부터 부흥회가 열립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합니다.
새벽 3번, 저녁 4번, 수요일낮 1번 모두 8번의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 시간 말씀의 자리에 잇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으로 접속하시는 분들도 
시간되실 때마다 부흥회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을 즐겨합시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만든 승리

출애굽 한 이스라엘 사람들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에는 중앙 정부도 … 왕도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하나의 동맹국 체제를 구성하여 움직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군사적 지도자이자 동시에 일시적 통치자인(정치,군사적 지도자) 
‘사사(Judge)’를 중심으로 민족이 연합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사사기는 
사사들에 의해 통치되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는 평안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이방 민족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본문 말씀도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라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이스라엘보다 월등한 무력을 앞세워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학대했고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삿 4:3)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위해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사사 드보라였습니다.
사사기에는 모두 열 두 명의 사사가 등장하지만
드보라는 그 중의 유일한 여자입니다.
대부분의 고대 문화가 그렇듯이
남자 중심이고 가부장적이던 당시 이스라엘 문화에서도
여자가 지도자로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졌고 
높은 자리에 오른 유명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대통령, 수상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있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 상관 밑에서 일을 합니다.
가정적으로도 예전보다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집집마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리고 명절에도 딸 있는 집은 북적거리는데
아들만 있는 집은 잠깐 북적거렸다가 갑니다.
요즘에는 여자들의 파워가 강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드보라는 
수많은 남자들을 제치고 사사로 선택 되어 주목받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드보라에게는 세상에 자신의 뛰어남을 펼칠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입고 가나안을 물리쳐서
스스로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낼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과의 전쟁에 혼자 힘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장군 바락에게 사람을 보내서
함께 싸울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싸움이었고
하나님께서 적군을 넘겨주리라고 약속하신 전쟁이었습니다. (삿 4:6~7)
쉽게 말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동역자와 함께 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드보라의 권유를 받은 바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에 홀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드보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 ”(삿 4:8)

드보라와 바락 …, 바락과 드보라 … 
두 사람은 함께 동역하기를 / 함께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 
또 한 사람은 지도자를 도와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
서로의 역할을 인정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동역을 통해 드보라와 바락은 
가나안 장군 시스라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는
‘거미줄이 서로 뭉치면 사자를 잡을 수도 있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다 협동하고 합력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두께 2인치, 폭 4인치의 각목 하나가 
지탱할 수 있는 최대 하중은 167kg이라고 합니다. 
우리 예상대로라면 각목 두 개를 사용하면 그 두배 …
334kg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똑같은 각목 두 개를 접착제로 붙이거나 못을 박으면 
최대 하중이 2,212kg으로 증가합니다.(한 개일 때 보다 13개 증가) 
하나가 10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린더 엔진도
8개를 연결하면 8 곱하기 10해서 80마력이 아니라 
285마력의 힘을 생산하게 된다고 합니다.
<열린교회, 내 목회 칼럼(김필곤 목사, 2007. 6. 3. 참조>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개체가 힘을 합했을 때
둘이 지닌 힘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 혼자서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찬양하면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10명이 하는 것보다 100명이 하는 것이 더 멋있습니다.
찬양대원이 두 배로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브룩클린 태버니클(Brooklyn Tabernacle Church)이라는 
교회에 갔었는데 그 교회의 찬양대원이 400명이었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400명의 단원 모두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중에 몇 명은 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400명의 목소리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 혼자서 기도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도에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 중보기도 팀이 있는 이유도
기도의 동역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여
기도의 능력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힘든일이 생겼을 때,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이런 문제가 있는데 생각날 때 꼭 기도해 주세요’라고 
기도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10명이 있습니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10명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어떤 일이 있을 때 
기도부탁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말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잘 들으세요.
교회는 나 혼자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되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꼭 이웃을 돌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기도할 친구가 없다면 신앙생활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회, 부서에 참여만 해도 기도의 동지가 20명은 될 것입니다.
기도의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요한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했을 때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팀, 기도의 동지를 모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봉사 하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뜻을 모아 섬기면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울려야 합니다. 함께 모여야 합니다.
어울려 할 수 있는 봉사의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네트워크

이스라엘이 가나안과 벌인 전쟁은
드보라와 바락의 노력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패해 걸어서 도망했던 
가나안의 장군 시스라는
안면이 있던 야엘이라는 여인의 집에 몸을 숨겼습니다.
야엘을 믿었던 시스라는
누군가 자기를 찾으면 없다고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시스라가 잠든 사이 …
야엘은 오히려 시스라를 쳐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학대하던 가나안의 지배가
야엘이라는 한 여인에 의해 마무리 된 것입니다.

가나안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거두었던 승리는
드보라가 혼자 만든 것도 … 
바락이 용맹함으로 일궈낸 것도 … 
야엘이라는 여인이 우연히 이루어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승리였습니다.
현대를 가리켜 네트워크 시대라고 합니다.
개인의 능력이 물론 중요합니다.

