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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 05:05

드러난 비밀 (엡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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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비밀 (엡 3:1-13)

1.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세상의 어떤 곳이든 탁월한 곳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신기술에 대한 비밀보안에 힘을 쏟고, 어떤 식당들은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드는 맛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비밀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무엇은 비밀에 있는 것입니다. 비밀을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는 그 결과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밀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비밀’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바울이 어떤 비밀을 깨달아서 그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3~4)」 

그가 알려주고자 하는 비밀은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것인데 이제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비밀은 비밀인데 성도들에게 드러나 다 알려진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기 원하는 비밀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를 합니다. 선생님들은 보물을 숨길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엉성하게 숨겨 놓습니다. 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비밀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지금 대단한 비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골로새서에서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대단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강력했습니다. 이방인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만을 선택하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유대주의를 잘 보여주는 책이 요나서입니다. 요나는 선지자로 부름 받았지만,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라는 이방의 백부장을 만나는 것은 꺼렸습니다. 세 번이나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싫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주의의 깊은 편견과 문화인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대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유대종교로만 묶여있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민족과 족속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된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바울의 이 깨달음이 열방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게 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닫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자는 사명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 거대한 비밀을 알고도 입을 닫고 있으면 그것은 책망받을 죄입니다. 

이 비밀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문제가 달려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발견하고 난 이후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엄청난 비밀을 깨달은 자의 무거운 사명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은 특정한 민족이나 몇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어야 할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좋은 것입니다. 불과 120년 전만 해도 한국 땅 안에 복음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을 통해 비밀이 개봉되면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깨달음의 혜택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비밀이 완전히 드러나 있는 시대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나고 은혜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어떤 사람에게는 비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과 11장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음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 자기 동족이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예수님의 고향 땅 나사렛 사람들도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알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눈이 감겨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의 설교로 하루에 3천 명, 5천 명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완전히 드러나 은혜가 폭포수 같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지난 여름 태풍이 왔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니까 평소에는 괜찮았던 창문 틈으로 빗물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틈새라도 태풍이 워낙 강력하니까 스며들어온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열리고 빛이 드러나 감출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밀고 들어오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은혜 안 받기가 어려운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비밀을 ‘내’가 깨닫는 것입니다. 3장 1절부터 바울은 ‘나 바울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2절)’,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3절)’이라고 1인칭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직접 깨닫게 된 비밀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절에는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내가 깨달은 것이라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자신을 “모든 성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을 겸손하게 말한 것도 있지만, 나와 같이 이렇게 부족한 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다면 은혜를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특별한 사람들만 깨닫도록 어렵고 까다롭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특별 새벽 기도에 참석한 어린아이들이 말씀을 받아쓰면서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더라고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영이 맑은 아이들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 복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깨달은 진리가 내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워들은 정보와 직접적으로 아는 비밀은 다릅니다. 설교를 많이 듣는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진리가 깨달아질 때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같은 신자라도 여기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신앙의 세계 속에는 나만의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발견하고, 내가 깨닫고, 내가 경험한 신앙의 세계가 중요합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개인의 신앙 고백이 필요합니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처럼 굉장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 나의 간증이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만나고,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내가 직접 깨달은 진리가 내 안에서 녹아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서 녹아져 내리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그냥 머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만으로는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들도 다 알고, 나도 꿰고 있는 이론이나 지식으로는 흥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좋은 설교들이 방송이나 인터넷, 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지만 그런 것들을 듣는다고 해서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돈 버는 비결, 성공하는 노하우,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에 대한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다고 다 돈을 벌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목사님들도 소위 성공했다는 목사님들의 목회 비밀을 듣고자 어디든 달려가지만, 아무리 세미나를 들어도 이상하게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밀을 알려 주어도 나와는 다른 세계가 되는 것은 비밀을 깨달아 아는 것과 그 비밀을 전달 받아 아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힘은 비밀을 발견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전혀 다릅니다. 비밀을 깨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비밀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름 위의 세계입니다. 나의 삶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달은 것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갈망해야 하는 것은 말씀을 깨달아 아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순간이 올 때 그 인생이 바뀝니다. 진리가 내 심장을 관통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피가 솟구치고 심장이 뛰고 내 영혼에 빛이 임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정적이고 역사적인 사건, 다시 태어나는 경험입니다. 

