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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에 길이 막힐때 (사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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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길이 막힐때 (사 38:1-8)

I. 그 때에

세계적인 명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시력이 나빠서 연주 때마다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외워버렸습니다. 그 이후 이것이 습관화되어졌고 오케스트라 특성상 조화를 이뤄야겠기에 다른 파트 악보까지 모조리 외워버렸습니다. 

한번은 연주를 목전에 두고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지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논 끝에 악보를 모조리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모든 곡을 잘 소화하여 연주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스카니니가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발돋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훗날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나쁜 시력이 나를 명지휘자로 만들어 주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에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문제가 주어질 때에 하나님은 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길이 막힐 때에 다른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여기 “그 때”는 주인공 히스기야가 병이 들거나 죽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대나라는 다윗과 솔로몬 왕국이래로 계속 어두운 시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은 하나같이 사악했고 백성들은 어리석었습니다. 여로보암, 나답, 시므리가 그랬고 오모리, 여호람, 예후가 그랬고 호세아가 그랬습니다.

이런 와중속에 히스기야라는 한 선왕이 나타나 조상들이 세운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수축하고 하나님 전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아 왕은 앗수르 군대 산헤립 장군의 선전포고문을 들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여 18만 5천명 적군을 격퇴시키는 놀라운 기적과 함께 이스라엘이 대승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좀 안심하고 편안히 살 수 있으려니 생각하는 바로 이 순간에 왕에게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예고되었습니다. 

왕의 주치의도 이젠 희망이 없다고 죽음을 선언할 만큼 왕의 병세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급기야 이사야 선지자 마저 히스기야 왕에게 

“왕은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을 정리하는게 좋겠습니다.” 

최후 통고했습니다. 이때 왕의 나이 39살 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두고 “그 때에”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나라의 혼란은 평정되어가고 외세는 물러가고 이제는 편안히 쉴 수 있으려니 할 때에 죽음이 찾아왔단 말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태산을 넘는 순간 꽃밭이 전개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꽃밭대신 때로 물결치는 바다가 내 앞을 가로막는 것, 이것이 세상사입니다. 물결치는 바다를 건너자 옥야천리 과수원길이 전개되면 얼만 좋겠습니까? 그러나 과수원 대신 가시 우거진 황무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는 것 이게 인생사더란 말입니다.

이 아픔을 오늘 본문은 “그 때에”라는 단 한마디 말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II. 문제제기 :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 이 시점에 고난이 와야 하는가? 왜 히스기야 왕처럼 선한 사람에게 이토록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 속에 휘말린 히스기야 왕의 모습은 오늘 상처투성이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초상입니다. 심지어 구원받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날마다 웃음으로만 살 수 없고 상처투성이의 가시밭 길을 걸을 때가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갑작스런 질병이나 사고로 가족을 잃어버린 그 슬픈 심정을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과 기만을 당하고 빈손으로 일어서야 하는 그 울분은 어찌 보상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살아 보아야지 결심한 그 다음날 곧 바로 실패했을 때에 그 좌절감을 어찌 고침받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살벌한 경쟁대열에서 낙오자가 되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밀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겪어야 하는 수치감과 패배감은 또 어떻게 치유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성공하면 멋지게 주님 앞에 충성하고 살아야지 바르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갈 길이 막혀버리고 맙니다. 이 당혹감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한결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나를 찾아옵니다. 

헤롤드 쿠시너(H.S. Kushner)라는 사람이 쓴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쿠시너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고 큰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훌륭한 목사로서 모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3개월된 어린 아들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조로증”이란 것이었습니다.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가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살이 되기전에 팔순노인처럼 늙어 버리고 더 이상 세상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어버이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나는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나는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했는데, 믿음으로 살려고 했는데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와야 하는가?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 고통을 왜 내가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며 오랜시간을 씨름하게 됩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① 인생의 모든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것 아니다.

② 이 땅에 우연한 일은 없다.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나는 용납이 안되지만 나는 이해가 안되지만 이 고통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 

③ 길을 막으신 하나님은 다른 길을 주신다. 하나님은 슬픔과 기쁨을 병행해 주시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쁨만을 분복으로 얻은 자도 없고 슬픔만을 생의 업으로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④ 하나님은 땅의 문을 닫으실 때에 하늘 문을 여신다. 한가지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열고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습니다. 혹자의 말처럼 대신 채운 것 없이 잃어버리는 것은 없습니다. 더운 공기가 빠질 때에 찬공기가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워 줍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곤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형통한 삶, 기쁜 날을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소개한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

형통하기만 하면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큰소리치고 자만하는 버릇이 생깁니다. 이 버릇이 생기면 인간은 결국 육신만 아는 짐승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건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녀들의 이런 불행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곤고한 날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일과 나쁜 것을 나란히 맛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조화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아름다운 인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문제를 푸는 법

그렇다면 누구나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입니다.

