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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있어야 될 자리, 지켜야 할 본분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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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될 자리, 지켜야 할 본분 (눅 15:11-24) 

청소년인권조례 추진위원회가 지난 6-7월, 서울시내 청소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결과. 21%의 학생이 가출 경험이 있었다. 가출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1)자유롭고 싶어서 45% 
2)부모님의 지나친 간섭 34%

청소년의 가출이 위험한 것은 쉽게 범죄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가출 청소년의 4대 범죄, 절도, 성매매, 폭력, 약물중독. 이와 같은 범죄에 물들게 되면 마지막 종착역은 교도소나 윤락가, 범죄조직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롭게 놀고 싶어서 집을 튀쳐 나왔지만 나와서 세상을 경험해 보니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은 보호해 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가출 청소년들은 회복되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탕자의 비유

오늘 본문은 가출의 원조가 되는 한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유명한 내용이다. 본문의 전통적인 주제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러나 오늘은 본문의 초점을 탕자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어떤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문제아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떼를 써서 자신 몫의 유산을 미리 받아 멀리 타국으로 떠났다. 그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와 쾌락을 소원했다. 한 동안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했던 쾌락적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문은 쾌락적 삶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눅 15:13 ...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방탕한 삶은 궁핍을 가져왔고, 결국 그는 돼지치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해서 이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직접적인 원인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1)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아버지의 집이었다. 아버지의 잔소리, 형의 간섭이 있어서 불편하다 할지라도 그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버지의 집인 것이다. 그는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을 튀쳐 나온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지켜야 할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면, 첫 번째로 따르는 의무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째 아들의 특기는 아버지의 속을 긁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형이 그를 반기지 않은 것을 볼 때 형제 간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들이면 아버지를 도와 집안 일을 거들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돈이 생기면 놀러다니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가 집을 나갈 때는 자식의 신분도 버린 것이다. 아버지보다는 자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지에서 실패하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아들”의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았다.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났을 때, 지켜야 할 본분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낭비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궁핍이 찾아왔고 결국은 종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비유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두 가지 

첫 번째 질문 - 나는 지금 있어야 될 자리에 있는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본문에서 아버지 집은 비유적으로 교회를 가리킨다. 물론 우리는 지금 있어야 될 자리에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답이 과연 옳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에서 자리를 이탈한 두 가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 밖으로 나간 둘째 아들의 모습

그는 자유롭기를 원했다. 집 안에서 있는 것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래서 가출했다.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로 말하자면 아예 교회를 떠난 상태를 말한다. 주일이 아닌 일요일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음식 먹을 때 눈치보며 기도하던 불편함에서 자유, 사람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하게 된다.

2) 안에 있으면서도 벗어난 첫째 아들의 모습

그는 모든 예배에 잘 참석했다.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 금요기도...... 외적으로는 모범적이었으나 그러나 그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탈된 상태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아니더라도 집 안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모습 속에서 첫째 아들의 모습이 될 때가 많다. 예)목회자의 자녀. 

아버지의 마음은 벌떡 일어나 팔장끼고 함께 갔으며 좋겠는데 엉뎅이에 본드를 붙이고 있다. 말 없이 먼저 나온다. 잘못하면 집안에 있는 큰 아들과 같이 될 것 같아서...

종종 선교사님들로부터 듣는 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예배 나올 수 있는 그 자리가 있다는 것, 새벽시간에는 여전히 변함 없이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의자를 들어 올려 먼지 마시며 쓸고 닦는 일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섬김의 자리, 교제의 자리에 있는가? 사소한 일 같지만 그 일로 인해 감사하기 바란다. 내가 있어야 될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나는 첫째 아들의 상태가 되거나, 아니면 둘째 아들과 같이 가출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질문 - 나는 지켜야 할 본분을 지키고 있는가?

본분이란 용어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1) 자기에게 알맞은 신분

그렇다면 먼저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신분, 정체성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아들의 실패는 아들된 신분의 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 마땅히 행해야 할 직분

아들에게는 아들에게 맞는 역할이 있다. 그는 신분에 맞는 역할, 마땅한 도리가 있었다. 둘째 아들의 문제는 신분을 망각한 것이고, 그의 행동은 그의 신분에 적합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그 신분에 맞는 처신이 따라야 한다.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목사는 목사답게, 장로는 장로답게, 권사는 권사답게, 집사는 집사답게... 성도는 성도다워야 한다. 성도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 
지난 10월 초, 남북군사분계선 경계망을 뚫고 북한 병사가 귀순하였다. 그는 우리 병사들의 내무반의 막사를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서 다시 30m 떨어진 초소로 찾아가서 귀순 의사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이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지자 군 당국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가 어떻게 4m 높이의 철책선의 3중 벽을 뚫고 들어왔으며 그가 넘는 동안 왜 발견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하여 계속 진상조사를 하고 경계 소홀로 군 지휘관들이 엄중 징계를 받았다. 

만약 무장한 북한 병사들이 공작을 위해 침입해 들어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경계 근무의 태만이라 할 수 있다. 병사들이 있어야 될 자리에 없었고, 자신이 수행해야 할 경계 업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나 자신의 신분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2.아버지 집에 거해야 한다.
아버지 집은 교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벗어나면 망한다. 시험에 들어도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나갔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한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3.자신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다.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교회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숨보다 교회를 더 소중히 여겼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사랑, 서로 섬김, 주인행세 해서는 안된다. 

예)이영무선수- 미국 프로축구리그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인공 이영표선수다. 그의 나이 지금 35세, 축구선수로서는 고령에 속한다. 그런 그가 올해 큰 일을 일궈냈다. 그가 속한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올해 초 리그 최하위였는데 시즌 마감이 다 된 지금 리그 5위, 플레이 오프에 오를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팀 주장인 제이 드메릿은 이영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35세의 나이에도 언제나 그의 포지션에 서서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경험이 풍부하고 기술도 뛰어나다. 그 자체가 완성품이며 환상적이다.”

메시 같은 골잡이는 아니었으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사랑한다. 그 결과 꼴치 팀을 전체 리그 5위로 올려 놓았다.


2012년의 마지막 두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 바란다. 
과연 나는 내가 있어야 될 자리에 있었는가?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본분을 지켰는가?

돌아보고 이탈했다면 다시 돌아오는 그래서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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