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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 성취 (시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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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성취 (시 37:1-11) 
 

오늘 설교 제목이 ‘소원 성취’입니다. 제목이 좀 기복적이고 세속적으로 들리십니까? 그래도 제가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한다면 아멘 할걸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소원을 가지고 있고 그 소원이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게 하는 상술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지에 가면 그렇게 소원을 빌게 하는 곳이 많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스라엘의 성지를 방문해도 그런 곳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우물가에 서 있었습니다. 먼저 부인이 몸을 굽혀 소원을 빌고 동전을 던졌습니다. 남편도 소원을 빌러 몸을 굽혔습니다. 하지만 몸을 너무 많이 굽히는 바람에 우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순간, 부인이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아! 정말 이루어지는구나!” 아내가 빈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남편이 죽게 하여주옵소서.’였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성취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1,7,8절) 
   
1절을 읽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우리의 생각에는 의인이 잘 되고 악인은 망해야 하는데 세상에는 악인이 잘되는 일도 많습니다. 악인은 형통하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것 같고 육신도 건강하고 자식들도 잘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의인들은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악인의 형통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이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할 이유 4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악인은 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2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한 자는 잠시는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 그 인생은 실패하고 맙니다.
최영기 목사님은 미국 범죄 조직에 흥미가 있어서 관련 책자를 많이 읽었답니다. 그런데 마피아 두목들을 보면 인생을 평탄하게 마친 사람이 거의 없답니다. 전성기에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패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권세를 휘두르지만 감옥살이를 하다가 죽던지 감옥에서 맞아 죽던지 감옥에서 풀려 나와도 가난하고 비참하게 인생을 끝냅니다. 악하게 성공한 사람이 오래 가는 법이 없습니다.
   
둘째, 악인은 남에게 행한 대로 당하기 때문에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14,15절을 읽겠습니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하나님이 자연을 지으실 때에 자연 법칙을 만드셨듯이 인간 사회에도 한 가지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영화는 허구이기는 하지만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총잡이를 보면 그렇습니다. 소문난 총잡이가 되기 위하여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쏴 죽였을 것입니다. 결국 총잡이로 유명해지면 이에 도전하는 다른 총잡이에 의해서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52). 악인은 남에게 행한 대로 받습니다.
   
셋째, 악한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악한 사람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20절에서는 연기처럼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35, 36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악인은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넷째, 죽음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기 때문에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악인들은 내세를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즐기다가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짧은 인생동안에 이웃을 이용하든지 파괴하든지 상관없이 최대의 쾌락을 맛보며 사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생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는 것은 한번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히 9:27). 12, 13절을 읽읍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그들은 심판 날을 모르고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열심히 믿음으로 사는데도 악인보다 못해 보이는 경우가 있더라도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영적 가치가 있고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야곱이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라반은 악한 자였습니다. 그는 조카를 이용할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라헬을 이용해서 야곱을 14년간 종살이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품삯을 10번 이상 속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악인 라반의 재산을 야곱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보통은 흰색 털이나 검정색 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얼룩무늬가 있는 양이나 염소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인 야곱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라반과 거래를 하게 하셨습니다. 양이 태어나는데 검거나 흰 것은 외삼촌 라반의 것이 되고 얼룩무늬 있는 것은 야곱이 것이 되는 계약입니다. 굉장히 야곱에게 불리한 계약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이 고생만 하고 새로 태어나는 양들은 다 자기의 것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건강한 양들은 얼룩무늬를 가지고 태어나고 병든 것들은 희거나 검은 색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악인 라반을 치시면서 동시에 의인 야곱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으십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악인들이 잘 되는 것으로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3절). 
   
3절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도와주시고 그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이유는 세상은 너무나 강하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배후에는 마귀가 숨어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 같아도 사실은 너무나 무력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유럽을 정복했다던 ‘알렉산더 대왕’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보면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재롱 피우는 원숭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큰 소리치던 ‘나폴레옹’도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말년을 보면 정말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인트헤레나 섬에 유배되어 갈매기를 부러워하며 살다가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하일색 ‘크레오파트라’는 부귀영화 권세를 손으로 주무르며 살았지만 결국은 독사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사람은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욥 4:19). 그만큼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이 메뚜기 같고(사 40:22) 버러지 같다고 했습니다(사 41:14) 사도 바울은 인간의 연약함을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다고 했습니다(고후 4:7).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리석게 큰소리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4절을 봅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말은 ‘즐거워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즐겁습니까? 무엇을 할 때 즐겁습니까? 사람마다 즐거워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야 즐겁습니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즐겁습니다. 공부를 해야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해야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해야 즐겁고 또 어떤 사람은 술을 마셔야 즐겁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야 합니다. 예배가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일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밥을 하면서도 그 일이 주의 일이기에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표현이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5절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십니다. 목욕탕에 가서 귀중품을 주인에게 맡기면 주인이 책임을 져주는 것처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 우리의 염려, 우리의 행사, 심지어 우리의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맡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맡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에게 맡겼다면 증거가 있는데 그 증거는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염려를 하고 있다면 아직 온전히 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맡긴다’는 말은 ‘굴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짐, 염려, 행사, 원수를 주님에게 맡기면 그것들이 내게서 주님에게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볼링공을 굴리면 공이 내 손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맡기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7절). 7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믿음이 있으니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적인 뜻은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갈수록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대기만성이 가능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앞부분에서 안 된다고 포기하면 뒤에 가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앞부분에서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믿고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사람이 대기만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에 잠잠히 참고 기다릴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기만성 하는 것입니다.
   