* 문제를 푸는 유형을 살펴보면,

첫째, 긁어부스럼 형이 있습니다. 자기 재주, 경험,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뛰다가 더 문제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 절망형이 있습니다. 티끌만한 문제만 있어도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셋째, 백치형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나 없으나 밥 잘먹고 잠 잘자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넷째, 문제가 있을 때마다 아주 쉽게 문제를 푸는 지혜형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날 군사들의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군사들이 노끈을 요상하게 묶어놓고 노끈 풀기 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힘센 자도 풀지 못했습니다. 꾀 많은 병사도 노끈을 풀지 못했습니다. 대왕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부관 내 칼을 가져오너라.” 시퍼런 칼을 높이 치켜 들더니 밧줄을 싹뚝 싹뚝 잘라 버렸습니다. “나는 문제를 이렇게 푼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언제나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이 없는게 문제더란 말입니다. 물이 깊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수영을 할 수 없음이 문제더란 말입니다. 길이 막혔을 때 막힌 길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넓은 길을 발견하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햇빛이지만 진흙은 굳어집니다. 쵸콜렛은 녹아버립니다. 똑같은 햇빛을 받고도 살아있는 나무는 더욱 싱싱하게 자라갑니다. 죽은 나무는 바싹 말라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문제를 푸는 언약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지혜를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크리스챤”이란 사람이 “소망”이라는 친구와 함께 천성을 향하여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기만 합니다. 마침 널찍한 샛길을 만나게 됩니다. ‘이리가면 되겠구나.’ 그곳으로 한참 가는데 점점 길이 좁아들더니 무서운 골짜기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골짜기에 다다르자 마자 무서운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홍수를 만났습니다. 사면초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날은 어둑어둑 저물어 갑니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웅크리고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잠에 골아 떨어지고 맙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무서운 거인이 크리스챤과 소망이 옆에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절망”이라고 하는 무서운 거인이었습니다. “네 이놈들 너희들은 내 영지로 무단 침입한 녀석들이야. 오늘 내가 너희들을 가둘 수 밖에 없다.” 지하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무섭게 매질을 하여 크리스챤과 소망은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절망은 독약이 든 잔을 내밀며 “두 사람이 마시고 죽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버텨봅니다. 다음날 절망이 찾아와 “날이 밝으면 뒷마당에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잠자리에 든 크리스챤과 소망이 이 밤이 마지막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합니다. 

새벽녘 크리스챤이 무릎을 치고 소리를 지릅니다. “지금쯤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도 있었을 내가 이런 악취가 풍기는 지하실에 갇혀 있다니 이게 무슨 꼴인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더냐! 이 의혹의 성안에 있는 자물쇠는 어느 것이나 열수 있다는 보장을 받은 언약의 열쇠가 내 품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내가 아파서 고난이 너무 낙심시켜서 절망시켜서 언약의 열쇠를 망각하고 살았구나.” 크리스챤은 급히 소망이를 깨웁니다. 그리고 자기의 품속을 더듬어 언약의 열쇠를 끄집어 냅니다. 이 열쇠로 감옥문 자물쇠통에 넣어 돌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슬그머니 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곳을 빠져나간 그들은 대문도 쉽게 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날이 새기전에 크리스챤과 소망이는 절망의 성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언약 열쇠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만사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언약의 열쇠! God is the Key! 하나님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Bible is the Key!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언약의 열쇠는 기도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을 때 갑자기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옳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믿음을 얻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새 힘을 얻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에 ‘저 말씀은 내게 주시는 말씀이야. 저 말씀으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어.’ “아멘”하고 받아들일 때에 그 말씀, 언약의 키가 문제를 해결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재미있는 분이 천국을 예약하는 전화번호가 있는데 66국에 3927번이라고 그럽니다. 신구약 66권. 구약 39권 신약 27권. 3×9=27입니다. 


IV. 히스기야의 방법

문제에 부딪혔을 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의원을 불러오라, 명약을 구해보라. 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아픔만 보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를 보십시다.

첫째,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벽은 성전을 향한 벽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성전으로 달려가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병이 악화되어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팽이를 돌리다 보면 중심이 흔들리는 팽이는 오래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흔들렸습니까? 믿음의 축을 잃어버렸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왜 그토록 인생이 불만스러웠습니까? 내 생애 축인 예수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말씀의 축을 잃어버려서 성전의 축을 잃어버려서 우리는 때로 비틀거리고 흔들거리는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능력의 삼각형 - 교회 중심, 말씀 중심, 예수 중심의 사람은 비바람에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나아가 벽은 절망과 좌절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벽은 문이 없습니다. 벽은 밖으로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곳입니다. 내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내게는 전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 외에는. 

