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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의 품격을 가지십시오 (벧전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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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품격을 가지십시오 (벧전 2:11-12)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왕 같은 제사장들’인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에서 우뚝 세워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드신 목적은 우리를 이렇게 되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덕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 우리들이 살아가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안 궁금하면 200원”

이것이 요즘 어느 TV의 개그프로그램을 통하여 유행하는 말입니다. 이름 하여 ‘거지의 품격’이라는 코너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거기에서 버스정류장의 주인인 꽃 거지 허경환이 내뱉은 말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김지민이 “사람이 멀쩡해 보이는데 왜 일을 안 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이라며 돈을 요구합니다. 이에 승객은 “아이, 거지가…”라며 마지못해 돈을 줍니다. 이 때, 승객에게 돈을 받으면서 거지는 “이건 일해서 번 돈이다”라고 능청을 떱니다. 

어느 시청률조사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거지의 품격’이 코너별 시청률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이 말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세상이라서 이런 말인 인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거지도 품격이 있다고 해서 인기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투박한 겨울 점퍼 안에 무수히 많은 종이꽃이 펼쳐지는 ‘꽃 거지의 위엄’ 때문인지, 허경환의 잘 생긴 얼굴에 의외의 거지 역할이 인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냥 이유가 없이 인기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그러나 이런 말이 왜 인기가 있는지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중요한 시간에 ‘거지의 품격’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하지만 500원 받고 가르쳐드릴 내용이 아닙니다.  

아무리 궁금하셔도 말씀보다 앞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런데 왕 같은 제사장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I. 자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이, 우리는 자신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 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1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1a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오늘 말씀은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진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가 그들을 매우 극진히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가 사랑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임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제가 우리교회의 새가족으로 등록하신 분들과 처음 만나서 드리는 한결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믿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것은 그 분의 전지, 전능, 무소부재, 영원불변 등등 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선적으로 하나를 말하라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하여 요한복음 3:16 말씀을 설교노트에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저는 그 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까지 밖에는 쓸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썼을 때,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감격이 제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왔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제 가슴을 치밀었습니다. 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입에서는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다니요”라며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 몸으로 믿어졌습니다. 그 날 이후,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시기만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분이 나를 사랑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여기에 제가 거룩하여 지고, 공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기까지 사랑하신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기억하여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우리의 왕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가리켜 거류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거류민[pavroiko"/파로이코스]’은 ‘무엇에서부터’라는 분리를 나타내는 말과 ‘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즉 ‘집을 떠나서 사는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타향살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2. 그러나 우리는 거류민입니다.

우리가 거류민에 대하여 자주 들었던 말은 ‘재일 거류민단’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 분들은 일본에 있지만 일본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분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다스릴 때 끌려간 사람들과 그 후손들입니다. 그 분들의 국적은 남북한 모두를 포함한 조선입니다. 이 땅의 백성인데 남의 땅에서 살고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거류민이라고 하는 것은 그 국적이 영원한 하늘나라이지 이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영적으로 하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백성인데 이 땅에 잠시 살고 있는 거류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왕으로 대접하지 않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일본국적을 갖지 않았다고 해서 권리를 제한 받는 재일거류민단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늘 백성이나 이 땅에 잠시 마무르고 있는 거류민입니다. 그래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집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또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그네[parepivdhmo"/파레피데모스]’는 여행 중에 있는 외국인을 가리킵니다. 나그네는 어떤 곳에 정착하여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자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입니다. 


3. 그러나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나그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 어디서 왔다가 / 어디로 가는가 / 구름이 흘러가듯 / 떠돌다 가는 길에 / 정일랑 두지 말자 / 미련일랑 두지 말자 / 인생은 나그네길 / 구름이 흘러가듯 /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 말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그야말로 정붙일 곳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본향 천국을 향하여 가는 사람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갈 곳을 모르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천국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이기에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나그네일 뿐입니다.  

