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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의한 청지기처럼 (눅 1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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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청지기처럼 (눅 16:1-15)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16; 1-15)

오늘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이야기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중의 한가지입니다. 
청지기가 누구의 재산을 축 냈습니까? 주인의 재산입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는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또 주인의 재물을 축내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사형감인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주인은 이 청지기에게 지혜롭다고 칭찬합니다.  이중으로 주인의 재산을 축내는 것 같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가 이해되시나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종종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막4;11-12)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비유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이라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외인이 알아듣지 못하게 비유로 말씀하신다 합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갑니다.  둘째로 비유를 푸는 자만 갈 수 있습니다.   비유를 못 풀면 갈 수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천국 가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귀신들은 비유의 말씀을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천국백성 고르기입니다. 천국백성은 천국으로 들어가고, 지옥백성들은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해석하는 사람은 천국백성이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비유의 말씀을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니까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자세하게 풀어서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다시 설명해 주셔서 알아듣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풀어서 깨달으면서 천국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래서 성령이 아니면 비유를 풀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내주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천국에 갈 수 없고,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이 깨닫게 하시고,  비유를 풀어주시면서 우리들은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비유를 모르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러면 이제 오늘 비유를 풀어봅시다.
 
성경은 이렇게 써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9절)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그들이 너를 천국에서 찾는다는 것 입니다. 즉 청지기에게 탕감받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하나님께  ‘이 사람은 천국에 와야 합니다’ 라고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당연히 청지기입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빚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이 청지기가 불의한 청지기인데 주인은 기뻐하면서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문제는 주인이 기뻐할 만한 이유가 여기 성경에는 적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청지기가 큰 벌을 받아야 했는데 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주인이 기뻐할만한 이유가 뭘까요?

눅19장 1-9절의 삭개오 이야기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에 이릅니다. 구원, 천국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면서   삭개오의 구원을 사실로 확증하십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삭개오의 변화입니다.   세상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니까 그의 생각, 인생관이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  토색한 것은 4배로 갚겠다.  삭개오가 이렇게 바뀝니다.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이렇게 바뀝니다. 지옥 갈 운명의 사람이 천국을 얻었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지옥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그 지옥에서 풀려났는데 그냥 무덤덤하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할 것입니다. 지금 삭개오가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면, 구원을 받으면 다 삭개오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삭개오가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입니다. 침략자요 점령자인 로마 편에 서서 동족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돈 때문에 민족을 배반하고 세리장까지 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민족보다, 남의 손가락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뀝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였던 돈을 다 내려놓지 않습니까? 이것이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저와 여러분들도 영적으로 이런 변화를 경험하셨지요? 전에 가장 소중한 것,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이 예수 믿고서, 영혼의 구원을 받고서 가장 가치 없는 배설물같은 것이 되어버렸지요?
 
오늘 본문 비유에서 이 청지기는 지옥 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쫓겨납니다. 이 사람은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천국백성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이 사람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삭개오와 똑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는 비유(比喩)이고, 19장의 삭개오는 실제(實題)입니다.  비유를 실제로 푸는 것입니다.  비유를 보면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누구의 돈으로요?  자기가 착복한 것으로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가 착복한 재물은 삭개오처럼 불의(不義)한 재물(財物)이었습니다.  

만약에 청지기가 주인의 돈으로 탕감해 주었다면 그 재물이 불의한 재물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주인의 것으로 했다면 불의한 재물이 아니라 주인을 더 손해나게 한 것이며, 사람들은 어쨌든 주인에게로 영광이 돌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기름 100말인데 이것을 50으로 탕감해 주고, 밀 100석을 80석으로 하면서 나머지는 자신이 불의하게 모은 자신의 재물로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 돈은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해야할 청지기가 그 반대로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면서, 손해를 끼치면서 착복하여 불의하게 모은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돈으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  토색한 것은 4배로 갚겠다.’ 하는 삭개오와 같지 않습니까?  

비유는 생략입니다. 왜 생략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비유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생략한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들이 이 비유를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략을 한 것입니다.  

