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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딛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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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딛 2:1-5)

제가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항상 주례사의 핵심 주제로 삼는 것은 하나님이 신랑신부를 짝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례사를 할 때 다른 좋은 말도 많이 있지만 결혼식이 아니면 아마 일평생 다시 들을 기회가 없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신랑신부를 짝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결혼하는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자리에 참석한 하객 중에 기혼자라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하는 그 이외의 말은 핵심을 빗나간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당연히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신부가 너무 예뻐요!’ 당연하지요. 웨딩드레스와 헤어스타일과 화장에 들인 돈이 얼만데 예쁘지 않으면 돈 돌려받아야 됩니다. ‘아들 딸 많이 낳으세요!’ 그건 본인들이 결정할 문제지,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그 이외의 하객들이 수군거리는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랑이 밑진다느니, 신부가 밑진다느니, 붕어빵이라느니…. 

결혼을 앞두게 되면 평소에는 별로 왕래가 없었던 친척들이 전면에 나서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무개 집은 신부가 예단으로 뭘 해왔다느니, 아무개 집은 열쇠 세 개를 갖고 왔다느니, 아무개 집은 신랑 부모가 어디에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느니…. 

여러분 그런 친척들은 결혼식에 초청하지 마세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결혼식을 너무 호화롭게 한다고 난리를 치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 요구를 하다가는 자식 결혼시키다가 부모 파산하게 생겼습니다. 자식들 키워주고 교육시켜주면 됐지, 도대체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된다는 얘기입니까. 딸을 둔 것이 죄입니까. 아들을 둔 것이 죄입니까. 다들 야단들이에요.

그러지 않아도 요즘에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결혼 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혼을 했더라도 잘못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일수록 결혼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비본질적인 것은 가지치기를 해야 됩니다. 어른들이 나서서 젊은이들을 도와주어야 됩니다. 물론 기도를 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용기를 줘야 되고 격려해야 되고 믿음을 심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혼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부부에게 가장 힘이 되는 말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말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추측하기로는 결혼식 이외에는 일평생 살아도 그 말을 듣지 못하는 부부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말이 모든 부부에게 해당되는지 어떻게 아느냐. 어떻게 세상의 모든 부부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느냐. 개중에는 마지못해 결혼한 사람도 있고 실수로 결혼한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세상의 모든 부부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얘기냐.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일절 구별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구별을 하려고 했다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는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단서도 달지 않고 일괄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한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일괄적으로 말씀하셨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보고 결혼한 다음에는 한 눈을 감고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아봐야 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눈을 그렇게 크게 뜨지 말고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극대화시키면서 살면 됩니다.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미망인 안나 해리슨은 두 번째 부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이 해로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결혼생활의 성공의 비결이 뭐냐?’ 그랬더니 안나 해리슨이 대답하기를 ‘이혼을 안 하면 된다.’고 했어요. 조지 해리슨이 살아있을 때 한번은 새벽 3시에 그 집에 괴한이 침입해서 해리슨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부엌칼을 들고 해리슨을 일곱 번이나 찔렀어요. 그때 그 부인 안나가 벽난로 불쏘시개용 쇠막대로 그 남자를 때려서 기절시켰어요. 남편의 생명을 구했어요.

이것은 용감한 아내인 것뿐만이 아니고 그 일 하나만으로도 해리슨은 장가를 잘 간 것입니다. 그게 정말로 돕는 배필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증거를 어디서 찾으려고 하십니까. 빌리그레함 목사의 부인 루시 그레함 여사에게 기자들이 물었다고 합니다.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루시 그레함이 대답하기를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살인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오늘 신랑신부 당사자보다는 어른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왜 어른들은 며느리나 사위에 대해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어요. 며느리나 사위를 칭찬하면 어디 덧납니까.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어요. 한번 장가오고 시집오면 그때부터 인색하게 결점을 말하는 걸 많이 보는데 요즘 TV 프로 중에 시월드라는 게 있어서 저는 그게 무슨 돌고래 나오는 쇼 인줄 알았는데 시댁식구들을 부를 때 시월드라고 부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며느리가 말하기를 자기 시어머니를 만날까봐 죽기도 싫다고 했어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가 저승가면 다시 볼 거 아니냐. 죽기도 싫다는, 얼마나…. 아마 제 말을 들으시는 시어머니들 중에는 목사님이 며느리편 든다, 편을 든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에요. 편을 들어서 얻을 것이 뭐가 있다는 애기입니까. 갈등이 생기면 자식부부의 결혼생활이 힘들어진다는 것부터 생각해야 되요. 

