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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게으름 (약 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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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 (약 1:19-21) 
 
 
❚개미와 베짱이

지난 시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나쁜 게으름, 위험한 게으름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는 잠언 6:6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개미가 부지런하고 근면한 상징으로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지요? 개미가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일하고 먹이를 모을 때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바이올린 켜며 노래 부르다가 추운 겨울이 닥치니 먹을 것이 없어 개미에게 얻어먹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이 유명한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고 게으른 자는 비참해진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얼마 전 서점에서 이상한 제목이 달린 책을 하나 보았습니다. 제목이 <노는 인간이 오래 산다>에요. 신기해서 책을 펴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라 일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일벌레처럼 평생 죽어라 일만 하면 결국 지치게 되고 오히려 롱런,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놀 줄도 모르고 인생을 즐길 줄도 모르고 살면 오히려 삶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라는 것을 실어놓았어요. 

개미는 여름 내내 죽어라고 일하다가 겨울에 신경통, 관절염, 류마티스 걸려서 치료하느라 고생하고 겨우 모아놓은 돈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고, 베짱이는 여름 내내 바이올린 켜고 노래 부르느라 사람들한테 “저 그러다 알거지 된다, 인생 망친다”고 핀잔 받다가 가을에 슈퍼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1등 상금 3억도 받고 크게 성공한 가수가 되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를 읽고 픽 웃고 지나갔지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그래서 개미를 보고 배우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무조건 개미만 좋은가? 때로는 베짱이가 될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베짱이도 되라는 것이 게으르게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여유 없게 살지만 말고 즐길 줄도 알고, 쉴 줄도 알고, 때론 넉넉하게 살면서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 일밖에 모르며 너무 여유 없게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일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오히려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그러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쉴 줄도 모르고 그렇게 너무 빡빡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너무 개미처럼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모으는 데만 집착하다가 남과 나눌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바칠 줄도 모르고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게으름은 악한 것이고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성경은 이 게으름을 경계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려 합니다. 물론 게으름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으름이 악하고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떨 때 우리에게 “게으르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빠른 것만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일부러 게을러지고 일부러 천천히 가야 한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이것을 저는 “거룩한 게으름”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말하기, 성내기를 게을리 하라

첫째, 성경은 우리에게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처럼 듣기는 부지런히 하고 말하기는 게을리 하라고, 성내기도 게을리 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1:19~20 말씀을 다시 봅니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뭐라고 말씀합니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라고 말씀합니다. 듣기는 빨리 하라는, 듣기는 부지런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는 천천히 해야 합니까?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만들 때 귀는 두 개, 입은 하나를 만드셨을까요? (입을 가리키며) 여기다가 입 하나 더 만들면 좋잖아요? 밥 먹는 입 따로 하나, 말하는 입 따로 하나, 찬양하는 입 따로, 욕하는 입 따로 만들면 편하잖아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굳이 사람을 만드실 때 귀는 두 개, 입은 하나를 만드신 까닭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전혀 상관없이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몇 배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말 듣는 것은 아주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빨리 해서 자기 말만 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남들 말할 때는 “그런 심한 말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생각나는 대로 마구 말을 내뱉어 남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말이 많고 빠른 분들은 대부분 성내기도 빨리 합니다. 성격이 급하고 강해서 남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거나 자기주장이 안 받아들여질 때 쉽게 화를 내고 아주 빨리 분노하곤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듣기는 속히 해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을 잘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반면 말하기는 더디 하라, 말은 가급적 줄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나오고 남에게 상처도 주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말을 좀 줄이고 가급적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합시다. 덕을 세우는 말만 합시다. 

수요예배 때 나누었던 욥기 말씀처럼 ‘바른 말, 옳은 말’보다는 ‘좋은 말’을 합시다. 내 고집 내 주장은 가급적 내려놓고 남의 말을 듣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저는 그래서 이런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생각나면 곧바로 말을 내뱉지 말고 말하기 전에 한 순간, 딱 0.1초만 생각하는 습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뇌를 만드실 때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이 말이 필요한지, 꼭 해야 할 말인지, 안 해도 좋은 말인지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딱 0.1초만 생각하고 말하면 실수도 줄이고 말로 덕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성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을 안 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성나고 화가 나면 오늘 말씀대로 더디 하십시오. 화를 내더라도 한 박자만 쉬고 화를 내세요. 저도 이 말씀대로 하니까 정말 분노가 많이 줄어들고 실수도 많이 줄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게을리 하고 성내기는 더 게을리 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악한 데 게을러라

