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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통에 이르는 길 (창 39:1- 창 41:57)

첨부 1


형통에 이르는 길 (창 39:1- 41:57)


1.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요셉을 낳았는데,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이 요셉이 17세가 되었을 때 형들의 잘못을 일일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데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는 등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더욱 격분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을 격분하게 만든 요셉의 꿈은 이렇습니다.

(창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의 이러한 꿈 얘기를 듣고 형들이 “

(창37:8)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면서 요셉을 더욱 더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요셉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합니다. “들어 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해와 달은 부모님을, 열 한 개의 별은 형제들을 의미하는데 그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것입니다. 

이 꿈 얘기를 듣고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이러한 일로 형들은 시기 끝에 결국 기회를 타서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집은 애굽 왕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이었습니다. 비록 노예로 팔려갔지만 대단한 권력의 측근 가정에 가게 된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중 39,40장은 요셉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노예로 사들여 그를 눈여겨보았는데 능력과 재능이 탁월한 것 외에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보고 보디발은 처음에 어떤 신적(神的)인 축복과 가호가 요셉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요셉이 믿는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 다시 말해 집 전체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장(執事長)으로 삼았습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서 그곳에서 일할 때 그 야곱으로 인해 라반의 집이 축복을 받았던 것과 같았습니다.

(창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야곱으로 인해 라반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이 비록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피신한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28:13-15입니다.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축복을 계승받았기 때문에 라반이 그 야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셉으로 인해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 역시 요셉의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어떤 말씀이 요셉과 직접 관련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100세가 가까워오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 

“(창15:1)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창15:2) 주 하나님이시어,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며 자신의 충실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렇게 약속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창15:4-5)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이 땅을 너에게 주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 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 땅을 나에게 주실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3년 된 것으로 각각 한 마리씩 나에게 가져오고 또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가져다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예언적 축복을 하십니다. 

(창15:13-14)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여기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사백 년 동안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축복의 말씀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방, 애굽에 보내 사백 년 동안 지내게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에 보내기 위해 섭리하신 것이 바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이루어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요셉의 형들이 대흉년에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갔다가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먹은 동생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자신들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동생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며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45:4-10입니다.

(창45:4-10)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그러므로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성취하게 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 가운데 있는 요셉이기 때문에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은 그 가정이 범사에 형통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약속된 자손이 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는 약속의 자손들입니다. 갈라디아서3:6-9입니다.

(갈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범사에 형통하는 삶이 되도록 요셉처럼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요셉의 ‘형통에 이르는 길’에는 형들의 시기, 질투와 그리고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사건 등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형통에 이르기 위해 넘어야 할 큰 장애물 하나가 요셉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린 지 약 10년 후, 요셉이 27세가 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요셉은 몸매가 좋고 미남이었습니다. 하루는 주인 어른의 아내가 눈짓을 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자며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는 일이 없으니 이 집에는 나만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지만 당신만은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단호한 요셉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는 안주인이라는 특권을 악용해서 온갖 유혹과 협박으로 날마다 집요하게 치근거렸지만 요셉은 한사코 거절하며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자기 업무를 수행하려고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 집 종들은 거기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 며 또 치근댑니다. 마치 순결한 성도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사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둔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가버렸습니다. 

안주인에게도 복종할 의무가 있는 요셉의 처지에서 유혹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요셉이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둔 채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소리쳐 집안에 종들을 불러 말합니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데리고 온 이 히브리 사람이 나를 희롱하였다. 그가 나를 겁탈하려고 내 방에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옷을 내 곁에 벗어 든 채 달아나고 말았다.’ 성적 욕망으로 불타오르던 보디발 아내는 자신의 과감한 유혹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여자로서 느꼈던 치욕적인 부끄러움이 불타는 증오심으로 돌변하여 요셉을 모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가 붙잡았던 요셉의 겉옷을 마치 대단한 증거물을 확보한 것인 양 소리친 것입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는 교활하게도 자기 남편이 돌아오자 마치 요셉에게 강간 미수를 당한 것처럼 얘기를 꾸며 말합니다. 결국 보디발은 그 말을 듣고 대단히 화가 나서 요셉을 잡아 감옥에 처넣었는데 그 곳은 궁중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습니다. 원래 애굽 법에 따르면 종의 신분으로 상전의 처를 강간하고자 한 자는 즉결처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넣은 것은 평소 요셉의 성실한 품행과 자기 가정에 끼친 공로, 즉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보디발은 품행이 나쁜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즉결 처형되지 아니하고 투옥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종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의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 것입니다. 

