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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신앙과 넓은 마음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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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신앙과 넓은 마음 (창 50:15-21)

11. 11. 11시입니다. 한몸평화가 온누리에 깃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늘 아쉬움 속에 삽니다. 어떤 때는 나도 능력 있는 부모가 잘만 밀어 주었다면 큰 인물 되었을 텐데-, 나도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한 몫 단단히 했을 텐데-, 나도 실력 있는 선생의 지도를 받았으면 합격했을 텐데-, 나도 부잣집 딸을 아내로 뒀다면 처갓집 도움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텐데, 나도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났다면 호피무늬 코트입고 동창회에 가서 기를 펼 수 있을 텐데, 좋은 친구 만났다면 크게 발전했을 텐데-, 좋은 교회에 다녔다면 신앙생활을 잘 했을 텐데-, 그럽니다. 좀 더 성공하지 못하고,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한 오늘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 시대의 탓이요, 그 사람 탓이며, 조상 탓, 환경의 탓이라고 돌리며 남을 원망하고, 환경을 불평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요셉은 하루도, 발 뻗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 갑자기 노예로 외국에 팔려갑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그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죽을 고생을 다해 노력한 결과 좀 인정을 받는가 했더니, 음란한 여인의 투기로 죄 없이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누구하나 인생길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롭고 힘겨운 인생길이었습니다. 그 어린것이 어떻게 그러고도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성취했고, 가족과 애굽을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다 성공한 인생,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공했다면, 

① 자기 성취를 이루고 보람과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만한 삶일 겁니다. 자기 꿈을 이뤄 성취감을 맛볼 때 복입니다. 흔히 후회 없이 산다는 겁니다. 

② 남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고 이름을 날리는 사람일 겁니다. 남에게 좋은 인상과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요셉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았습니다. 

③ 영혼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육신의 장막을 떠나면 영혼은 어디 갑니까? 내세에 고통이면 그 인생은 실패자입니다. 


인생은 반복하거나, 내 던지거나, 떨어낼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짊어지고 책임져야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1. 요셉은 오늘까지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17-19절

요셉은 언제고, 자기나 남의 일에 자기가 단정을 하거나, 결론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넌 틀렸다며 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살뿐이었습니다. 17절에서,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다" 했고, 18절에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이때 우리 같으면 "꼴 좋다" 했을 겁니다. 그때, 요셉은 19절에서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했습니다. 자기에게 절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 자기의 능력으로 여기 앉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일국의 최고위층 인사가 되었습니다. 전권을 위임 맡은 특별한 국무총리요, 전무후무하다할 만한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만하면, 사람들 앞에서 재고 빼고 광내고 할 만 합니다.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멸시하고 혼내 줄 수도 있는 자리입니다. 허나, 거드름피우거나, 자세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온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게 요셉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뭘 듣고, 약간 은혜를 받으면, 혼자 잘난 척 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다"한 바울이 요셉과 같은 차원의 사람이었습니다. 

겸손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앙인에겐 겸손이랄 것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뭘 조금 안다고 말끝마다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던 베드로도 성령받고 나서는 입을 닫았습니다. 두 손 들고 겸손하게 엎드려 기도할 때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5:5b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도 잠언 3:34에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이라는 그릇에만 담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나는 아니라고 우겨도 거만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내가 은혜를 받지 못했거나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이웃에 불평하기 전에 내 거만한 마음을 겸손의 마음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확신했습니다. 20절

20절에서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했습니다. 오늘까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내 인생을 주관하신다." "내 생명줄은 하나님께서 잡으셨고 내 앞길은 하나님께서 여신다"는 걸 믿었습니다. 

요셉은 끊임없이 고난과 역경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했다는 얘기는 읽어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모함을 당하고 피해를 봤어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갈 수 있었을까요?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갈 때에는 얼마나 절망감에 쌓였을까요? 그가 끝까지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아무리 고난이 덮쳐도 꿈을 주신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신다." "죄를 따돌리고 충성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꿈을 이뤄주신다."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없이 넘어지고 깨졌습니다. 그러나 오뚜기 같이 일어났습니다. 운이 좋았나요? 환경이 좋았나요? 누가 도와주었나요? 누구하나 신경 써 주는 이 없는 이국땅에서 무슨 가능성이 있기에 버티겠습니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잡고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이미 창세기 45:8에서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주님만 바라봤습니다. 고난이 오고 장애물을 만나 넘어져도 소망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을 사십니까?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했다" 하셨습니다. 비전도 가져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힘주심을 믿는 겁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후원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큰 빽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서 요셉은 기다렸습니다. 신앙인은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주인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으시길 바랍니다. 


3. 고통 주는 자들에게 선으로 갚았습니다. 17절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뜨게 되자 위기를 느껴 동생을 찾아와 절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라며 17절에 말했습니다.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 건데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으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아버지께서 안 계시면 복수를 당할까봐, 정말 유언인지, 꾸며냈는지, "아버지께서 자기들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며 아버지의 이름을 팔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어린 자신을 이스마엘의 상인에게 팔 때 얼마나 사정하고 울며 애원했는지 그래도 딱 잡아떼고는 야비하게 자신을 노예로 팔아먹던 그 형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 비열한 웃음을 지어가며 용서를 구걸합니다. 17절을 보니까,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애처롭기도" 하고 "용서를 믿지 못하는 것"을 보며 요셉은 안타까워 울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이 "자기는 살겠다"며 유언을 하셨다느니 어쨌느니 아버지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아버지 말을 들었습니까? 웃기는 얘기죠. 그러나 요셉은 21절에서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자기를 죽이려던 형들을 돌보는 것은 물론, 그 아들까지 책임지고 돌보아 주겠다는 겁니다. 이게 요셉의 신앙적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를 사랑함은 세리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사람의 고통은 원수 때문이 아니라, 원수를 용서 못하는 내 안에 있는 마음 때문에 일어납니다.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은 용서하지 않고 있는 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하고, 선으로 갚는 것은 "나의 육체 건강과 나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맺는 말 : 우리가 오늘까지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를 고통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원수라도 사랑하며 악을 선으로 갚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우리 위해 십자가 지시고 부활 승리하신 주님께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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