지금 청지기의 행동은 삭개오와 너무나도 똑같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지기와 삭개오의 이야기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특별히 재물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그런 변화로 나타납니다.  재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청지기와 삭개오에게 있어서 재물이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으니 이제는 재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뀝니다.  삭개오의 변화와 청지기의 변화가 너무 똑같아서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칭찬하신 것처럼 주인이 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입니다.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은 삭개오와 같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토색했고, 종들의 것들까지 토색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토색한 재물로 주인의 것은 다시 창고에 다시 넣고, 종들의 것들은 다시 되돌려줍니다.  삭개오처럼  변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재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이런 비유를 말씀하니까 반발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14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보고 비웃거늘” 

왜 바리새인들이 이야기를 듣기 싫어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정말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은 재물들이 불의한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의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한 영혼을 사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 영혼구원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 19절부터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의 구성이 16장에 불의한 청지기, 그 다음에 부자와 나사로이야기, 이어서 19장에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재물을 중심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이야기에는 좀 더 생략된 것이 많습니다. 아예 부자는 지옥, 나사로는 천국으로만 표현했습니다. 왜 나사로는 당연히 천국인지, 왜 부자는 당연히 지옥인지 그 이유를 생략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없이 나사로는 바로 천국으로 갑니다. 즉  나사로가 천국 간 이유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생략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나사로가 왜 천국에 갔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는 구원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는 왜 지옥에 갔나요?  당연히 옛날의 삭개오처럼, 바리새인들처럼 영혼보다 돈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나사로가 천국 간 이유가 있지요? 뭡니까? 재물이 없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입니다. 왜 나사로가 거지일까요?  나사로는 삭개오처럼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토색한 것들 다 갚았습니다.  그래서 거지가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생략이 되어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를 이미 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처럼 하면, 삭개오처럼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토색한 것을 4배로 갚으면... 거지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삭개오가 세리 장으로서 모은 돈이 1억원 이었다고 한다면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으니 5천만 원을 내 놓아야하고, 토색한 것이 천만원이라면 그 4배로 갚겠다고 했으니 4천만 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 영의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천배 만배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람을 사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천국을 얻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불의한 청지기의 영원한 천국에서의 모습과,  끝까지 바리새인처럼 살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지옥에서의 후회하는 모습을 직접 설명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는 불의한 청지기가 회개한 이후의 삶이며, 삭개오가 회개한 이후의 삶입니다.  부자는 회개하기 전에 살았던 모습, 지금 바리새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 그리고 삭개오는 실제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나사로가 당한 고난이 무엇입니까?

나사로가 당한 고난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자신은 어렵게 산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이미 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물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사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칭찬하신 것입니다. 귀중한 사람으로 여긴 것입니다. 나사로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보다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베푼 사람이고, 부자는 모은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산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거리가 넘친 것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천국 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장3-4절을 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불의한 청지기와 삭개오 이야기 사이에 용서(容恕)가 나옵니다. 불의한 재물을 풀어서 그동안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을 사는 것이 용서입니다.  불의한 자신의 재물을 풀어서 사람을 사므로 용서를 사고,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용서(容恕)라고 하는 것은 내 가진 모든 것으로 그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에게 욕을 듣고 해를 끼치면서까지 소유(所有)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내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사람을 사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얻은 사람은 사람을 위하여 재물을 버리고, 사람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징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천국 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1)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2)비유를 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3)남은 것이 없는 자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남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삭개오처럼 남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계산으로서는 마이너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삭개오를 가리켜서 ‘구원이 이 가정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이 모습을 보면서 칭찬을 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도 남은 것이 없이 주고 갔습니다. 몸까지 망가질 정도로 헌신하면서 마이너스인생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容恕)란 남은 것이 없는 것이 용서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면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재산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어땠을까요? 불의한 청지기와, 거지 나사로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성도들은, 특히 주의 종들은 이런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손해봤네, 이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개척하신 분들은 자기헌신, 자기희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불의한 재물, 우리의 무소유로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진 것으로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멋있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삭개오의 마음으로 사람을 사시기 바랍니다. 

 “가난은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비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영광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면서 한 영혼을 사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 그 증거가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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