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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벧전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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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벧전 2:6-8)

: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세상에서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께로 나아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바로 제사장임을 깨닫고 제사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는가에 대한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Livingstone)이 십니다. 그런데 이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딛고 일어서게 하는 ‘디딤돌’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십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어 그 사람을 더 나은 단계로, 아니 전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십니다.
  

I. 디딤돌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영혼의 디딤돌이 되어 그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그 사람을 산 돌이 되게 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디딤돌이 되심에 대하여 생각하기에 앞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6a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 돌이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사 28:16a)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자 예언이 성취된 ‘보배로운 모퉁잇돌’이십니다. 

1. 예수님은 보배로운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으로는 ‘기촛돌’ 또는 ‘모퉁잇돌’이라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중요하고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에는 문화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퉁잇돌[ajkrogwniai'o"/아크로고니아]’은 ‘맨 구석에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자면 구석에 있다면 별 쓸모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로 주춧돌이라고 하면 좀 이해되지만 구석에 있는 돌이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집 짓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요즘처럼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집을 짓기 위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보를 걸고, 지붕을 얻어서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언제나 주춧돌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주춧돌이 되라는 말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칭찬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춧돌을 사용하여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을 이해조차 못합니다.

그런다면 성경 시대에는 어떻게 집을 지었습니까? 그 지역은 나무가 귀하고, 흔한 것은 돌이었습니다. 돌을 다듬어서 집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돌로 집을 짓는다면 기둥을 세울 주춧돌이 필요 없습니다. 한 번 돌로 집을 짓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돌로 집을 지을 때, 기준이 되는 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돌을 기준으로 해서 옆으로 벽의 기초가 되는 돌을 늘어놓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 기준이 되는 돌의 뒤쪽으로 또 벽의 기초가 되는 돌을 놓습니다.

 그러면 기준이 되었던 돌은 앞 쪽의 기초와 뒤쪽의 기초가 만나는 모서리가 됩니다. 그래서 기준이 되는 돌은 처음부터 벽을 쌓을 것을 생각하고 모퉁잇돌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퉁잇돌은 그 집의 기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은 모퉁잇돌을 기준으로 늘어놓은 기초위에 쌓아 올리면 됩니다. 만약 기준이 되는 모퉁잇돌이 이러 저리 움직이면 집을 제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모퉁잇돌이 놓인 곳이 어디든지 바로 거기에 집은 지어집니다.

예수님이 모퉁잇돌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준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기초로, 예수님을 기준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삶의 기준으로 삼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배당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삶의 기준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삶의 기준이 예수님이심을 확실하게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에게 모퉁이 돌이 되시는 것입니까? 

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6b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의 내용은 모퉁잇돌이신 예수님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기준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부끄럽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부끄럽다[kataiscuvnw/카타이스퀴노]’는 말씀은 ‘수치를 당하다’, ‘망신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끄럽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수치스럽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망신시키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부끄럽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결코 부끄럽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 것은 전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도를 받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도를 받으면서 전도하는 사람에게 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그것을 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일터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명감(?)을 가지고 교인들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위한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장차 영광을 가져다 줄 영원한 복의 증표일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도 산 돌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영에 성령님을 모셔 들이고 모든 일에서 성령님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십니다.  

다시 거듭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 되시는가 하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7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7a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예수님을 만나고 이 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배이십니다. 여기에서 ‘보배[timh/티메]’는 본래 ‘댓가’라는 말입니다.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고 마침내 얻은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댓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기에 귀중품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댓가를 지불할 수 없는 엄청난 값이 나가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대신하여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보배로운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존귀한 분이십니다. 


3.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보배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영생과 영벌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모퉁잇돌로 믿음으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상인이 남아공의 어느 마을에 머물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선반 위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상인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돌멩이는 누구의 것입니까?”

“저것은 내 아들이 산에서 주어온 것입니다.”

“내가 장난감을 줄 테니 저 돌멩이를 내게 주지 않겠소?”

주인은 그 돌멩이를 상인에게 내주면서 오히려 말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제 아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주인은 상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 주인은 그것이 값비싼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이 돌은 케이프타운의 보석상에게 12만 5천 달러에 팔렸습니다. 지금은 수백만 달러, 수 십 억 원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보석의 가치는 그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이아몬드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치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라야만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보배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영혼의 디딤돌이 되어 그 사람을 구원하여 세상에서 제사장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예수님은 걸림돌이 되십니다.

  
II. 걸림돌  

예수님은 믿는 사람에게는 천국으로 향하여 가는 디딤돌이 되시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까?

7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7b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우리가 앞에서 ‘모퉁잇돌’에 대하여 이해한 것처럼,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데로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돌을 주재료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에 모퉁잇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모퉁잇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집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어떤 돌을 모퉁잇돌로 사용하느냐고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은 돌을 모퉁잇돌로 사용하면 작은 집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큰 집을 짓기 위해서는 큰 돌을 모퉁잇돌로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집을 짓는 사람은 신중하게 모퉁잇돌을 선택합니다. 이리 보고 저리 재면서 모퉁잇돌을 선택합니다. 지을 집에 알맞은 돌을 선택하기 위하여 이 돌 저 돌을 살핍니다. 신중한 건축자라면 모퉁잇돌을 선택하여 자리를 잡아놓고 난 뒤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짓는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처음에 선택한 모퉁잇돌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버린 돌입니다. 그런데 그 버린 돌을 다른 사람이 가져다가 자신이 짓는 집의 모퉁잇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린 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돌이라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버릴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보는 눈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버린 돌이 다른 집을 짓는데서 훌륭한 모퉁잇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버렸는데 그 사람이 반대쪽에 가서 큰 역할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버린 사람에게는 큰 낭패일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아이템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자신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손해는 없더라도 심적인 충격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버린 돌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버린 돌인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모퉁잇돌,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1.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버린 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괄시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시신을 돌무덤에 넣고 돌을 굴려 막고 봉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분을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내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그리스도로 선택하셨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두고 벌써부터 새들이 이러 저리 날아다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치 철새’라고 합니다. 당선을 위하여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끌어들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더욱이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줄을 서는 철새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줄을 바꿔 섰다가 낭패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지난 대통령 선거 때, 야당 후보 쪽에 섰다가 여당 후보 쪽으로 섰는데,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어 완전히 새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정치라면 그래도 그럴 수 있는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선택은 다릅니다.

예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의 카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선택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아니라, 1000년이 아니라, 영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선택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는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8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8a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선택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십니다. ‘부딪힘[provskomma/프로스콤마]’이란 ‘장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침[skavndalon/스칸달론]’이란 ‘덫’과 ‘올가미’로 움직일 수 없는 함정의 나뭇가지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껄끄러운 것입니다.

2.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은근히 신경질 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들을 짜증스럽게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충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냥 싫다’는 말을 영적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예수님이 그 일생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디딤돌이 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8b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순종하지 않다[ajpeiqevw/아페이데오]’는 말은 ‘불신하다’ 즉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3.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가장 간단하고 탁월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인간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는데 인간이 결정할 여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해도 나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면 그렇게 믿고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의 생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걸려 넘어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제사장이 되는 것은 우리가 행한 바 그 어떤 일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상에서 제사장이 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신령한 사람이 된 이들을 하나님께서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제사장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분을 믿는 우리에게 디딤돌이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됩니다. 믿지 않음으로 걸려 넘어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어둠을 걷어내기 위하여 기도하여 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디딤돌! 믿는 자에게 디딤돌입니다.

믿지 않음으로 걸림돌! 믿지 않는 자에게 걸림돌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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