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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부자는 천국가기 어렵나? (마 19: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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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자는 천국가기 어렵나? (마 19:23-30)

오늘도 말씀 앞에 선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주 시리즈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던진 24가지 질문 중 15번째와 16번째 질문을 함께 살펴봅니다. 
15번째 질문과 16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15번/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16번/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인가?
 

성도 여러분! 
세상을 보세요. 세상에는 신앙이 없어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요? 

또 하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냐? 부자는 다 악인이란 말인가? 이것이 이회장이 군금해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아마도 한국 최고의 부자였던 이병철 회장님이 이런 질문을 할 때는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가 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인데 부자라고 다 천국에 가기 힘들다는 성경구절을 보면 마음이 불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부자와 천국문제를 살피며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워가길 축원합니다. 
  

1.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는 것에는 빈부, 나이, 학력, 인종등 그 어떤 것에도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못간다는 것은 성경에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다만, 천국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자 되길 원하시나요? 아니면 가난하길 원하시나요? 

부자요?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부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잠30:8절 하반 절에 보면 세계 최고 부자였던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부자도 좋지만 너무 부해서 하나님 멀리하기 싫고,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 원망하기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 소위 명품을 많이 활용하며 소유할 수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1억이 넘는 손목시계도 있답니다. 6억이 넘는 자동차도 있다고 합니다. 부자가 되면 이런 것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 옷 한 벌에 13억이 되는 옷도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입고 다닐지 모르겠어요. 또 다이아몬드로 만든 핸드폰 값이 16억 원짜리도 있다고 하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가장 비싼 구두 한 켤레 가격이 50억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된 세상인지 이해가 안되죠?   

부자가 되면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갑니다. 

여행도 프리미엄급 호텔에 머물고 비행기도 일등석을 탑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다가 미국 뉴욕에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가려면 얼마나 드는가 여행사 싸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약 1000~1200만원이 듭디다. 한 단계 아래인 비즈니스석은 500만원이 넘습니다. 보통 사람이 타는 이코노믹 자석은 200만원인데... 

그런데도 그런 좌석에 타고 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자들은 드나드는 음식점도 다릅니다. 보통 한 끼 식사에 40~50만원도 씁니다. 우리 동네 근처에도 중식 집에 코스요리를 보니 1인당 9만 원짜리도 있었습니다. 놀래지도 않습니다? 

부자는 상대하는 사람도 다릅니다. 정계 재계, 연예계 거물들과 어울립니다. 소위 상류사회에서 논단 말입니다. 자식들 결혼도 아무나 하지 않고 상류사회 출신들과 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돈 방석에 앉아 보고 싶어 합니다.

소위 말하는 돈 방석에 앉아보고 싶습니까? 제가 한 번 앉아보았습니다. 

어느 음식점 가보니 방석이 온통 만 원짜리 돈으로 인쇄된 방석이었습니다. 그 돈 방석에 앉아보니 기분이 괜찮습디다. 

그러나 부자라고 다 이렇게 사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가 더 근검절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아껴 쓰고 더 주님의 일을 위해 크게 헌신하며 삽니다. 여러분도 그런 부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부자라고 해서 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믿음 문제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그 재물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비록 가난한 봉급쟁이라도 그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이 기뻐하는 일에 전심전력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넉넉히 천국에 가는 백성이 됩니다. 

그러기에 오해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다만 부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그리고 올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무척 어렵기에 주님이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2. 천국은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가는 곳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앞부분을 보세요. 16절 이하를 보세요. 
어떤 사람이 주님께 와서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주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하십니다. 

그러면서 열거하신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입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하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친구에게 대답합니다. 

21절 보세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때 이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구절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내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구원이 있고 하늘에서 보화가 있는 것이구나, 그러면 나는 어쩌느냐?” 

그러면 제가 질문합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받나요? 
=이 청년은 주님이 제시한 계명을 정말로 다 지켰나요? 
=그리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자들을 구제해야 구원 받나요? 

아닙니다. 
십계명을 다 지킬 수도 없지만 지킨다고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재산 다 팔아 구제해야 영생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그렇게 답을 하셨나요?   

주님은 그 청년의 질문의 의도가 뭔지를 아셨습니다. 그는 자기 ‘義’를 들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질문을 자세히 보세요.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이 친구는 자신의 선행이나 행위가 영생을 얻는 도구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랑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그에게 곧바로 정답을 해주지 않고 행위로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님을 말하려고 계명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십계명 중에 사람에 대한 계명만 언급했습니다. 

그러면 이친구의 대답은 “죄송합니다. 노력해 봤는데 안 지켜집니다.”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곧바로 “나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영생을 얻느니라”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친구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을까요? 아닙니다. 착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한수 더 뜹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신 것입니다. 

왜죠? 다 지켰다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이니 재산을 팔아 나누어줘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계명을 다 지켰다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재산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구원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제를 안해서가 아니고 주님을 믿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건에서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4절을 보세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이 말은 부자는 다 천국 못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가 재물을 의지하는 구석이 많으니 주님을 믿고 영생구원 받기가 다른 이들보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천국가기 어려우나 하나님은 누구나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부자도 믿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무엇을 얻으리이까?” 합니다. 그때 주님이 약속합니다. 

