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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평이 있습니까?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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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이 있습니까? (민 21:4-9)


I. 불평엔 해답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목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베드로 천사가 목사님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줄 터이니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배우자를 바꿔 달라고 하더랍니다. “사모님께서는 어떤 목사님을 원하시오?”  
사모님이 침대 밑에서 자물쇠로 꼭꼭 채워진 함 하나를 열어 보입니다.  

함 속에는 계란 7개가 들어있었고, 동전 천원짜리 만원짜리 십만원짜리 수표가 각각 몇장씩 들어있었습니다.  “아니 침대 밑에 계란이 웬일이요?”  “우리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죽을 쑬 때마다 내가 계란을 하나씩 넣어 둔 것입니다.  나도 사람인데 좀 은혜스러운 설교를 풍성히 맛보며 살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 천사가 하는 말이 “아니 계란 7개면 죽 쑨 게 일곱 번이고 십만원짜리 수표는 그래도 홈런 친 설교인 모양인데 이 정도면 괜찮치 않수?”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계란이 한판씩 쌓일 때마다 내 다 판 돈입니다” 그러더랍니다.  교인들은 흡족한 목사를 만나고 만족한 말씀을 듣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번엔 목사님 차례입니다.  “그래 목사님은 어떤 사모님을 원하시오”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간섭이나 하려들고 늘 불평이나 달고 다니는 아내는 이제 진절머리가 납니다.  순종적인 아내를 하나 보내주십시오.  거기다 얼굴도 예쁘고 지성적이고 겸손하고 헌신적이고 부지런하고 음식솜씨까지 갖추면 좋겠습니다”  베드로 천사가 그러더랍니다.  “그건 안되겠수.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살지 당신을 주겠소!”  교인들도 목사의 마음에 100%  안들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불평, 원망병은 죽을 때까지 잘 고쳐지지 않는 난치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평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평에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 없습니다. 나를 바꾸고 감사하며 사는 길, 감사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II. 본문 : 광야길은 인생길

오늘 본문 민수기는 광야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죽음의 땅 애굽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는 백성들의 이야기이지요. 그러므로 민수기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에나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성도들의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길은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불평과 반역의 이야기로 얼룩져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들을 불러내 구원해 주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반석을 쳐 생수가 흘러나게 했습니다.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쯤되면 매일같이 눈물로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 것 같은데 저들은 눈만 뜨면 원망이요 입만 열면 불평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참으로 그 은혜가 놀랍습니까?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십니까? 찬송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십니까? 오늘 민수기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일 수 있습니다.

민수기를 공부해 가다보면 10장이후 어리석은 백성들의 불평 불만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11장 -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행진 후미에 큰 불이 떨어지는 사건입니다.  
12장 - 미리암이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다가 나병환자가 되는 얘기입니다.  
13장 14장 - 열 정탐꾼의 원망이 나옵니다.  
16장 - 고라 일당이 반역하다가 지진을 만나 몰사합니다.
20장 - 마실 물이 모자란다고 불평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21장 다시 불평, 원망하다가 불뱀떼가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 죽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땅에 이르렀을 때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땅 밟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을 돌아 홍해 쪽으로 가다가 그만 심신이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잘사는 사람 애굽에서 끄집어 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고. 먹을 것도 모자라고 마실물도 모자란다고. 매일같이 먹는 만나와 메추라기 같은 음식엔 넌더리가 난다고 불평했습니다.

성경은 불평과 원망 죄를 간단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뱀떼를 보내 백성들을 모조리 물어 죽게 했습니다. 당황한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왔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들을 이대로 죽어가게 하시겠습니까? 용서하시고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종아 장대 높은 곳에 불뱀 모양의 놋뱀을 만들어 달아라. 누구든지 쳐다보면 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순종함으로 놋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 나았다하는 간단한 사건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III. 불뱀에 물린 사람① : 마음 상하여 치유받지 못한 사람

여기 불뱀떼가 나타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마음 상했으나 치유받지 못한 사람, 속이 상하여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으나 고침 받지 못한 사람이 불뱀에 물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속 상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부부간에 살아가다 보면 속상한 일들이 있지요. 아이들 때문에 마음 상한 일들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업 때문에 직장생활 때문에 이 세상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다가 심지어는 신앙생활하는 교우들과 더불어 살아가다가 마음 상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치유되지 않은채 불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나쁜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도 마음 상한 작은 상처 하나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배도 무너지고 행복도 무너지고, 사역도 무너지고 좋은 관계도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상하여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고침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치료하는 광선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치료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깊어지고 커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고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청사진 - 우리 인생길을 알고 계시고 계획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길이 못마땅하다는 거지요. 너무 멀다고 불평했습니다. 너무 험하다고 불평했습니다. 그 길을 설계하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만 가도록 내 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저들과 동행했습니다. 사랑하는 종인 모세와 아론을 보내서 저들을 양떼처럼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향한 거룩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못마땅하다는 겁니다. 나는 페이브먼트를 자동차 타고 달려가고 싶은데 날 보고 걸어오라고 합니다. 나는 넓은 길을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좁은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저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달려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길이 못내 못마땅하다는 거지요.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에 대해 늘 감사하며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십니까? 당신의 인생길이 찬양의 골짜기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불뱀 골짜기가 되어 있습니까?

