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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롬 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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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롬 5:9-11)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서론 
  
19세기 초 영국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라는 유명한 여류시인이 있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시를 잘 썼습니다. 그녀가 6살에 쓴 시가 출간되었는데 그 시의 제목이 ‘인간의 억압의 잔인성에 관하여’였습니다. 그런 단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놀랍습니다. 그녀가 15살 때 척추가 아파 일어나지 못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병이 생겼다고도 하는데 다른 여자 형제들도 허리가 아팠던 것을 보면 유전적인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자매들은 병이 나았는데 엘리자베스만 낫지 않아 젊은 나이에 다락방에 홀로 누워 많은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20대 중반에 시집이 출간되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보다 6살 어린 로버트 브라우닝이라는 남자가 그 시를 보고 반하여 엘리자베스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도 책으로 출간되어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다 39살의 나이에 결혼하게 되는데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약한 딸이 결혼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합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오지도 않고 딸을 보려고 하지도 않으며 죽을 때 유산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결혼한 뒤 10년 동안 매일 아버지께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와의 화목을 원하는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후 엘리자베스에게 큰 상자가 우편으로 배달됩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자신이 보낸 편지가 개봉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반송된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편지를 읽기만 했었더라도 엘리자베스와 화목하고 그녀에게 유산도 나누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내신 화목의 편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화목’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목이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롬 5:10). 

화목이라는 것은 성경 66권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화목하기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화목에 관해서 다섯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Ⅰ. 화목이란 무슨 의미인가? (Meaning) 

화목이라는 것은 양당사자간에 존재하는 적대감이나 장애물 혹은 간격이 제거되는 것을 말합니다. 화목이 무엇인지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사건이 창세기 33장에 나옵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이었는데 아우인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을 모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극도로 미워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에서의 진노를 피해 멀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밧단아람 혹은 하란이라고도 하는 곳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20년을 사는데 외삼촌의 두 딸을 다 자기의 아내로 취하고 두 여종도 아내로 취했습니다. 20년 동안 아내가 넷이나 생기고 자식은 아들 11명, 딸 1명으로 12명이나 낳았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축도 잔뜩 얻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에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모든 재산을 형에게 먼저 예물로 드리면 형의 진노가 풀어질까 해서 예물을 먼저 보내지만 그 마음속에 품은 진노는 예물로 풀어질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돈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얍

복강 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와 씨름을 했는데 날이 밝자 여호와의 사자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관절을 친 것입니다. 야곱은 고관절이 부러질 정도로 기도했기에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았고 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받았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찬탈자’라는 이름에서 ‘여호와의 황태자’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입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의 축복을 모두 빼앗은 야곱을 죽이겠다며 맹렬한 진노로 다가가는데, 20년 만에 만난 아우가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뚝거리며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상대방이 20년 만에 쩔뚝거리며 나타나면 진노가 풀리는 것입니다. 에서가 절뚝거리는 아우를 보더니 그만 맹렬한 진노가 다 풀렸습니다. 아마 속으로는 ‘저놈이 나의 축복을 빼앗더니 저 지경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에서의 마음속에 있던 진노가 다 풀려서 에서와 야곱은 서로 안고서 입도 맞추고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창 33:4). 적대감은 사라지고 에서와 야곱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입니다. 


Ⅱ.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Need) 

로마서 5장 10절 초반을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라고 나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 전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죄, 불순종,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독립성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골 1:2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0).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 

원수는 무엇을 하는 존재입니까? 원수는 대적하고 대항하며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해를 끼치려 하고 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사도가 되기 전 그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죽이는데 앞장섰고 예루살렘만으로는 모자라 멀리 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거기서 사울이 변화되어 그 즉시 예수님을 믿고 후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위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왜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핍박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부으십니다. 분노는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지만 진노는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원수들을 가리켜 ‘진노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또한 하나님의 원수들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향해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현세를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언제 당할지 모르고 내세에서도 영원한 진노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66권이나 되는 편지를 써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로 살지 마시고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Ⅲ.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주도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Initiator)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다툼이 있고 분쟁이 있으면 누군가 먼저 화목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이 어려운 이유는 화목을 주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은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 중반에 나오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은 수동태입니다. 수동태라는 것은 화목을 주도한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화목을 주도할 능력도 없고 그런 의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목을 주도하셔서 우리에게 먼저 화목의 손길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에 관한 고전적인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8).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과 화목하게 하셨고 사도들을 불러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이 한 일은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케 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증거한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된 인간들을 위해 화목을 먼저 시작하시고,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자고 악수의 손길을 내밀 때 뿌리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Ⅳ. 하나님이 죄인 된 인간들과 화목을 이루시는 수단은 무엇인가? (Means)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롬 5:1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8).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과 화목하는 방편은 그리스도 예수 한 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아닙니다. 머리가 좋은 인간일 수 있고, 영성이 탁월한 인간일 수 있고, 능력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의 원수이고 맹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 된 인간이 당신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부러 원수 삼으신 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이후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이 생겨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교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간격이 생겨버려서 공부해도 모르고, 노력해도 모르고, 부자가 되도 모르고, 출세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간격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간격이 제거되려면 인간의 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독생자에게 당신의 백성들의 죗값을 다 얹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대속적인 속죄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 2:1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대신하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심과 살이 찢기심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8). 

하나님과의 화목은 그리스도를 통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인간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시기를 바랍니다. 


Ⅴ. 하나님과의 화목은 얼마나 지속되는가? (Duration) 

사람들은 전쟁을 하다가도 명절이 되면 휴전합니다. 남북전쟁을 할 때도 추수감사절에는 일주일 동안 휴전했습니다. 휴전기간에는 남군과 북군이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다시 갈라져서 총을 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화목은 잠깐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싸웁니다. 하지만 하나님과는 한번 화목되면 영구히 화목되는 것입니다.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0).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죽었다가도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사람은 이 땅에서 70~80년 살다가 그냥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개나 소와 같은 짐승은 살다가 죽으면 끝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죽어도 영혼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화목된 자에게 부활을 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일 동안 부활한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후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천사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그때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입고 부활하여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재림하실 때까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우리의 원수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귀신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이 온갖 거짓 종교를 만듭니다. 자신이 부흥사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개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도록 하는데 그런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마귀가 귀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신사도운동과 같은 거짓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께 밤낮으로 송사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집사가 되었는데 예배 끝나고 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까? 술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 사람은 권사라고 하면서 이웃집 호박을 몰래 따가지고 가는 것을 보십시오. 저것이 무슨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입니까?” 이렇게 송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변호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아버지, 저 사람은 나를 믿는 사람이고 내가 저 사람을 위해 피를 흘렸으니 마귀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내 자녀입니다.” 이렇게 변호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변호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된 것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화목된 관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 속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은 하나님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쟁하며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다가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그가 출세할 수도 있고 공부를 많이 해서 뛰어난 학식을 얻을 수도 있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착해도 하나님과 원수는 원수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되어도 하나님과 원수는 원수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인 사람이 잠깐 잘 될 수는 있지만 결국 그는 영원히 실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죽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든든하게 합니까?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도 이 땅에 살면서 고통이 있고 환난도 있으며 어려운 과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승리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패배하고 하나님과 화목된 자는 영원히 승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죄를 용서받게 되면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인 저는 오늘 사도바울처럼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권하노니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하나님과 원수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그것이 축복된 인생을 사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화목의 악수를 내미시면 붙드셔서 하나님과 화목하여 동행하시다가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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