갈등이 생겼을 때 누구 편이냐 이걸 따지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갈등이 생기는 한 자식부부의 결혼생활에 누가 됩니다. 힘들어 집니다.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어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식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 대부 1편을 보면 말론 브란도가 딸의 결혼식 하는 중에 자기의 대자 자니 폰테인 가수가 찾아온 자리에서 큰아들 써니를 불러놓고 자니 폰테인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기 아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Do you spend time with your family? - 

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냐?’ ‘Because a man who doesn’t spend time with his family cannot be a real man. - 

자기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남자는 진짜 남자가 아니다.’ 정말 멋있는 대사입니다. 정말 멋있는 아버지에요. 멋있는 시아버지, 멋있는 남자에요. 멋진 어른이에요. 정말 대부가 될 만한 인물이에요. 그런데 아버지 중에 자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할 만한 남자가 몇 명이나 있냐는 거예요. 자기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남자는 진짜 남자가 아니다 도대체 아버지 중에 몇 명이나 이런 조언을 해 줄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이건 훌륭한 아버지인 것뿐만 아니라 훌륭한 시아버지에요. 

오늘 본문 말씀 중에 교회의 늙은 여자들에게 바울이 이런 지시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젊은 여자라면 젊은 아내를 말하는 것일 텐데 젊은 아내에게 벌써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결혼을 하고 좀 세월이 지나면 김이 빠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젊은 부부일 경우에도 아내에게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있으니까 이런 구절이 기록된 것입니다. 

소리로 결혼생활을 비교할 때 신혼부부의 집에서는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음식을 끓여먹느라고. 재미있게 지낸다는 얘기입니다. 한 오년쯤 지나면 ‘쉬~’ 소리가 난대요. 아기 오줌 뉘는 소리. 한 십년쯤 지나면 ‘휴~’ 소리가 난답니다. 김빠지는 소리래요. 그런데 요즘은 그 속도가 빨라져서 신혼부부 집에서도 ‘휴~’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곤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러줘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라, 일러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자녀를 사랑하라고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다는 얘기입니까. 특별히 대한민국에서.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영화 퍼블릭 에너미를 보면 미국의 전설적인 은행 강도 딜린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딜린저와 그 일행이 감옥에서 탈옥한 후에 자동차를 몰고 어느 농가의 집에 들러서 끼니를 해결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 농가의 아낙네가 딜린저 옆에 다가와서 조용히 말합니다. ‘선생님,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런데 그 순간에 이 여자의 세 살 난 딸이 영문도 모르고 엄마의 손을 잡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세 살 난 딸이 있는 여자가 처음 만난 은행 강도를 따라서 달아날 마음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충격적인 장면이에요. 그런 여자가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마음 둘 데가 없으면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처음 만난 범죄자를 따라서 도망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이 이 본문을 기록한 것이 이십 일 세기가 아니고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그레데는 크레타 섬을 말합니다. 아주 촌이에요. 촌사람들에게 이천년 전에 편지를 쓰면서 아내들에게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라고 말한 것은 이천년 전에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면 이 시대에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에요. 

그러므로 남편 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내가 당연히 남편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말은 의심하라는 뜻이 아니고 아내의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으라는 얘기입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내가 당연히 마음이 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교회 어른들, 연세 드신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사랑하고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고등수학을 배우기 전에 더하기 빼기부터 배워야 되는 것처럼, 세엑스피어나 셀리를 배우기 전에 ABC부터 배워야 되는 것처럼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기본적인 것을 건너뛰고 고차원적인 것을 가르치려는 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가르치기 전에 땅에 필요한 것부터 가르쳐야 됩니다. 영적으로 희한한 것을 배우려고 하기 전에 먼저 이 땅의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성도로서의 의무부터 배워야 됩니다.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예언이니, 방언통역이니, 계시니, 신유니, 이런 것을 말하기 전에 먼저 가족을 사랑하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순종하고 섬기는 것부터 배워야 됩니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우리가 천사가 돼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사가 되는 게 아니에요.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가르침이 사람을 들뜨게 만들지언정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갖춰주지 못합니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왜 여자들에게만 이런 것을 요구하느냐. 성경이 그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이건 데칼코마니에요. 이쪽에게 요구하는 것은 저쪽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근신하고 순전한 데서부터 참된 영성이 시작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에요. 좌우에 날 선 검과 같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문제가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는 게 문제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잃어버리는 것, 이게 말씀이 훼방을 받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훼방을 받게 하느냐. 아주 기본적인 데에서 성도들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것이 가족에게 상처가 되고 실망이 될 때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로만 들립니다. 

인간은 이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왜 배우자 전도가 어렵고 가족 전도가 어렵고 왜 전도 자체가 어려우냐. 상대방이 마귀여서 그런 게 아니에요. 상대방이 악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문제는 저쪽에 있는 게 아니고 나에게 있을 가능성이 더 많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아서 내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했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는 게 아니고 고속도로가 뚫렸을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뚫려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텐데. 교회가 이것을 가르치고 어른들이 가르치고 부모가 이것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김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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