4절 말씀처럼 당신의 인생길이 지름길이 아니라 “우회하는” 길처럼 보여 못마땅하십니까? 그래서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다면 당신 곁에 불뱀은 이미 가까워 있습니다. 

IV. 불뱀에 물린 사람② : 원망하는 사람

두 번째, 원망하는 사람은 불뱀에 물립니다. 계속되는 5절 말씀에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원망했습니까?  특별히 여기서는 본문 그대로 “애굽에서 인도해 낸” 사실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준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예백성들을 끄집어내 가나안으로 가게 해 준 그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에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인생들을 끄집어 내 천국백성 삼아준 그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백성들을 하늘 백성 삼아 주신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대한 짜증과 원망입니다.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신앙생활에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칫 원망하게 되고 원망하면 불뱀에 물려 죽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불평이 체질화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불평하며 원망하며 살아가더란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원망거리가 왜 없겠습니까? 세상이 다 내 마음대로만 되겠습니까? 불평거리가 왜 없겠습니까?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언제 엄마가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지를 글로 적어 오도록 했습니다. 땡칠이는 숙제장에 이렇게 적어 왔습니다. 
「그저께」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불평원망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사람들에겐 축복을 예정해 놓았다가도 거두어 가십니다. 
원망은 성경에 보면 전염성이 또 대단히 강합니다. 

어떤이가 두마리 앵무새를 각각 다른 새장에 길렀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찬송을 배우고 한 마리는 욕을 배웠습니다. 주인은 두 마리 앵무새를 함께 두면 노래를 배우리라 생각하고 함께 새장에 두었지요. 얼마후 주인이 문열고 들어갔더니 두 마리가 똑같이 “주인 새끼 온다” 그러더랍니다. 욕을 배우고 말았던 게지요.

불평과 원망은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하는 못된 성질이 있습니다.

V. 불뱀에 물린 사람③ : 신앙 권태기

세 번째, 불뱀에 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5절 후반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나님의 음식에 대한 권태가 온 것입니다. 만나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날 수 없는 신비한 음식이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나 먹고 살아가는 양식이었습니다. 그것을 먹고서도 그것을 하찮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불만이 11장에 나오지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기를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먹었던 생선과 수박과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난다. 이것들을 못먹으니 정력이 쇠하여 졌도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애굽의 과일,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이지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신나던 것들이 아직도 맛있게 느껴지십니까? 세상에서 좋아하던 그 일들을 아직도 좋아하며 살아가십니까? 그리고 교회에 오면 설교 말씀이 맨날 듣던 하찮은 양식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불평합니다. 당신은 이미 불뱀에 물려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입맛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여겨지던 것이 시시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신나야 합니다. 찬양하는 시간이 영광스럽게 여겨져야 합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행복해 져야 합니다. 저주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는 것이 저주입니다. 교회 생활이, 인생살이가 재미 없는게 저주더란 말입니다.

보십시요. 속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였으나 위로받지 못하고 치유받지 못하면 불뱀에 물립니다. 한없는 은혜를 받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 불뱀에 물립니다. 신앙생활에 권태가 찾아온 것 거기서 빨리 벗어나지 아니하면 불뱀에 물립니다.

얼마전에 미국의 한 연구소가 연구한 보고서를 보니까 “절망감에 빠진 사람, 권태기가 오래 계속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도 고혈압, 당뇨등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세배나 더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빨리죽고 싶은 사람만 불평하며 살라는 겁니다.

VI. 그러나 구원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광야 여정을 살펴보면, 한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실패를 하면서도 그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가나안을 향한 행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불평을 하면서도 천성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한번 하나님의 자녀삼으시고 천국백성 삼겠다 말씀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옥은 가고 싶어도 이제 못 갑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우리가 불안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 모양이냐? 하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양 밖에 안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 앞에 찾아 나온 것 아니었습니까? 나는 실패하는 죄인이기 때문에 오늘도 엎드려 기도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구원시켜 놓았더니 감사대신 불평입니다. 바로의 손에서 건져놓았더니 찬양대신 원망입니다. 한심한 존재들이지요.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반역이나 실패까지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행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분명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구원의 행진을 계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히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승리의 행진을 계속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불평 꾸러기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선포합니다. 치유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죽음의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불평꾼들은 감사꾼으로 바뀌어 집니다. 원망꾼들은 찬양꾼들로 바뀌어 집니다.