절망 앞에 섰을 때,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을 때, 모든 문이 닫혀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길이 막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보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땅의 문이 닫혀졌을 때에 하늘 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앞도 막혀있고 뒤도 막혀있고 좌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땅으로 꺼질 수도 없어도 하늘을 향한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내 인생의 그림자가 가는 곳곳마다 내 앞에 느리워져 있습니까? 슬픔이 있고 문제가 있고 벽이 언제나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습니까? 

우리가 태양을 등지고 살아가면 언제나 그림자가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그림자는 순식간에 내 등뒤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 앞에 그림자가 느리워져 있으면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생의 푯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영혼에 쌓였던 오물을 씻어내어 그 영혼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눈물은 세상의 욕심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워주었습니다.

다윗의 눈물이 그랬고 에스라의 눈물이 그랬고 예레미야의 눈물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스펄젼은 성도의 눈물은 천국가는 고속도로라고 말했던 것이죠. 성도의 눈물은 막힌 길을 뚫는 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셋째, 히스기야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마음을 쪼개놓고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충성을 다했는지,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내 허물과 부족함이 무엇인지 샅샅이 낱낱이 주님 앞에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 앞에는 감출 수가 없습니다. 덮을 수가 없습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나의 가장 작은 충성마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는지 은혜를 그리워하는지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한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기도할 때에 문제가 녹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곤충들 가운데 보호색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나무의 색깔따라 옷을 갈아입고 계절따라 색을 바꾸어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벌레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게 1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이오나 비가 오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도도하게 자기색을 가지고 있는 거북이, 학, 두루미, 사자 등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오래 오래 삽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보호색을 걸치고 다니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한 가지 색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신뢰하고 살아간다.” 

이 신앙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기도의 자세였습니다. 인생관이었습니다. 삶의 자세였습니다.


V. 길이 열려질 때 

하나님은 이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십시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5-6)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룻동안 태양을 멈추게 하신 분이십니다. 즉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이 분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 그림자를 10도나 뒤로 돌리셨습니다. 길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이 길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불가능은 가능해 집니다. 고난은 변해 기쁨이 됩니다. 죽음은 부활로 바뀌어 집니다. 우리 인생들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병이 낫고 생명이 연장되었을 때에 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이사야 38장 10절 이하를 공동번역으로 읽어 봅니다.

“이제 한창 살 나이에 저승의 문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남은 세월을 빼앗기고 마는구나. 나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 땅에서 다시는 야훼를 뵙지 못하고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을 두번 다시 보지 못하겠구나. 나의 초막은 목동의 초막처럼 뽑혀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당신께서는 직조공이 천을 감아들이듯 나의 목숨을 감아 들이고, 베틀에서 자르듯 자르십니다. 내가 제비처럼 애타게 웁니다.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웁니다. 내 눈은 높은 곳을 우러러 보다가 멍해집니다. 나의 주여 괴롭습니다. 나를 보살펴 주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엇이라고 주께 아뢰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일인데! 오늘 이 몸이 찬미하듯이 살아 숨쉬는 자만이 당신을 찬미하옵니다. 나도 한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당신의 성실함을 알리겠습니다. 야훼여! 나를 구해 주신 이는 당신이십니다. 우리는 한 평생 야훼의 전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겠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28살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영하 50도의 추운 날씨에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이 땅에서 숨을 붙이고 살 날이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5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분동안에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찾아온 친구 친지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리라. 그리고 2분동안에 살아왔던 지난세기를 돌이켜 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하리라. 마지막 1분동안은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던 이 땅의 아름다움을 둘러본 다음에 난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서리라.’ 2분동안 친지 친구들을 향하여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나온 생애를 돌이켜 보는데 무서운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내게 한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후회스럽게 살지는 않을 것을. 인생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내가 왜 모르고 살았더란 말인가? 한번 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때 밖이 왁자지껄 시끄러워졌습니다.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며 요란하게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제의 특사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자기의 피를 찍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죄와 벌」「까라마 조프의 형제들」등 불우의 명작을 남기게 되지요. 

도스토예프스키, 히스기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지금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나도 너도 언젠가는 죽어야할 존재들입니다. 다만 그 시간이 연장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시간이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전세 기한일 뿐입니다. 재산도, 자녀도, 직장도, 사업도 내 것 아니요. 남편도 아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 뿐입니다.

주인의 심판에 따라 언젠가는 막이 내려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내 놓아야할 날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오늘밤이라도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못가겠다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욥처럼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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