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잠 3:1-10)

첨부 1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잠 3:1-10)

시골에 한 늙은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 적적하게 사시니까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꾸 서울에 올라오시라고 설득합니다. 아들이 하도 권하니까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하고 짐을 싸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윽고 아들집에 거하는 데, 하루 하루가 무료하고 적적하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마음대로 다니던 할아버지가 이 아파트에 들어앉아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마치 창살 없는 감옥 같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를 가만히 보니까, 여기에도 위계질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의 1호가 누구인지 봤더니 며느리가 1호인 것입니다. 며느리가 최고입니다. 애들이 텔레비젼을 보다가 며느리가 한 번 소리 지르면 꼼짝없이 모두 다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들도 술을 먹고 떠들다가 며느리가 한 마디 하면 꼼짝없이 들어가서 잡니다. 며느리가 집안에서 최고입니다. 

두 번째, 2호가 누구인가 봤더니 손자가 2호입니다. 세상없어도 손자가 최고입니다. 그 아들 하나 있는 것, 그것을 천지 없다고 키우는데 세상에 건드릴 사람이 없습니다. 세 번째가 누구인가 했더니 자기 아들입니다. 자기 아들이 그 집에서 위치가 3호입니다. 또 4호가 누구인가 봤더니 강아지입니다. 강아지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5호가 누구인가 봤더니 식모입니다. 그리고 6호가 누구인가 했더니 자신인 것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여섯 번째, 6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밖에 나가서 일을 보다가 들어와서는 식모에게 묻는데 뭐라고 물었을까요? 애 밥은 줬느냐고, 또 강아지 점심 줬느냐고, 그런데 시아버지 진지 드렸냐고는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노인이야 먹던 말 던 그 노인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저 방구석에 얹혀 사는 존재이지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른으로써 대접을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너무 마음이 괴로웠고 아팠습니다. 더 이상 그 곳에서는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조용히 짐을 싸서는 시골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면서 아들에게 편지 한 장 써 놓았습니다. 쪽지에다가 아주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뭐라고 썼는지 아십니까? “3호야 잘 있거라, 6호는 간다!” 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 시아버지는 시아버지를 시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가정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집에 모시고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집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의 집에 계신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혹시 서두의 그 시아버지처럼 많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몇 등이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3등이십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 있어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괴로워 할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 오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이제는 하나님이 3등이 아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늘 1등이듯 이제는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늘 나를 1등으로 생각하시고 대하시는데 왜 우리는 늘 하나님을 1등의 자리에 모시지 못할까요?
오늘을 계기로 내 인생에 있어 하나님의 순위가 1등으로 바뀔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쉬운 성경 번역본으로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절대로 네 슬기를 의지하지 마라. 너는 네 모든 길에서 그 분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그 분이 너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길 때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삶의 길을 지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앞길을 하나님이 친히 지도하여 주시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남은 모든 인생길이 형통케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범사에 그를 인정한다는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뜻을 인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3:1-10절까지를 보시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까지 그리고 5-8절까지 그리고 9절과 10절입니다. 