(창39: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의 신분으로 투옥되었지만 그 사건으로 점점 요셉의 꿈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투옥된 사실 자체만으로 볼 때 요셉의 꿈이 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감옥에서 두 사람의 죄수를 만나게 섭리하십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옥중 죄수들을 도맡아 책임지는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두 궁중 대신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왕의 모든 음료의 유해 여부를 확인하며 감독하는 감독관 대신, 이름하여 ‘술 맡은 자’와 왕의 모든 음식에 대해 감독하는 대신, 즉 ‘떡 굽는 자’가 같이 투옥된 것이었습니다. 

이 두 직책은 왕이 특별히 신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바로 왕의 최측근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감옥에서 각각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들을 살펴보는 중에 그 두 사람이 근심이 가득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요셉에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요셉이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술 맡은 자’가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꿈에 보니, 나의 앞에 포도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가지가 셋이 있는데, 거기에서 싹이 나더니, 곧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 바로의 잔이 나의 손에 들려 있기에, 내가 포도를 따다가, 바로의 잔에 그 즙을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올렸지.’ 이에 요셉이 그의 꿈을 이렇게 해몽합니다. “가지 셋은 사흘을 말합니다. 앞으로 사흘이 되면, 바로께서 당신을 불러내서, 직책을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전날 술잔을 받들어 올린 것처럼, 바로의 손에 술잔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잘 되시는 날에, 저를 기억하여 주시고, 저를 따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나도 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 사는 땅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내가 이런 구덩이 감옥에 들어올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떡 맡은 자’가 그 해몽을 듣고 보니 좋아서, 요셉에게 자기 꿈을 말합니다. ‘나도 한 꿈을 꾸었는데, 나는 빵이 담긴 바구니 세 개를 머리에 이고 있었어. 제일 위에 있는 바구니에는, 바로에게 드릴 온갖 구운 빵이 있었는데, 새들이, 내가 이고 있는 바구니 안에서 그것들을 먹었어.’ 요셉이 그의 꿈을 해몽합니다. “바구니 셋은 사흘을 말합니다. 앞으로 사흘이 되면, 바로께서 당신을 불러내서, 목을 베고 나무에 매다실 터인데, 새들이 당신의 주검을 쪼아 먹을 것입니다.” 

이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이 바로 왕의 생일인데, 왕은 신하들을 다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때 감옥에 있던 ‘술 맡은 자’와 ‘떡 맡은 자’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 불려 나갔는데 ‘술 맡은 자’는 그 직책이 회복되어, 잔에 술을 따라서 바로의 손에 올리게 되었고, ‘떡 맡은 자’는 교수형에 처형되었습니다. 과연 요셉이 그들에게 해몽하여 준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자’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요셉의 부탁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창40장) 요셉은 자신이 감옥에서 나가기 위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 바로 그 ‘술 맡는 자’가 그 직책이 회복되어 복귀되어가는 것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형편이 바뀌자 요셉이라는 사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4. 그러나 요셉은 ‘술 맡은 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사49:14-16)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자손된 것과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바를 항상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술 맡은 자’가 복직되어 가고 만 이 년 후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온 지 13년이 되어 그의 나이 30세가 되는 때였습니다. 30세라는 나이는 거룩한 하나님 성전에 봉사할 수 있는 최저 연령입니다. 이스라엘 레위 지파 중 30세 이상이 되는 자라야만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민4:3)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민 4:23)

일반 백성들의 군 입대 가능 나이 20세보다 10세나 높은 나이입니다. 이는 성전 봉사가 단순히 젊은 힘이나 패기에 의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어린 나이에 충신이 되어 장군으로 쓰임받았지만, 그리고 일찍이 사울 왕을 대신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전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실질적인 왕이 된 것은 30세가 되어서였습니다.

