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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의미 – 구원 (시 19:1-6, 롬 1:18-23)
  

10월 참 좋은 계절을 맞았습니다. 연중 최고 계절입니다. 봄도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의 모진 추위를 극복하고 새싹이 돋아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생명력의 신비도 느끼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면 경외스럽기까지 합니다. 가을은 더욱 좋은 계절입니다. 각종 식물들이 열매를 맺고 결실을 합니다. 가을이 되면 모든 식물들이 결산준비를 합니다. 열매를 착실하게 익혀갑니다. 심판받을 준비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신비입니다. 자연은 일정하게 계절의 순환에 순응합니다. 

철저하게 계절에 따라 식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적용합니다. 자연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는 이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계절의 순환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자연의 재앙이 오고 고난이 오고 뒤틀림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계절이 되면 새싹이 나옵니다. 꽃이 핍니다. 창조주에게 자신의 사명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일생을 마칩니다. 그것이 식물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삶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입니다. 성경은 그 점을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가, 인간은 왜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한 책입니다. 본문은 인간은 그렇게 지음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을 떠나지 못해서 안달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하게 고상한 뜻을 가지고 창조하였습니다. 특히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모든 선과 의미와 복을 다 부여하여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으로 하여금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연은 창조주에게 순응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그런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모름

21절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도 감사치도 않고 미련하여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잃고 길을 잃고 지식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숙원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말씀들로, 계시의 글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혜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라고 외치십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계시의 글이고 지혜의 글이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읽지 않고 멀리하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면 뭐가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그것이 아픔입니다. 

아픔 주심

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진노는 심판을 말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진노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할 수 없으니까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파야 정신 차리고 눈을 뜨고 생각하고 궤도를 수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에 진노를 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픔 중에서 가장 큰 아픔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가장 아픈 것입니다. 진노중의 진노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찾아가게 되고 부르게 됩니다. 

사람이 성숙할 때가 바로 이 죽음을 알 때입니다. 그때 허튼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경거망동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평상시에 별소리를 다 합니다. 자만하고 교만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사람이 죽음이 임박하게 되면 귀순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주시고 아픔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때로 죽음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형통만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부족할 때 아플 때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사람들이 암에 걸리게 되면 고치기 위해서 다 포기도 합니다.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하늘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것이 철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플 때, 질병에 걸렸을 때, 실패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아픔의 의미입니다. 사람이 평안하고 건강하고 일이 잘될 때,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모르고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일하게 자란 세대들은 앞뒤 가릴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 세계가 있는 줄도 모릅니다. 

사람은 죽음이 무엇인가 알게 되면 철들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이 32세부터 죽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32세 전에는 뭔지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방지게 굴고 뭔지도 모르고 큰소리를 치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뭘 알면 그러겠습니까. 사람은 죽음을 알아야 철들고 생각이 달라지고 너그러워 집니다. 중후한 맛이 납니다. 그때부터 겸손해집니다. 경거망동 하지 않게 됩니다. 

소는 도축장에 다가가기까지 발버둥을 칩니다.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런데 일단 도축장에 도착하면 순순히 따라 들어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도 압니다. 사형수는 사형장에 끌려갈 때 난동을 부리고 발광을 합니다. 그런데 일단 사형 틀에 앉으면 침착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면 모두 두려워 떨고 안달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일단 죽음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그 때가 가장 성숙할 때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양보하고 자기부정도 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비로소 손에 쥐었던 것을 놓게 됩니다. 양순해지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아픔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최대 숙원은 인간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입니다. 