네트워크 시대에는 
어떤 사람들과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A라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 혼자만의 능력만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친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봅니다. 
혼자 잘 한다고, 혼자 똑똑하다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네트워크는 어떻습니까?
가정에서 … 일터에서 … 교회에서 …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십니까?
그 관계는 또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갈등과 다툼입니까?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연합하여 일하다 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어떤 역할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만
어떤 역할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깐 일하고, 작은 일을 하고서도 
많은 칭찬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많이 일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럿이 협력하여 일을 할 때면 
드러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마음에 상처받고
갈등과 다툼이 생깁니다.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어떤 분은 지하의 기계실에 있는 분도 있고, 방송실에 있고,
인터넷중계실, 주차관리, 주방에서 …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는 분들 모두 
다른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얼굴이 드러나는 곳에서 봉사합니다.
그 모든 분들이 하나될 때 예배가 진행되는 것처럼
일에는 다양함이 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전 세계가 깜짝 놀라는 이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강호로 불리지만
98년 당시까지 월드컵에서 우승을 해 본 적도 없고 
바로 전 대회인 94년 미국 월드컵에는 
지역 예선 탈락으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던 프랑스가 
우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은 프랑스가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에메 자케(Aime Jacquet)’ 대표팀 감독을 꼽았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는 선수는 우대했지만
스타플레이어는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였던 
에릭 칸토나(Eric Cantona) 라는 선수조차 
국가 대표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에릭 칸토나는 개인 플레이와 드리블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패스를 하지 않고 혼자 잘하는 선수였습니다.
그 대신 자케 감독이 등용했던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은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잘 돕고 
팀워크를 극대화시키는 선수였습니다.
<김인환, 『사사기, 다음 세대 전사가 되어라』 (서울: 글로벌틴, 2009), p.19. 참조>

함께 할 줄 아는 선수가 함께 큰 일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의 개성은 다 다르지만
함께하는 일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는 원인은 
대개 비슷합니다.
서로의 역할이 갖는 비중 때문에 …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
더 드러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 
그래서 공동체의 화평이 깨집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 협조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드보라와 바락, 또 야엘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 전략가였고,
바락은 드보라의 요청에 따라 앞장서서 행동하는 
행동 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
조용히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과 평화는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1872~1933)는
말이 어눌하여 멋있는 연설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정치가로서 성공하여 
결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단점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캘빈 쿨리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듣습니다. 그리고 내 맘대로 합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캘빈 쿨리지가 한 말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것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선 리더는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들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 그리고 리더는 자신의 분명한 방향성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들어서는 제대로 일할 수 없습니다.
변화, 도전 … 모든 사람의 말을 들어선 못합니다.
여러 사람의 말을 다 들은 다음에는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한 번 판단했으면 강력하게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훌륭한 리더입니다. 
<국민일보, 2002년 4월 11일, 겨자씨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합니다.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세상을 이끌어가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뜻이 세워졌다면 …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교회를 세워 모이게 하셨고,
교회 안에서 모인 성도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모여 우리가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개성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 서로 팀을 이루어서 …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가족’, ‘내 집’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 가족’, ‘우리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서양 … 특히 영어권에서는
‘나’를 뜻하는 단어 ‘I'와’
‘우리’를 뜻하는 ‘we’를 정확하게 구별합니다.
좋다, 나쁘다/맞다, 틀리다 … 가 아니라
보통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1955년, 흑인 여성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 노래한 성악가는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이 있었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독특한 말투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나’라는 단어 … ‘I’를 사용해야 할 때조차
‘우리’… 즉 ‘we’라는 말을 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 앤더슨이 자신의 말투가 특이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노래를 한 곡 부를 때도 작곡가가 있어야 하고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악기 연주자들도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 팀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노래는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것도
결국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김인환, 『사사기, 다음 세대 전사가 되어라』 
(서울: 글로벌틴, 2009), p.23. 참조.>

세상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찬양을 하고 … 교제를 하고 … 봉사를 하고 …
내가 내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임을 기억하고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이 얻었던 그 승리는
누구 한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각자 귀중한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힘을 모았던
드보라와 바락, 야엘을 기억하며
여러분도 속한 가정에서 … 또 직장에서 … 교회에서 …
서로의 역할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서로 귀히 여기며 사랑하며 
‘우리’가 되는 일에 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사람과 마음을 모으는가? 
내가 기도할 때 어떤 사람에게 기도를 요청하는가?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공동체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나’로 끝나면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되었음에 감사하며
함께 도전하고 …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축복의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들 이 땅에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하늘백성으로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각자 각자 천하보다 귀한 존재지만
그 천하보다 귀한 존재들이 우리로 모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혼자 잘난 세상 삶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하늘백성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오늘 여기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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