또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12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2a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이방인 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 단초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 밖에 있는 이방인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천국의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정말로 특별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4. 우리는 이방인의 이방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갈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야할 영원한 본향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똑 같은 나그네인데 나그네처럼 살지 않는 이상한 나그네가 우리입니다.

지난 번,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일입니다. 입국심사를 받기 위하여 줄을 서려는 참이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을 피하여, 짧은 곳에 서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내국인(domestic)’, 말레이시아 국민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줄이 긴 ‘외국인(foreign)’이 서는 곳에서 한참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제가 외국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외국인 줄에 서 있었던 상당수의 외국인이 인근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저와 같은 외국인인데 말레이시아에 일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외국인 줄에 서서 자기나라 말로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외국인 줄에서 선 사람들에게도 그 분들보다는 얼굴이 희멀건 외국인이었습니다. 저는 선교의 사명으로 그곳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이방인들 가운데 살아가는 천국의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 가운데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세상 이방인들 가운데서 특별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쓴 왕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제사장으로써 입은 특별한 예복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거류민으로 나그네로, 이방인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왕이 아니라 똑 같은 나그네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자리입니다. 

자신이 천국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이 중요한 말씀을 드리면서 ‘거지의 품격’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류민이요, 나그네입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품격이 있는 거류민입니다. 품격이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우리의 행실을 말씀하십니다.
  

II. 행실 

우리는 거류민이라도 함부로 살아도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그네라도 품격을 가지고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1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1b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는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정욕을 멀리하여야 할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정욕[ejpiqumiva/에피뒤미아]’은 우리의 욕망을 가리킵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입니다. 그런데 그 열망 가운데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멀리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어하라[ajpevcw/아페코]’는 말은 ‘떨어져 있다’, ‘멀리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욕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천 년은 고사하고 백 년도 살지 못할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좋다 면서도 이 세상에서 잡은 것을 놓지 않으려고 손을 움켜쥐고 있지 않습니까!

잊자, 잊자! 그런다고 근심이 사라지고, 슬픔이 묻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길입니까?
다시, 12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2a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오늘 말씀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확실한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2.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행실’이라는 말은 별로 좋은 느낌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실과 연결된 말로 ‘행실이 나쁘다’, 또는 ‘행실머리가 고약하다’ 등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서 행실(行實)은 실지로 드러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행실은 실제로 보이는 행동의 열매입니다. 여기에서 행실[ajnastrofhv/아나스트롭훼]은 삶의 태도, 처신, 행동, 품행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는 선한 행동, 칭찬을 받을 만한 선한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선한 행동을 하다보면 선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선한 공로를 많이 쌓는 적선(積善)을 하다보면 그것이 그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선한 사람이 되었으니, 선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가 거류민과 같고, 나그네와 같고, 이방인의 이방인과 같다고 할지라도 왕 같은 제사장의 품격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갈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에 갈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을 행하여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보도에 따르면,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 조사에서 개신교(28.1%)가 3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천주교와 불교의 신뢰도가 상승한 반면, 개신교는 크게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MB 정부 들어서면서 심화되기 시작한 개신교 편향 논란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비도덕적 행태가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교회는 사실 할 말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조사 결과라고 발표하는 것이 또 하나의 언론 프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비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지도 품격을 찾는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품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진짜’ 거지같은 습성이 그리스도인들 마음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선한 행실을 하여야 할 것을 생각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정욕에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영혼에 거슬러 싸우는 정욕을 제어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본향인,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할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실을 가져 정욕을 제어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12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2b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행실을 선하게 함으로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려는 목적은 도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백성답게 사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여기에 우리의 모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하여 정말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행실을 선하게 가짐으로써 우리 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우리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길은 우리가 우리의 행실을 선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거류민이요, 나그네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다른 이방인들과 품격이 다른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비록 나그네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행실을 선하게 하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설교 제목이 왜 ‘나그네의 품격’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500원만 내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더욱 깊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 선한 행실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품격 있는 나그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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