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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위대한 초청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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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초청 (마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면서 많은 초청을 받습니다. 어떤 초청은 오랫동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또 어떤 초청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I.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을 예수님께서 (마찬가지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멍에를 메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소에 비유하셨습니다. 소는 당시에도 모든 고된 일을 하는 가축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싣고,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고, 등에는 상처와 채찍 자국을 가지고, 고삐가 잡혀서 끌려 다니는 것이, 마치 인생과 같다는 것입니다.

2.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그저 그렇죠 뭐"라고 대답하지만, 그 얼굴에는 "죽지 못해서 삽니다" 하는 표정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했습니다만,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은 그 모습은 다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전부 같은 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짐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의 짐을 십자가로 짊어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집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데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그 돈을 가지고 먼 도시로 갔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나중에는 돼지 치는 집에 들어가서 빌붙어 먹었는데, 너무나 배가 고파서 돼지에게 주는 음식물에서 건데기를 건져 먹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계신 집을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용기를 내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멀리서 이 아들을 알아보고,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와서 아들을 맞이하고는,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것은, 바로 인간이 무한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를 떠난 순간, 마치 풀이 뿌리가 뽑히면 서서히 말라 죽어가듯이, 인간의 삶의 모든 고난이 찾아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길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4.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느냐 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는 아들이 스스로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걸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는,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길인가 보다, 저것이 길인가 보다,, 하고 나름대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면서 그 구원의 길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5.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책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 그 책의 주인공인 크리스챤이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올라갑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은 너무 힘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십자가가 서 있었고, 그 아래는 무덤이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크리스챤이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는데, 갑자기 그의 어깨에 있던 짐이 서서히 풀어지더니만, 결국 짐이 모두 벗겨지면서 아래에 있는 무덤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크리스챤은 홀가분함으로 기쁘게 노래를 부르는데, "예수님이 슬픔을 당하사 내게 안식을 주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게 생명을 주셨네" 

2) 이 <천로역정>의 이야기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예수님을)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 - "내가 참된 안식 (쉼)을 줄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3) 세상에 누가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요? 이세상에 누가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오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6. 너무 쉬워서 믿어지지 않으실 수 있고, 또 공짜라고 수상해 하실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구원 (영생)을 대가를 지불하고 얻으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요? 우리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 될까요? 이 구원의 선물은 너무 큰 것이기 때문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값으로 메길 수 없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 모든 비용을 예수님이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짜입니다. 

어떤 아들이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 하면서, "잔디 깎은 것 10,000원, 쓰레기통 비운 것 5,000원, 동생 돌본 것 10,000원. 합계 25,000" 이라고 청구서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돈 25,000원과 함께 메모를 남겼는데, "내가 너를 배속에서 10개월 동안 키운 것 공짜, 5년 동안 너 피아노 공부시켜 준 것 공짜, 너 지금까지 밥 먹여 준 거 공짜, because I love you.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이 은혜의 초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기쁨으로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는 또 하나의 초청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1. 오늘 성경말씀은 이처럼 두 개의 명령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게로 오라", 하시고는, "내 멍에를 메라" 하셨는데, 멍에를 벗으라 하시고는, 다시 멍에를 메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내 멍에를 매라" 하시면서 "왜냐하면" 으로 시작하는 두 개의 말씀을 주시는데, 하나는, "왜냐하면,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왜냐하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에," 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같이 있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멍에는 쉽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라고 할 때에, "좋다"는 단어가 바로 "쉽다"는 단어와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메라고 하는 멍에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다른, 편안하고 즐겁고 좋은 것입니다. 

2) 그리고 "내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나와 멍에를 함께 메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소가 쟁기를 끌 때에, 두 마리가 함께 한 멍에를 매고 끌었습니다. 그래서, "내 멍에를 매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고, 우리 인생의 짐을 함께 끌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쟁기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기에는 너무 어렵고, 그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풀어 나가야 합니다. 

2. 그래서 예수님이 "내게 와서 배우라" 하신 것입니다. 대학입학 시험을 위해서 유명한 강사에게 많은 과외비를 주고 배우듯이, 예수님께 와서 인생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세계 3대 부자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워집니다. 이 워렌 버핏과 뉴욕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끼 하는 기회를 매년 경매로 판매하는데, 올해 무려 40억 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투자의 귀재에게 투자에 대해서 조언을 듣는데, 그 몇 시간에 40억 원을 주고도 배우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인생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는 예수님은 공짜로 "내게 와서 배우라" 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이 초청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초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III. <Halftime> 라는 책이 있습니다.  

1. 축구에서 전반전을 뛰고 나서,, 후반전을 가지기 전에 하프타임을 가집니다. 잠깐의 휴식을 하면서, 후반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전략을 새롭게 짜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도 이런 하프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새롭게 계획하는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밥 뷰포드는 40세 중반에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아들이 죽는 사건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Mike Kami 라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문을 받았습니다.  마이크 카미는 사람은 매우 유명한 기업 자문가입니다.

카미가 묻기를, "당신의 상자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동인" (driving force)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결과 지금까지 자신의 상자 안에는 성공, 돈, 인기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상자안에 하나님을 넣기로 했을 때에, 그의 인생이 성공에서 의미있는 삶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밥 뷰포드가 말하기를, 보통 우리의 상자 안에는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걱정입니다. 둘째는,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이걸 막지 않으면 안된다는 두려움에 쫓겨서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분노입니다. 일이 원래 되어져야 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내가 인정받아야 할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가지이지만, 결국은 한가지인데, 그것은 그 상자안에 나 자신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 힘과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2. "여러분의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오늘 그 상자안에 예수님이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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