VII. 그 치유의 길 - 놋뱀

오래전 얘기입니다. 지리산 뱀사골에서 뱀을 잡아다 팔던 한 청년이 동물원 뱀 사육사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직 턱을 내느라 술에 만취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술에 취한 체로 동물원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인도산 코브라가 있는 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코브라 한 마리를 붙들고 목에 감아보기도 하고 품속에 넣어 보기도 하고 만용을 부리고 있습니다. 순찰을 돌던 사육사가 “코브라다! 위험하다”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꼿꼿이 일어선 코브라 코에다가 입김을 쐬는 사이에 그만 코브라가 그 사람의 코를 꽉 물고 말았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고 쓰러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긴급 구조반이 도착했을 때 이미 청년의 혀와 시력과 청각이 마비되었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그의 몸에 독이 퍼져 싸늘한 시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뱀이 우굴거리는 불평의 인생터에서 불뱀과 더불어 놀지 말라는 말이지요. 
불뱀 골짜기에서 뱀과 더불어 놀다가 독뱀에게 물리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란 말입니다. 지금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이 청년에게 싸늘하게 식어져 가는 이 청년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소식이 있다고 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놋뱀 = 예수 그리스도>

이처럼 무서운 뱀에게 물린 사람, 사탄의 독소에 온 피가 멍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어졌습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게 될 것이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장대 높이 매달리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될 죽음의 자리에 주님이 피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고 앙망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두 살더라” 믿습니까?

<불뱀․사막>

광야의 뱀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독뱀이라고 할지라도 햇빛을 받지 못하면 독이 빠지는데 여기는 광야요 사막입니다. 계속적으로 햇빛을 받은 뱀이라 아주 독이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뱀에 물리기만 하면 즉사했습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뱀에게 물려 신음하는 사람이 옆에 쓰러져 누워있습니다. 가족들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이미 장례를 치루어야 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무서운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슨 얘기였습니까? 우리는 죄의 결과를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사탄의 올무에 걸려든 사람, 이 불뱀에 물린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세상에 어떤 길도 없습니다. 지식도 선행도 철학도 도덕도 저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히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원망의 광야”에서 불뱀으로부터 상처받은 심령들을 향한 구원의 소식이 있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여러분 이 확실한 사실을 믿으십니까?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보는 것이 무슨 치유의 효과가 있겠습니까? 독뱀에 물려서 고통과 비명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을 향하여 장대 끝을 쳐다 보라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놋뱀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쳐다보면 살리라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단히 재미있는 사실 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대에 달린 놋뱀이 그 자체에 독소를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불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장대에 달린 그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면 구원을 얻으리라.  

다음은, 성경을 잘 보면 백성을 상하게 만든 뱀은 “불뱀들”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6절 “불뱀들” 7절 “뱀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을 구원하는 놋뱀 불뱀은 단수로 되었습니다. 8절 “불뱀” 9절 “놋뱀” 단수입니다. 죄는 많고 다양합니다. 그러나 치유의 길은 하나 놋뱀이지 여럿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장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유사한 뱀을 만들어 곳곳에 세워두었다 해도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천하 인간의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약을 발라도 소용없습니다. 살을 도려내도 소용없습니다. 믿음의 어머니가 그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목놓아 울어도 소용없습니다. 
♪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믿으면 살겠네 

어떤 사람들은 걸어서 달려와서 그 뱀을 쳐다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달려올 수도 걸어올 수도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서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등에 업혀서 왔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놈아 저거 안보면 죽는데~ 어머니 손에 질질끌려서 찾아왔습니다. 누구나 어떤 모습으로 왔든 장대 높이 매달린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 가운데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기 찾아오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주 없이 살 수 없어요~ 울며울며 달려오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저들을 소중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지요. 

그러지 못하고 억지로 찾아나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체면 때문에 여기 끌려나오신 분이 계실 줄로 압니다. 무언지 알지 못하지만 가족의 손에 이끌려 여기 앉아 계신 분도 계실 줄로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기만 하면 주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기만 하면 이 시간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여러분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에서 그 놋뱀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까마득히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놋뱀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력이 좋아서 뚜렷하게 놋뱀의 꼬리 눈망울까지 쳐다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력이 나빠서 희미하게 그냥 쳐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분명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구원의 풍성한 진리를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신비한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의 진리가 때로 희미하게 여겨집니다. 신앙생활이 때로는 재미가 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하고 번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찾아나오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그 순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영접해 주실 분임을 믿습니다. 내 마음에 중심의 문을 엽니다. 이제 찾아 오셔서 나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이 시간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믿습니까?

VIII. 고침받은 자에게 사명이 있다

이제 고침받고 구원받은 자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장대 높이 매달아라. 장대 높이 매달아라. 저 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도록 매달아라.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사람 보이도록 매달아라. 높이 높이 매달아라.  먼저 구원받은 자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교회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의 사명은 이 세상에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교회에 와 본적이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저들도 구원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저들도 예수 만나 구원얻을 수 있도록 십자가를 높이 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 십자가를 매달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십시다. 여러분의 가정에 셀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가정은 예수 믿는 행복한 가정이구나. 여러분의 가정에 셀에 십자가를 매달아 예수 만나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직장생활과 사업을 통하여 십자가를 높이 매달므로 말미암아 세상 만방에 모든 열방들이 십자가 예수를 만나도록 하십시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러나 예배를 통하여 우리주변에 진리를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 진정한 교회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구원얻기를 원하는 사람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 여기 한소망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주님이 이땅에 찾아오실 때에 모두 들림받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죄의 불뱀에 물려 죽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십자가 놋뱀 앞으로 인도하십시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9절) 할렐루야!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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