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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례의 의미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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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의 의미 (고전 11:23-29)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오늘은 우리 기독교회의 두 가지 성례인 세례 예식과 성찬 예식을 거행하게 되는 성례 주일입니다. 오늘 이 거룩하고 복된 예식을 통하여 우리 모두 큰 은혜를 받아서, 더욱 믿음으로 살고, 더욱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신교회의 신학 체계를 세운 칼빈은 참된 교회의 표지를 “말씀의 전파와 성례의 거행”에 두었습니다. 이는 성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칼빈은 또한 말하기를 “우리들의 신앙이란, 모든 측면에서 버팀목이 놓아지고, 최선을 다하여 다림줄을 펴놓지 않고서는, 단번에 그 바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유약한 것들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믿음을 굳세게 강화하고 확립시켜 주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점을 아시고, 친히 세례와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고, 이를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례전, 또는 성례식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가져오며, 어떠한 효능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세례의 의미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았다는 진리를 나타내는 표호요 싸인 입니다. 1)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 세상을 다시 홍수로 멸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실 때에, 하늘의 무지개를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세웠습니다. 2)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에, 할례를 그 약속의 보증으로 정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시기를 약속하실 때에, 세례를 보증으로 정하셨습니다. 막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는 우리가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다는 표시와 같은 것입니다. 3)이 같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성도들이, 그 자신을 주님께 거룩히 드리기로 하는 약조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4)세례는 공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세례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 교회에 입회하여, 동료 신자들과 연합한다는 상징적인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믿음으로 받는 세례는 효능이 있어서, 축복들이 따르며 인치는 약속들이 실현됩니다. 참 신앙으로 받는 세례는 효능이 있어서, 세례를 받을 때에 사죄 받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화되고, 믿음이 더욱 강화되고, 정화된 심령이 더욱 정화되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성찬의 의미

1)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신 후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또한 식후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곧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 그 표로써 떡을 떼고, 포도즙이 담긴 잔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혀로 감별하는 맛은 빵의 맛이요, 포도즙의 맛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음을 무한히 감사해야 합니다. 설교가 말씀을 통한 전달이라면, 성례식은 행위를 통한 전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례전은 눈으로 보는 침묵의 설교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록된 말씀은 형체가 없는 무형한 말씀이라고 하면, 성찬식의 떡과 잔은 유형한 말씀과 같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최후의 만찬은 곧 행위를 통한 설교였는데, 이 행위를 통한 성례전의 설교에서 주님은 무엇을 가르치려 하셨습니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한 희생에 있음을 분명히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자신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을 확실히 믿으면서 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2)성찬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선서입니다. 

성례전을 가리켜 sacrament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서약, 선언, 충성을 맹세한다’는 라틴어 sacramentum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로마 군인이 그들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할 것과, 그의 생명을 바쳐 황제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할 때 쓰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례전을 거행할 때, 날 위하여 피 흘리시고 찢기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 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놀라운 약속, 주님은 그 놀라운 약속을 하실 때에 피를 흘려서 약속했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 주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깨끗이 씻겼노라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불쌍한 인생이, 주님께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맹세는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은 가장 확실하며 또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이 위대한 약속이 우리에게서 희미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만찬 예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생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잘 희미해지며,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약해서 쉽게 흔들리는지, 또 그 약속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얼마나 쉽게 무감각해지는지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약속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킬 필요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로 보게 하시고, 떡을 먹게 하시고 포도주를 마시게 함으로써, 그가 우리를 향하신 이 빛나는 약속이 단지 생각으로만 스쳐지나 가지 않고, 우리의 목덜미를 타고 들어가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마음속 깊은 곳에 훈훈한 느낌으로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할 때에, 나의 죄 때문에 찢기신 주님의 그 아픔을 생각합니다. 무지하게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면서, 내가 얼마나 못된 놈인가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런 아픈 가슴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성찬식은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는 아픈 가슴과 뼈저린 회개가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벅찬 가슴으로 바라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25절에 “너희가 이 떡을 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실 때까지!’ 이는 우리 위해 죽으신 그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말씀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마음 졸이며 살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큰 힘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주님을 생각하며, 토굴 속에서 이 성찬 예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간절히 고대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이익도 포기하고, 토굴 속에서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찬 예식은 고난이 있어도 참고 살았던 성도들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확고하게 붙잡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오늘 이 성찬 예식에 참여하시면서,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주님의 약속을 더욱 굳세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성찬에는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성례전을 가리켜 또 다른 말로 eucharist 라고 하는데, 그 뜻은 곧 ‘감사’ 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축사하셨다는 말은 곧 감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고로 성례전을 가리켜 감사하는 예식, 곧 감사식이라고 불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례식, 유카리스트는 엄숙하면서도 한편으로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할 성도들의 잔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 곧 죄의 용서, 하나님의 자녀된 것, 영생, 천국 등 이 모든 은사들에 대하여 무한히 감사하는 유카리스트 곧 감사의 예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성찬은 신령한 교제입니다. 

성례전에 대한 제3의 명칭은 communion, koinonia 곧 참여와 교제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 했습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찬 예식이란 한 솥의 밥을 먹는 성도들의 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례전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요, 한 식구들이요, 똑같은 하나님의 가족임을 확인하고, 성도끼리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성만찬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곧 예수님을 같이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공동 운명과, 공동 책임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공동 운명체가 되고 한 식구들이라고 하면, 주안에서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시기 쟁투하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고락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성찬은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찬을 받는 자에게는 믿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성찬식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성찬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찬의 떡과 잔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빵과 포도즙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레전은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한 예전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유언이나 유훈이 얼마나 엄숙하게 여겨지는가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유언하신 이 예식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엄숙한 것인가를 느끼면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실로 성례전은 복음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밝혀주는 귀한 예식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귀한 성례식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깊이 깨닫게 되시기 바라며,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화되고, 주님을 위해서 더 뜨겁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성례식을 친히 제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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