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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이다 (눅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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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이다 (눅 15:1-7)

동영상 - 『전도영상1』,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상이죠? 오늘날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에 들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행복지수나 삶의 만족도는 형편없고, 2003년 이후 불명예스럽게도 자살률과 자살 증가율이 세계 1위, 하루 평균 자살로 죽는 사람들이 42명이라는 것, 우리 사회에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저에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인데, 당시에 교회 학생회에서 함께 임원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습니다. 대학시절에도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자기의 길을 가기 시작하면서는 서로 연락이 뜸해지다가, 이후로는 통 만나지 못했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2년 전, 제 어머니 장례 때에 왔었습니다. 

당시에 경황이 없었고, 또 오래간만에 만나는 짧은 만남의 시간에, 내가 볼 때에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적인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듯한 모습에서 나 스스로 그 친구에게 실망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해 자랑이나 하고, 그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와줘서 고맙네. 나중에 한 번 만나세 내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네’ 하면 될 것을.... 그 때는 몰랐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친구가 목사인 나에게 실망을 했을 것 같고, 교회와는 더더욱 멀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 그 친구 생각이 나면서 언젠가 만나게 되면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그 동안의 나의 인생 경험과 더불어 꼭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명한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 오늘 본문의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전례 없이 세 가지 비유를 연속적으로 들어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이야기만 다를 뿐 그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오늘 말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동기와 배경을 봅니다. (1~2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세리들, 죄인들, 창기들, 등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 앞에 관심과 초점을 모으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었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상대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그 당시의 종교인들에게 커다란 거스림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비난과 편견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오늘의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찾아오신 진정한 목적과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인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를 우리는 바리새인의 종교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의 종교는 외적인 현상과 형식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종교였습니다. 그들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잘 냈습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형식에 있어서는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한 모본을 보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장면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가장 중요한 종교의 내용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나는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 살인하고 간음하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은 형식을 중요시하였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왜 오셨습니까? 아니 바리새 종교가 지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과 내용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관심입니다. 

내 손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인간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기 시작합니다. 내게 어떤 지식이 축적되면서 우리는 사람들을 ‘지식이 있는 사람’과 ‘지식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그렇게 나누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두 가지 형식으로만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과 아직도 잃어버린 자리에 놓여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애정이 오늘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는 것, 바로 이 관심 때문에 예수님의 이 유명한 비유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이 비유의 배경입니다. 

오늘 본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 

유대나라는 원래 목축업이 성한 나라입니다. 목자는 양을 끌고 하루 종일 풀을 찾아다니며 양을 먹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목자는 양떼를 몰고 우리로 돌아옵니다. 그런 다음 우리 문 앞에다 막대기를 걸쳐놓고 한 마리씩 그 막대기 밑으로 통과하게 합니다. 모든 양들은 차례를 기다리다가 목자가 들어가라고 하면 한 마리씩 들어갑니다. 이때 목자는 막대기 밑으로 통과하는 양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풀은 잘 뜯어먹었는지, 병이 나지는 않았는지 따위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또 그 수를 일일이 세면서 들여보내기 때문에 돌보던 양이 백 마리면 마지막에 백으로 셈이 끝나야 맞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목자는 우리 문을 잠그고 집으로 쉬러 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목자가 일일이 양의 수를 헤아리고 있었는데, 양을 전부 우리로 보내고 나니 백 마리여야 할 양이 아흔아홉 마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마리가 모자랍니다. 잘못 세었나 싶어 전부 끌어내서 다시 세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때부터 목자의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 양에게 있지 않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떨어져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벌벌 떨며 헤매고 있을 잃어버린 그 한 마리 양에게 온통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어두워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벼랑에 떨어져 있었든지, 가시덤불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었든지, 양을 발견하자 목자는 ‘찾았구나’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양에게 달려갑니다. 가서 상처난 곳을 살펴서 상처를 닦아주고,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주변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이 목자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길거리에서, 저 유흥가에서, 빈민가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눈물짓고 있는 곳을 다니시면서 잃은 양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그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잃은 양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예수를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해서 잃은 양을 찾기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임하자마자 우리로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성령을 체험하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를 증거하고 싶은 감동이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데 그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 밖에 있고,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교회 밖의 잃어버린 양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전도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럼 전도하십시오. 전도해서 안 믿는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십시오. 이것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선교사나 전도자들이 최고입니다. 다른 것도 다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입니다”, 

인도의 영원한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가 젊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간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그에게 큰 감명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간디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하고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이었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이었기 때문에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 차례 청원을 해 보았으나 교회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쫒겨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교회에서 쫓겨 나면서 한 마지막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그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도로 돌아온 그는 10억 인구의 인도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 때 교회들이 간디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인도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간디가 기독교의 영향을 인도에 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교회들이 참 많은데 어떤 교회는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 있고, 자기들끼리 패를 갈라서 싸우고, 서로 비방하고,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가면 싸늘하게 냉기가 도는 삭막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영혼구원에 관심이 없어서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데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금년에 총동원 전도축제인, ‘예수사랑 큰 잔치’를 합니다. 내 주변에서 사랑하는 나의 친구, 가족, 친척, 동료, 이웃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대상자로 정하고, 먼저 내가 전도할 목적으로 마음에 품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금주에 ‘105주년 기념 음악회’도 있고, ‘사랑나눔 바자회’도 있습니다. 전도대상자의 형편과 성향에 따라 권면을 하고, 또 교회에서 마련한 초청장이나 교회 신문 등을 활용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8일, ‘예수사랑 큰 잔치’ 당일 날 다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내일부터 2주간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우리가 금번에 한 사람 이상을 마음에 품어서 기도하고 권면하고 초청해서 데리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교회의 연세 많으신 남자 권사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인 당시에 그 분은 80대 중반이셨습니다. 그분은 주머니에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가지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 수첩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는데 무어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정한 태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태신자란 ‘전도할 목적으로 마음에 품은 잠재적 신자’를 말합니다. 80대 중반의 노인이신데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하시고 태신자들의 이름을 적고 다니시면서 교회에 와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가서는 직접 만나서 예수 믿을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저 분이야말로 정말 ‘하늘(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기쁨입니다”, 

제 아내가 며칠 전, 슈퍼에 장을 보러갔습니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어느 할머니가 친구인 듯한 분과 함께 이야기를 하시는데, 전도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전도지도 주는 것 같고, 교회에 나오라고 권유를 하는 것 같았다는 거에요. 앞서서 나가시던 그분이 제 아내를 힐끗 보더니 가까이 오시더래요. 그리고 무엇인가를 주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애기 엄마, 이것 하나 남았는데... 이거 이쁜 건데, 하나 가져”, 그리고 가시더래요. 보니까 껌 하나가 꽂혀 있는 전도지더래요. 그 할머니의 표정과 주실 때 하는 말씀이 웃겨서 재미있는 일이라고 와서는 저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을 냅시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잃은 양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멀면 다른 가까운 교회로 보내면 됩니다. 이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한두 사람쯤은 전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12월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가슴이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 때 기도하기를 “예수 잘 믿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에 복 주심을 감사합니다. 금년에 성경 다섯 번 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런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이 고개를 끄떡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 올해 한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내년에는 두 영혼을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관심,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함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체험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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