가운데 5-8절까지를 통해 하나님은 범사에 자신의 명철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 부분인 1-4절까지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명령 그리고 3절에 인자와 진리라는 단어를 통해 결국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가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바로 그의 뜻을 인정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며느리가 집에서 일을 하다가 냉장고가 너무 낡아서 냉장고를 바꿔버렸습니다. 냉장고를 바꾸면서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하고 의논도 안하고서 그냥 바꿔버렸습니다. 시어머니가 경로당을 갔다 왔더니 냉장고가 바뀌어 딴 냉장고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본 시어머니가 “아니, 이게 왠 냉장고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어머니, 이전 것은 더 이상 못 쓰겠기에 바꿨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이전에 있던 것은 어떻게 했냐?” 또, 며느리가 “갔다 버렸어요.” 라고 대답하자, “야 이놈아, 그건 내가 30년 동안 쓰던 건데, 그걸 그렇게 쉽게 버릴 수가 있냐? 그래도 시어머니하고 의논이라도 한번 했어야지” 고 시어머니가 한탄해 하였습니다.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며느리는 그 시어머니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냉장고를 바꾸기 전에 시어머니와 한 번이라도 의논을 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논이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로서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삶 속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내가 다 결정을 해놓고는 내 마음대로 다 해놓고 일이 잘못되면 그때 가서  “하나님 어떻게 하죠? 하나님 도와주셔야 되요, 하나님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시겠습니까?   "야 네가 언제 나하고 의논이라도 한번 했냐?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나설 때 절대 먼저 나서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뜻을 물을 때 그때서야 비로서 나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을 공동번역으로 보니까 이렇게 해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너는 범사에 하나님께 여쭈어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범사에‘하나님께 여쭈어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 이게 지금 바로 하는 건지, 잘못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될 런지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기를 잘 했던 사람 하면 생각나는 사람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한낱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늘 하나님께 늘 여쭤보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말씀을 찾아볼까요? 삼하2:1절입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어디로 가야 할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대상14:10절에 보니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하고 묻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올 때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당연한 그 일까지 하나님께 해야 하는 것이냐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결국 그가 하나님을 그만큼 의지하며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 묻지 아니함으로 결국 비참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을 우리는 또한 성경가운데 만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0장 13절 이하에 보니까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라고 나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초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준수한 사람 사울이 왜 비참한 인생으로 그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까? 하나님께 묻는 대신 무당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갔던 사람과 하나님께 묻지 않으며 살아갔던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하나님을 얼마나 인정하고 얼마나 의지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하는 사람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 를 던지십시오. 그 하나님께 던져진 물음표가행복의 느낌표가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 인생 물음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물음표 인생이 아니라 느낌표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주시는 행복을 누리는 느낌표 인생을 살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물음표를 던져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던져지는 물음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삶에 느낌표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던져지는 물음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삶에 물음표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우리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물음표를 던지는 건 매우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쯤 응답해주시나 하는 지루함이 있을 수도 있고 과연 응답해주시기는 하는 건가? 하는 답답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 던져진 물음표는 결코 물음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음표를 거꾸로 들어보십시오. 뭐가 됩니까? 바로 낚시 바늘이 됩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물음표를 던질 때 그 물음표는 결국 삶의 낚시 바늘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답을 주는 낚시 바늘, 힘겨운 삶의 문제를 끝내주는 낚시 바늘, 축복과 상관없어 보이는 삶 속에서 우리에게 축복의 물고기를 낚는 낚시 바늘이 되어 반드시 돌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기뻐하여 하나님께 물음표를 던지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낚시 바늘, 응답의 낚시 바늘을 가득 거두어 올리시는 축복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때 예전 아브라함의 시대나 다윗의 시대처럼 그래. 헤브론으로 가라.. 가나안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하나님의 공식적인 계시가 종결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공식적인 계시인 이 하나님의 신구약 66권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도 예외적으로 매우 특별한 경우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계시가 종결된 오늘날 이 시대 하나님은 당신의 신구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토록 당신의 말씀에 대하여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2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때 그것이 장수의 축복을 가져오며 평강의 축복을 더하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4절에 보면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길때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바로 이 신구약 성경말씀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 당신 자신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말씀을 떠나지 않고 늘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토록 크고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신용 카드의 시대입니다. 
이 작은 카드 하나로 못 할 게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알고 있는 신용 카드 중의 가장 좋은 카드가 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비씨카드 아닙니다. 삼성카드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신용 카드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카드 바이블카드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이 축복뿐 아니라 성경의 여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축복과 약속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 바이블카드를 꺼내어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계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이 어느 민족입니까? 모두가 공통적으로 유대민족을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유대민족은 어려서부터 오늘 말씀대로 실천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600만명이 대학살되는 그 엄청난 고통의 민족적 위기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유대민족은 절대로 무력하게 무너지거나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뚜기와 같이 일어서 세계역사를 주도하는 1등 민족으로 지금도 당당하게 세계 역사를 주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노벨상을 타냈고 지금도 세계의 경제와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된 일까요?아닙니다. 유대민족은 어려서부터 이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며 순종하는 민족입니다. 유대민족은 아이들이 조금만 커서 사리 분별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성경에 꿀을 발라놓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펴서 꿀을 빨아먹게 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인생의 꿀과 같은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말씀을 목걸이로 걸어주며 집안 여기저기에 말씀을 붙여놓고 읽고 외우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그 유대민족을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세계 1등 민족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방을 하다보면 눈이 아파 성경을 더 이상 읽고 싶어도 못 읽겠다고 말씀하시는 권사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병석에 누워 도저히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어느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될 지 알 수 없는 내일 일을 모르고 살아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 내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고, 시간이 좀 많이 나서 여유가 있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고 어느 누가 자신하실 수 있습니까? 아무도 내일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을 수 있을지? 다시 하나님앞에 머리를 조아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물으며 기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내게 주신 시간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계적 도너츠 상표를 개발한 던킨 도너츠(Dunkin Donuts)의 창업주인 로젠버그(William Rosenberg)는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성공이란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집에 계신 우리 하나님을 뒷방노인네로 만들지 않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여 드릴 때 하나님은 드디어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결정권을 맡기고 묻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물음표를 던지는 삶이 바로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던지는 물음표가 많을수록 우리의 삶엔 행복의 느낌표가 많아질 것이라고 축복의 낚시바늘 응답의낚시 바늘이 많아질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물음표를 많이 던질 수 있는 축복의 삶을 살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때 예전 구약시대와 같이 어디로 가라 이렇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종결된 계시인 신구약 66권말씀을 주셨고 결국 이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삶이야말로 가장 축복된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그 사람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가까이하심을 기억하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가 내게 주신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하며 주신 말씀을 가까이하고 주의 뜻을 물으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와 말씀의 성도들이 되심으로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놀라운 약속과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