28절 29절을 보세요.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은 구원은 신분이나 재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상급이 크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먼저 믿었다고 상급이 많이 나중 믿었다고 상이 적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연조가 짧아도 더 큰 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 부자 되는 것은 믿는 자들만 누리는 복은 아닙니다. 

부자 중에 신앙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악인 중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반 은총은 믿는 자든 안 믿는 자든 다 주십니다. 그러기에 불신자도 열심히 일하고 오력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삼상2:7절에 보세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성경에 부자들을 보세요.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부자는 다윗이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세요. 아브라함도 부자요.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전쟁에 동원될 종만 해도 318명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소나 양 낙타의 수 또한 엄청났습니다. 그런 복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또 엘리야시대 궁내대신 오바댜도 부자였습니다. 

아합 왕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할 때에 50명씩 굴에 숨겨두고 떡과 물을 공급했습니다. 부자가 아니면 이런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신약시대 아리마대 요셉도 역시 부자였습니다. 성경이 그를 부자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돌무덤을 예수님께 제공해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도시에 루디아도 부자였습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했던 여자 사업가였습니다.

아마도 욥도 대단한 부자였을 것입니다. 양이 7000, 낙타가 3,000, 소가 500, 암나귀가 500이었다고 했으니 당대에 엄청난 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도 주실 수 있고 가난하게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십니다. 

그러기에 온전하게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그의 신앙고백대로 하늘 문을 여신다는 약속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은 복을 못 누리는 사람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신15:11절을 보세요.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잠14:31절도 보세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특별히 돌보시고 그를 돕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주를 섬기는 사람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너무 부자가 되면 하나님을 멀리할까봐 적당히 주십니다. 그게 복입니다. 

그러기에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내가 주신 재물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4. 주신 재물을 잘못 사용하면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고후 5:10절을 보세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두 부자를 원하지만 부자는 커다란 위험을 안고 삽니다. 

부자 되면 얻는 게 많지만 잃는 것도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타락과 방탕에 빠지기 쉽고 사치하기 쉽고 교만하기 쉬습니다. 여기 저기 손 내미는 친척이나 단체나 혹은 개인도 많습니다. 저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면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며 적대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한 대로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때라 받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부자들을 보세요. 그동안 現代가문에 재산 싸움 때문에 형제간에 원수가 되는 것을 보세요. 그러더니 요즘은 三星가에서도 재산 때문에 싸움이 한창입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장남 맹희씨, 차녀 숙희씨 등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청구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니 이정도 되면 형제사이가 원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 재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그러는 것이 아니고 욕심이 생기기에 그렇게 집안망신 가문 망신을 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현대, 삼성만이 아닙니다. 두산그룹도 형제간에 싸우고 기타 여러 기업의 갑부들이 형제간에 돈 문제를 갖고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집의 담이 높아집니다. 
부잣집마다 의례히 담이 높고 담장이 가시철망으로 둘러쌌습니다. 
거기다가 CCTV도 설치합니다. 왜죠?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과 단절이 됩니다. 그러기에 부자는 스스로 고립이 됩니다. 외롭습니다. 그러니 돈으로 그 외로움을 풀려 합니다. 

부자가 되면 사회적 책임이 다른 사람보다 더 커집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는 인색하기 그지없으니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부자들에 대해 여러 경고를 합니다. 

렘9:23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했습니다. 

눅12장에 부자의 영혼을 거두면 “그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느냐” 경고하십니다. 

딤전6: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했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가 일반인보다 어렵기에 신앙을 갖는 비율이 낮습니다. 그러기에 천국가기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자에 대해 긍정적인 구절도 있고 부정적인 구절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는 부자의 위험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자라고 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부자 중에는 불의한 부자도 있고 의로운 부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 중에 도둑놈이 많습니다. 세금을 포탈합니다.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횡령합니다. 일부 경제인들이 정권과 유착하여 부정부패하여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러나 다 그렇다고 매도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정말 바르게 벌고 사업을 키워 부자가 된 기업가도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가난한 사람이 다 게으르거나 잘못된 사람이 아닙니다. 바르게 살려다가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무조건 부자라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다 천국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재물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하면 수천억을 가진 심령이 가난한 부자도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단돈 몇 백만 원뿐인 사람이라도 재물을 하나님보다 다 믿고 신뢰하면 그가 바로 천국가기 힘든 백성인 것입니다. 

문제는 “나는 누구냐”입니다. 나는 부자인가, 아니면 가난한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후원을 감사하면서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빌4:11~이하를 보세요.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떤 환경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가 주어졌다고 하나님 멀리하지 않고, 가난에 처했다고 원망 불평치 않고, 하나님이 어떤 형편을 주시든지 자족할 수 있는 성도가 주님의 능력을 받은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에게 재물을 주시고 어찌 사용하나 보고 계십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천국가기 힘든 부자로 사는 분은 없나요? 
아니면 구원을 확신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주님이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며 감사하며 베푸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 누구에게 더 많은 복을 줄까 기다리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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