다음 주일이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로마서 1장 17절을 읽다가 천기를 발견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서 인간적인 몸부림을 치고,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에 갇혀 살던 그 시대에는 굉음과도 같은 복음입니다. 이 거대한 깨달음이 오는 순간 한갓 젊은 사제에 불과한 마틴 루터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거대한 로마 가톨릭의 권력 앞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그러므로 비밀을 깨닫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깨달으면 충격 정도가 아니라 인생이 바뀝니다.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특히 하늘의 비밀을 깨달으면 내 인생의 가치를 그 비밀과 다 바꾸는 것입니다. 진리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는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로 흥분에 빠졌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흥분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개인의 신앙의 세계에는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남다르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좋은 가을에 즐기거나 쉬거나 다양한 사정과 일들이 있지만,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재산의 손실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발견하고 만나고 경험하고 체득한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지에 나가신 선교사님들이 학력이나 능력도 훌륭하지만, 그 땅에서 원주민들과 뒹굴고 사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모든 특권과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에게는 그들만의 신앙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똑같이 믿는 것 같은데 신앙 수준의 차이가 나는 것도 내가 깨닫고 내가 발견한 비밀의 차이입니다. 비밀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고,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만이 가진 영적인 비밀을 가진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된 인생을 살려면 법칙 하나를 붙들어야 하는데 특히 발견의 법칙입니다. 인생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한민국의 지도를 만들어서 서울을 찾아가려고 한다면 힘이 들고 오래 걸리지만, 이미 만들어진 GPS를 하나 사면 한순간에 끝납니다. 내가 미국에 가려고 혼자 애를 쓰면 거의 불가능하지만,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간단해집니다. 죽도록 고생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가게에 가보니 단돈 1,000원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법칙, 구원의 원리, 하늘의 비밀, 이것을 깨달으면 간단한데 이것을 모르니 중세 가톨릭이 변질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구원의 길, 승리의 길, 형통의 길, 문제 해결의 길들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참된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믿는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지금 내가 깨닫고 믿어진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진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그 진리는 내 삶을 흔들어놓고도 남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적인 것을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자로 사느냐입니다. 비밀을 깨닫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에베소서는 로마의 네로 황제 치하의 감옥 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감옥 안의 죄수가 기록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평온함이 넘칩니다. 다른 옥중 서신인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고, 고난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 느껴집니다. 죄수인데 권위가 있고 영광스러움이 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이 감옥 안에 붙잡혀 있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잡혀 있는 것은 로마의 죄수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후 3:13)」 

자신의 신변에 닥친 어려움이 불행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깨닫고 붙잡고 있던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고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안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삶을 바꾸어 놓는 위력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바울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푸는 모든 해답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보화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삶에 절망적인 것들을 다 걷어낼 만큼 가치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평생 캐도 다 캘 수 없는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그런 보화를 캐내어 가는 기쁨을 맛보며 누리는 끝없는 여행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것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은 우리 기쁨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 기쁨과 즐거움을 잊고 있다면 우리 신앙의 관심과 초점이 다른 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관심과 초점은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의 부요함”을 누린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진리의 힘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천기를 깨닫고 영적 득도의 경지에서 황홀함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푸는 이 비밀을 함께 누리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의 깊이, 그 무게, 그 풍성함이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도 거대해서 감옥에 붙잡히든 죽든 상관없이 입을 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발견한 자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풍성함을 깨달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이 비밀의 광대함과 풍성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들이 점점 더 여러분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을 흔들어놓는 깨달음이 있을 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사명자로 살게 하고, 가면 갈수록 더 풍성한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매일 승리하며 사는 멋진 인생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충분히 드러난 비밀에 대해서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비밀을 깨달은 자는 날마다 비밀의 오묘함과 경이로움에 경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도무지 혼자 감추고 있을 수 없는 격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자로, 그것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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