2005년도에 암환자 중 10년 후 고침 받은 분들 502명을 조사했습니다. 고침 받은 분들 중 64.9%가 신께 의존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았다는 분들이 90.8%였고 믿음으로 입맛 당기대로 다 믿고 먹었다고 응답한 분들이 37%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고침 받은 것입니다. 이 분들은 암을 이긴 것이 아니고 암이 그분들의 인생을 살린 것입니다. 그 분들은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대숙원은 사람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게 하는 일입니다. 구원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때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최대 목표 – 구원

구원은 가장 값진 것입니다. 구원은 최대의 복이고 은혜입니다. 불교는 스스로 해탈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불공을 올립니다. 유교는 스스로 득도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수양을 합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강조하는데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본적인 의미는 구출(deliverance)입니다. 구출의 의미는 깊습니다. 구출은 위험에 빠진 나를 누군가가 구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때 내가 스스로 헤엄쳐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아니고 바깥의 누군가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출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문제의 실마리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해결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 밖으로부터(extra nos) 주어집니다. 누군가가 와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입니까. 그것이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점을 아는 것이 철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도리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아주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세상을 망가트렸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부서지고 망가진 이 세상을 수리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고치시고 새로 만드시는 중입니다. 그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고침 받고 수리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 것이 되었다고 선포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칭의라고 말했습니다. 

모른다 핑계 못함

이 하나님을 알고 사는 것이 선이고 성숙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제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을 것(롬 1:20)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역대로부터 다 알리셨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이 세상 만물 속에 하나님의 속성을 다 보여주셨다”고 하였습니다.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졌다”고 선언합니다. 이런 속성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만물 속에 반영하셨습니다. 그리고 시 19장1절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땅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드러낸다.”고 하였고 2절을 보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듯하지만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또 세상에 성경을 주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가는 곳 마다 성경이 있습니다. 이제는 성경은 세계 공통으로 가장 보편화된 책이고 누구나 손쉽게 구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전도자들을 도처에 배치해 두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듣고 전달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은 선교사들을 세상에 보내서 어느 오지에서도 복음을 듣게 만드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예수를 모른다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느냐 하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양심으로 알고 징조로 알고 감각으로 압니다. “오늘은 말세다”라고 불신자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강도들도 “이러다 잡히지” 하고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지” 그 말은 스스로 다 알고 느낀다는 말입니다. 천둥 번개가 치면 모두 두려워하고 겁이 납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 때문입니다. 양심은 누가 만들고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에도 양심으로 하늘의 두려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양심은 유사시 삶의 기준을 삼고 나침판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전해 듣지도 못했습니다. 모르니까 아주 어설프게 민간종교를 믿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하늘을 섬기고 죄를 지으면 두려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예수는 너무 많이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는 오늘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합당한 삶

이렇게 알게 하신 후에는 합당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알게 하셨는데도 합당하지 않으면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가 아픔이고 고난이고 심판입니다. 아직 심판이 없다고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하나님은 다만 심판을 유보하시는 것뿐입니다.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예언 그대로 이 땅에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성경은 수도 없이 그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살전 5장을 보면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말씀하신 그대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때가 되면 약속대로 심판하실 그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질 때 어느 날 갑자기 떨어트린 것이 아닙니다. 떨어트리기 며칠 전부터 공중에 경고장을 살포하였습니다. 1945. 8. 12일 정도 12시를 기해서 원자탄이 떨어지니 반경 50km 밖으로 피신하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일종의 예언입니다. 성경은 그런 예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날 도적같이 오리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경고장을 받고 설마 했습니다. 그냥 무시했습니다. 전단지를 그냥 버려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날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날 예고대로 3천도의 고열을 동반한 원자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20만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도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만 심판을 유보중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더 기회를 주시려고 말입니다.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강제로 하신다면 그 앞에 누가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 준 말씀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 체면을 구기고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인내하고 참았습니다. 강제로 붙잡아 놓지 않았습니다. 일꾼 두 명만 보내 강제로 데려다 뒷방에 가두어 놓았으면 체면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탕자가 돌아와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체면이 구겨도 기다리셨습니다.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같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들의 마음이 우둔하고 허망해지며 어두워진 탓(21절)입니다. 강퍅해지고 마모되고 무디어지고 감각도 생각도 뜻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하나님께 구원받게 할 만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모든 목적, 뜻, 의미, 정성을 다 부여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련을 못 버리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탈한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하소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하심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심정을 본문을 통해 하소연하시고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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