둘째, 성경은 우리에게 악한 데 게을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6:19 말씀을 잃습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세상에는 악한 데 아주 빠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나쁜 일에는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죄 짓는 일에는 어쩌면 그렇게 민첩한지요. 가끔 범죄자들이 붙잡혀 뉴스에 나올 때 보면 그 수법이 기가 막히게 교묘합니다. 그래서 경찰보다 도둑놈이 항상 한발 앞서간다는 말도 나온 모양입니다. 요즘 전화로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사기를 치는 보이스 피싱이라는 것이 극성이지요. 여러분 중에도 당해본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바보같이 뭘 그런 걸 당하고 있어?” 할지 모르지만 당한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절대 속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도 수법이 교묘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부목사님 이름으로 전 교인에게 “지금 광주인데 급한 교통사고가 나서 돈이 필요하니 100만원만 빨리 송금해 주세요” 하고 문자가 와서 적지 않는 교인들이 돈을 보내준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데 절대 속지 마세요. 하도 수법이 교묘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보세요. 얼마나 머리 좋습니까? 얼마나 민첩하고 부지런합니까? 세상에 도둑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밤잠도 안자고 일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좋은 머리로, 그 부지런함으로 악한 데, 죄 짓는 데 쓰니까 문제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은 도둑이나 사기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도둑이나 범죄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선한 데는 지혜로우라, 즉 선한 일 하는 데는 지혜롭고 부지런하고 빨라야 합니다. 반대로 악한 데는 미련하고 게을러야 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세요. 정도(正道)가 아닌 편법이나 불법이 빨라 보입니다. 남들 다 그 길로 가니까 거기가 좋은 것 같고, 그 길이 돈 버는 길이고 성공하는 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시편 1편은 말씀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 믿는 사람, 의인은 절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빠르고 이익이 있다 해도 절대 안 갑니다. 다만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길을 묵묵히, 천천히 따라갑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기동성이 뛰어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느립니다. 기동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여기 좋은 게 있다, 저기 성공하는 길이 있다 해도 빨리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겨는 바람에 날려 빨리 움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바람에 나는 겨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시냇가에 뿌리 내린 나무만 열매를 맺습니다. 묵묵히, 천천히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이 결국 열매 맺습니다. 이 말씀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 길이 진짜 성공하고 진짜 형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보다, 성령님보다, 기도보다 게을러라

마지막 세 번째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절대 앞서가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게으름을 위해 절대 앞서 가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마라! 언제나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움직여야 합니다. 특히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려운 일, 큰 일이 닥쳐왔을 때 절대 조급하면 안 됩니다. 이럴 때 빨라지면, 너무 부지런하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가게 됩니다. 우리 의욕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고, 우리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무조건 천천히 게을리 가십시오.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반드시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움직이기 바랍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2) 성령님보다 앞서 가지 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일단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반드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님보다 내 열심이나 의지가 앞서가지 말아야 합니다. 매 순간 “성령님 나를 이끌어주세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묻고 가셔야 합니다.

3) 기도보다 앞서 가지 마라! 반드시 모든 일을 결정하거나 실행하기 전에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서가면 큰일 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큐티 심화 세미나에 부산 수영로교회 부목사님이 와서 강의를 했는데 그분과 식사를 하며 들어보니 원로목사이신 정필도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항상 입이 닳도록 하시는 말씀이 “입 다물고 기도해라”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분의 이런 생각이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가장 중요한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일에 대해 너무 빨리 반응하고 결정하지 말고, 또 그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논의하기 전에 입 다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이런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형통한 길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게으름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저도 효자교회 목회 10년을 맞게 됩니다. 지난 주 내년을 준비하는 정책당회를 했는데 예년과 달리 40분 동안 온 당회원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고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기도회 전에 제가 설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10년 목회를 돌아보니 새삼 장로님들이 참 고마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도 젊고 실수가 많지만, 10년 전 효자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고 담임목회도 처음 해보는 생짜배기 초보 목사였으니 얼마나 어리숙하고 실수도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장로님들이 말없이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그래도 지금까지 10년 별 큰 문제없이 목회해 온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니 그때 저는 의욕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젊은 목회자가 뭔가 좀 빨리 바꾸어놓고 싶고 좀 빨리 이루고 싶어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보다 제가 앞서고, 성령님보다 제 판단이 앞서고, 기도보다 앞선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실패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봐도 요즘 저는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리 급한 일 어려운 일이 생겨도 조금 천천히 가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노련해져서가 아닙니다. 제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더 천천히, 때로는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가야 한다. 절대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바로 그 때 생각해 낸 것이 ‘거룩한 게으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좀 여유 있게 삽시다. 하나님도 생각하고, 성령님도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갑시다. 좀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묵묵히 갑시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은 편법도 불법도 빠른 길도 마다하고 오직 정도로만 갑시다. 무슨 일이든 기도하고 결정합시다. 회의하기 전에 기도하고, 말하기 전에 기도합시다. 입 다물고 기도합시다. 

우리 걸음만 빨리 해서 혼자 가지 말고 하나님과 손잡고 동행하고 갑시다. 우리만 냅다 달려가지 말고 어려운 사람, 부족한 사람, 이런저런 이유로 잘 못 따라오는 사람도 챙기고 추슬러서 손잡고 같이 가는 교회 만듭시다. 이런 거룩한 게으름을 가진 성도와 교회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교회, 목적을 위해 계속 채찍질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묵묵히 천천히 넉넉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그런 교회를 복 내려 주십니다. 목회 10년을 맞는 저는 앞으로 좀 더 게으른 목사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좀 더 게으른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좋은 교회 효자교회가 더 좋은 교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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