(삼하5:4)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30세에 비로소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가 30세부터 성전 봉사할 수 있다는 규례에 따라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셨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히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요셉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그가 30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환경과 시험을 통해 연단하시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친위대장 보디발 가정에서 그 가정의 집사장으로 가정 경제와 행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받은 유혹을 통해 종으로서 상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결함을 지키므로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단련받았습니다.

(창39:8-9)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보디발이나 세상의 안목만을 두려워했다면, 그는 오히려 은밀한 가운데 이 죄의 쾌락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은밀한 것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시 90:8;렘 23:24;롬2:16) 단호하게 끈질긴 유혹과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지만 그곳에서 간수장 이상 가는 교도소 행정과 법 집행까지도 배우고 익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30세가 되었을 때,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400년 동안 번성케 하기 위해’, 그 때가 되고 요셉이 나이 30세가 되자 그를 들어 쓰시고자 바로 왕에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왕이 두 번에 걸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꿈은 이렇습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소들과 함께 강가에 섰습니다. 그 흉측하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바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내 다시 잠들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삭 일곱 개가 보입니다.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한 줄기에서 나와서 자란 것들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이삭 일곱 개가 피어 나오는데, 열풍이 불어서, 야위고 마른 것들입니다. 그 야윈 이삭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뒤숭숭하여, 애굽의 마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그가 꾼 꿈을 해몽토록 했지만 그 꿈을 해몽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술 맡은 자’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자신이 2년 감옥에 있을 때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한 히브리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해몽한대로 자신은 복직되고 ‘떡 맡은 자’는 처형되었었다는 사실을 바로 왕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로가 곧장 요셉을 감옥에서 왕궁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꿈 해몽을 요구합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왕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 바로 왕으로부터 꿈 얘기를 듣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왕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말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꿈이 다 같은 내용입니다. 뒤따라 나온 야위고 흉측한 암소 일곱 마리나, 열풍에 말라 버린 쓸모 없는 이삭 일곱 개도, 역시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흉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왕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왕께서 앞으로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올 일곱 해 동안에는, 온 애굽 땅에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 땅에 언제 풍년이 있었더냐는 듯이,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풍년이 든 다음에 오는 흉년은 너무나도 심하여서, 애굽 땅에서는, 아무도 그 전에 풍년이 든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왕께서는,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셔서,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께서는 전국에 관리들을 임명하셔서, 풍년이 계속되는 일곱 해 동안에, 애굽 땅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해마다 받아들이도록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올 풍년에, 그 관리들은 온갖 먹을거리를 거두어들이고, 왕의 권한 아래, 각 성읍에 곡식을 갈무리하도록 하십시오. 이 먹을거리는, 애굽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갈 흉년에 대비해서, 그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해 두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기근이 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의 꿈을 기가 막히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까지 마련해준 것입니다. 이를 모두 듣고 바로 왕이 감탄해마지 아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 네가 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어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내가 너를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왕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새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고운 모시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다 걸어 주어 애굽의 총리로 세웠습니다. 요셉은 17세 어린나이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노예생활과 감옥생활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통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고난의 길, 숱한 죄의 유혹 등은 요셉을 더 큰 그릇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그 길은 애굽 왕 앞으로 더 가까이 보내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형통에 이르게 된 데는, 그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이 요셉을 통해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갈3:7)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고 했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요셉과 같이 거룩한 믿음과 생활,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마침내 형통에 이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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