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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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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
<빌립보서 4장 4~7절>

할렐루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예배의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만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우리교회 청년이 유럽 여행을 갔는데
로마의 한 민박집에 갔더니 거기에 고등학교 동창도 왔더랍니다.
그렇게도 넓은 유럽에서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참 좁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둥교회 예배의 자리에서 만난 것도 …
옆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도 …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로 전 세계에서 말씀 듣는 여러분
이렇게 이 시간에 영상으로 만나는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옆의 분에게 “좋은 분 옆에 앉아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립보 교회와 바울

성경에 포함된 사도 바울의 편지는 각각 고유의 목적이 있습니다. 
주로 교회 안에서 발생한 신앙적인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망도 있고, 권면도 있고, 감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특별히 빌립보서에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빌립보서에도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사상을 조심할 것을 
가르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 부릅니다. 

보통 신학자들은 바울이 빌립보서를 로마의 감옥에서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갇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빌립보교인들을 향한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 …” (빌 1:3~4)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 감사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이름만 들어도 고마운 사람,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 
살면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목회자들도 만나면 자기가 섬기는 교회, 장로, 성도들에 대해
감사를 말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들은 교회, 장로님들에 대해 불만, 불평을 표하시며
교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저는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이
목회자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격려 받아야 할 사람은 바울 자신이었지만
오히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신앙으로 격려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4,6) 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쩌면 감옥에서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기뻐할 수도 … 즐거워할 수도 …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냥 ‘기뻐하라’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고 했고, 
돈이나 사람의 조건으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에서 ‘천국시민’으로 …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기독교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
돌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받아 주었고,(행7:58)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습니다.(행8:1)
교회의 성도들이 스데반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사지낼 때에도
바울은 교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가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감옥에 넘겼습니다.(행8:3)
바울 스스로도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회당에서 때렸다고 말했고,(행22:19)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행22:4)

이처럼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딤전 1:13)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180도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딤전1:15, 죄인의 우두머리-새번역)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벌였던 자신의 잘못이
죄인 중의 우두머리였을 정도로 극악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복음에 목숨을 건 자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 믿는 사람들을 때렸던 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매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 믿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던 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 믿는 사람들을 죽였던 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1:21)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인해 고난 받고 있었을 때에도 
오히려 전도자의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을 감사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딤전1:12)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감사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 라고 하였고, 
에베소 교회를 향해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엡 1:16) 하였고,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골 1:3) 했습니다.
이 외에도 바울의 편지는 거의 대부분 감사로 시작합니다. 

바울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오지로 가서 온갖 고난을 견디며 사는 것만이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내 안에서 흘러 넘쳐서 
그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 …
그것이 전도이며 선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매 주일 성경을 높이 들고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고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고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 고백이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무감에서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힘을 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어떤 능력보다 
크고 위대한 예수님의 힘을 입는다면
감사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닌
3가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첫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어보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버림받은 심령입니다. 

- 둘째, 성경을 읽어도, 말씀을 들어도 요절을 외워도, 
하나님의 말씀/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말씀을 듣는 중에 깨달아 지시기 바랍니다. 
강단에서 목회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들리는데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오로지 원망과 불평만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빌1:4)
그러므로 생각할 때마다 원망하고 
기도할 때마다 불평이 쏟아지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만약(if)’의 감사입니다.
‘만약 응답해 주신다면 …’ ‘만약 들어주신다면 …’라고
무엇을 이루어 주시면 드리겠다는 조건부의 감사로서 
가장 낮은 단계의 감사입니다

둘째는 ‘때문에(because)’ 의 감사입니다
무엇이 이루어졌기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일반적인 감사입니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감사입니다
어려운 환란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한 가지 사실에 기인한 감사!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보여준 감사는 
‘만약에’도 아니고 ‘때문에’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감사였습니다. 

다리오왕이 페르시아제국을 다스릴 때 국무총리가 된
다니엘은 성실하고 충성스러웠으며, 총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뢰를 받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좋아했을까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였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별 볼일 없다는 뜻입니다.
잘 생기고, 예쁘고, 총명하고, 똑똑하고, 잘 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습니다.
교회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땀 흘려 봉사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들을 얘기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성실했고, 충성스러웠고, 총명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서 사랑을 받자
다른 관리들에게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움 받은 것뿐 아니라 다니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왕 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어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했습니다.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대로 기도했고
기도하다 들키며 죽을 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결국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을 보호하시고 건져주셨습니다. 
그의 삶에 기도와 감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내킬 때만 감사하면 소용없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정신은 연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전쟁의 위협 앞에서 떨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소망과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드린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의 이름이 없는 무명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것이고 …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요.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찬송이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
-그리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굉장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내용이지만
거기서도 얼마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감사는 영적 건강 진단서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얼마나 건강한지 보려면
감사의 정도를 보면 됩니다. 
행복은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그 문에 들어가서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제사드리는 것도 감사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교회의 문을 통과하여 예배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을 들어올 때 
‘감사함’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The Message)>은 
이 말씀을 재미있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요즘 집집마다 번호키가 많이 달려 있는데,
집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유진 피터슨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Thank you’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Enter with the password: “Thank you!)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감사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교회 문에 들어오실 때
어떤 비밀번호를 누르셨습니까?
원망입니까? 불평입니까? 낙심입니까? 불신입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감사만이 성전 문을 통과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사는 삶의 막힌 문도 여는 마스터키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특별히 절기까지 정해서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며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 전 주일에 감사헌금 봉투를 받고 
그저 짜장면 한 그릇 값을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기둥교회 온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해 선한 욕심쟁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부담스럽게 하는 신앙의 거장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조건을 더해달라고’ 
하나님이 오히려 우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해에 대학원 수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30명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좀 이상했습니다.
수업 첫 날부터 제게 
“교수님 A+를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인가 출석부를 때 얼굴을 봤습니다.
그 학생은 꼭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오늘 강의 감사했습니다. A+를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하는데 
더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A+를 줄만한 학생인지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결국 A+를 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감사의 조건을 주실 수밖에 최선을 다한 
하나님 마음에 합한 감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 
하늘 백성으로 구별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감사함으로 성전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오늘 어떤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왔든지
감사의 마음을 가득 품고 
세상을 향하여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추수감사절을 앞둔 저희들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나온 모든 세월들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이 안미친 것 하나 없음을 깨닫는
감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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