책을 출판하는 것이 평생소원인 50대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원고를 써서 많은 출판사에 보냈지만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퇴짜를 맞고 돌아온 원고뭉치는 쌓였습니다. 실망에 빠진 그는 원고뭉치들을 쓰레기통에 던졌습니다. 놀라서 말리는 아내에게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쳤습니다. “그까짓 원고 다 갖다 버려요! 원고를 쓰느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그 다음 날 그의 아내는 그 원고 뭉치를 들고 또 다른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출판사의 사장은 원고라기에는 너무 크고 투박한 갈색포장의 꾸러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갈색포장지를 풀자 쓰레기통에 버렸던 원고뭉치였습니다. 쓰레기통에 묻혀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원고는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의 [적극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목사님의 아내마저 포기했다면 오늘날 까지 읽히는 그 유명한 저서는 출판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곧 있으면 때가 찾아오는데 우리는 잠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잠잠히 참아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으로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 이상하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왔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 절호의 찬스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잠잠히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축복하시고 다윗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역전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3. 성실하십시오(3절). 
   
3절에서 다윗은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원을 가지고 있어도 노력하지 않고 불성실한 사람은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 7:8입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이 말은 하나님께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갚아달라는 기도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자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으십니다. 자기 감정이 어떠하든지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회일이든 사회일이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성실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겠습니까?
   
사무엘 S. 스컬이라는 사람이 애리조나의 사막에 있는 농장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토네이도가 들이닥쳤습니다. 날이 밝자 사무엘은 아픈 몸을 일으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농장은 우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트럭은 헝겊처럼 찢겨져 땅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집은 지붕이 반파되었고, 닭장은 어디론가 강풍에 휩쓸려 간 듯 보이지도 않았고, 죽은 닭들은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망가졌습니다. 그가 망연자실한 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수탉 한 마리가 더미 속에서 힘겹게 몸을 비비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탉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깃털도 대부분 빠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탉이 잔해 더미 밖으로 올라서더니 그 더미 제일 높은 나무판자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수탉은 앙상한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의기양양하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수탉은 자신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 수탉에게는 하나님이 매일 하루의 시작을 알리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수탉은 토네이도로 인해서 털도 다 빠져버렸는데도 힘든 아침인데도 다른 때와 동일하게 성실하게 울었던 것입니다.
   
짐 쿠제스와 배리 포스너가 함께 쓴 ‘리더십 챌린지’에는 경쟁력 있는 리더의 네 가지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그들은 성실합니다. 둘째는 그들은 결단력이 있습니다. 셋째는 그들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넷째는 그들은 비전이 있습니다. 성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첫째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자를 쓰시고 성실한 자의 소원을 만족하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시대에 하나님께 붙잡혀서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던 이유는 성실함입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성실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인 면입니다. 그는 그 당시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적들이 흠을 찾을 수가 없었던 분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면입니다. 그는 하루에 3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문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의 기도생활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1달간 기도를 못하게 하는 이상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 기간 동안 기도하다가 걸리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의 성실함을 유지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 앞에서 성실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그런 성실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4. 온유하십시오(11절). 
   
1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땅은 누가 차지합니까? 승리자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일만 명을 상대로 해서 아주 면밀하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성공의 비결이 뭐냐? 성공의 결정적 원인이 뭐냐하는 질문에 자본과 기술과 두뇌, 이것은 15%밖에 안 됩니다. 성공의 결정적 요인은 화평과 온유한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성품이 성공 비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온유가 성품화 된 사람이 모든 면에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란 말은 따뜻할 온(溫)에 부드러울 유(柔)자를 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친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서비스 정신입니다.
런던 한인 장로교회 장로님 한 분이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하다가 은퇴하고 가게를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이분은 손님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경영의 우선으로 삼고 시작했는데 이 분이 이 가게를 인수한 후부터 가게 매상이 4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1년에 30만 불 되던 매상이 130만 불로 올라갔답니다. 서비스로 성공한 것입니다.
   
온유는 부드러움입니다. 도교의 창시자인 중국의 노자는 젊을 때 스승 ‘상창’을 찾아가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스승이 노자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물었습니다. “나에게 이빨이 있느냐?”, “이빨이 없습니다”, “나에게 혀는 있느냐?”, “예, 혀는 있습니다.”, “이제 너 알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강한 것은 약하고, 약한 것은 강하다는 말입니다. 이빨처럼 강하면 부러지고 깨어져서 없어지지만, 혀처럼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 사람은 끝까지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오래까지 남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온유함은 따듯하고 부드러움도 포함되지만 진정한 뜻은 하나님께 길이 드려진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야생마를 훈련시켜서 기수의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나운 개를 훈련시켜서 주인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고 무엇을 물어 오라고 하면 물어오는 것처럼 하나님께 훈련되어져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수준이 되는 것을 온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귀하게 사용하신 이유는 온유함 때문입니다. 그는 초창기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훈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민 12:3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 당시에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귀하게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온유함입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자동차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지 맘대로 움직인다면 여러분은 그 자동차를 타겠습니까? 당연히 안타죠. 왜요? 위험하니까! 하나님도 위험한 사람은 안 쓰시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온유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기 생각도 내려놓고 환경적인 핑계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온유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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