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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이 주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말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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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주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말 3:7-12)

서론 

오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제가 일부러 택한 것이 아니고 지난주에 이어서 순서가 되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 이야기 한다고 시험에 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오늘날도 논쟁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이고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니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이 다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에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이 있는데 제사와 관련된 의식법은 없어졌지만 도덕법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도덕법도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율법폐기론자입니다. 그리고 시민법도 다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국가의 형법들은 모두 구약시대의 시민법을 참고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십일조가 도덕법과 의식법 중 어느 것에 속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편이 결론을 내도 다른 편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일조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재물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보니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죗값을 치러 주신 것에 감사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면서 자신의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신자가 내는 것입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고전 9:7).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헌물을 드립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 모세의 율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야곱도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부터 근동지방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십일조가 편입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는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십일조는 규례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탄생하기 전부터 시행되다가 율법에 편입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것을 시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강력한 말씀입니다. 

Ⅰ. 십일조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이다 

하나님을 일대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헌금과 십일조를 드립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 3:7). 

하나님께서 십일조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규례’이고 이것을 떠나 불순종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열조 때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규례를 주셨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는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는 기대는 부질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축복의 보따리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십일조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전염성이 강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졌고 십일조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9).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의 죄는 하나님께서 왜 공의를 베풀지 않으시냐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막상 자신들의 죄에 관해서는 의식하지 않은 것입니다. 뻔뻔스러운 얼굴로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시겠다며 십일조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은 먼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결과도 본인이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을 보면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를 칭찬합니다. 많은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풍성한 연보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 8: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Ⅱ.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과 재물의 주인 되시고 우리는 청지기임을 인정하는 표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명과 재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것이라면 왜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까? 왜 늙고 약해져서 죽게 됩니까?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증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생명의 주인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재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고전 4:7). 

우리가 가진 어떤 것도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도 맡기시고 재물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들을 주인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이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고 일당백의 일을 해내자 청지기로 삼아 보디발의 재산을 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이 청지기이고 재물은 맡겼어도 당신은 맡기지 않았다며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청지기로서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창세기 2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이삭을 위해 며느리를 구하고자 합니다. 늙은 종에게 자신의 환도뼈 밑에 손을 넣어 맹세를 시킵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3~4). 

늙은 종은 아브라함과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아브라함의 고향인 밧단아람 혹은 하란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리브가를 만났고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청지기에게 구할 것은 주인의 뜻에 따르는 충성입니다. 

십일조는 왜 내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며 나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규례를 정하셨으니 내가 주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우리 소득의 첫 부분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열매도 첫 열매를 드리고, 육축도 첫 새끼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소득이 있으면 일단 첫 부분을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리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청지기가 주인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기가 이것에 대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강력한 단어를 사용하여 말합니다. 양수리수양관 집회에 강사로 오신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상도에서 어느 장로님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패물도 가져가고 돈도 다 가져갔답니다. 

그런데 서랍 속에 있던 십일조 봉투 안의 돈은 가져가지 않고 메모를 써 놓은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도둑이라도 하나님의 것은 차마 못 가져가겠습니다.” 그 메모를 보고 장로님이 십일조는 도둑도 손대지 않는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청지기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의 뜻에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Ⅲ. 십일조에 대한 상벌은 하나님께서 직접 집행하신다 

십일조에 대한 상벌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십니다. 여기서 ‘직접’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일조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3:10~12). 

얼마나 좋습니까? 농사를 지어도 메뚜기가 와서 다 먹어 버리면 하나도 거둘 것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메뚜기를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태풍이 불거나 자연재해로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게 되면 먹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이것도 막아주셔서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는 법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순종하여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9). 

때가 되어도 비가 오지 않고 황충이 들끓어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한 상과 벌을 물질적인 축복과 저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의 물질적인 축복은 신약시대의 영적인 축복에 대한 예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물질의 복도 물론 받거니와 영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고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영혼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하워드 휴즈라는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에비에이터’라는 영화로 알려졌는데 ‘에비에이터’는 개인적인 비행조종사를 말합니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 제작자이자 라스베가스에 호텔을 7개나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비행기를 타고 다녔고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혼자 비행한 기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병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균 공포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컵을 잡을 때도 소독한 물티슈로 감싸서 잡았고 그에게 무엇을 건네줄 때는 흰 장갑을 끼고 건네주어야 했습니다. 음식도 살균한 다음에 먹었는데 결국 그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죽었습니다. 죽을 때 그의 몸무게가 42kg이었습니다. 그가 죽고 유언장이 공개됐는데 자신의 재산을 몰몬교에 기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후손들이 유서에 대해 반박하며 재판을 하였고 결국 그 유언장이 가짜로 밝혀져서 그의 조카 22명에게 재산이 나누어졌습니다. 하워드 휴즈는 재물이 많았지만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십일조의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상벌은 하나님께서 직접 집행하십니다. 만약 국가가 상벌을 내린다면 국가 공무원들이 바빠서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벌을 받거나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상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마약사범이 미국이나 멕시코에 왜 많은지 아십니까? 마약사범은 잡히면 중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벌을 받을 줄 알면서도 계속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것은 마약사범이 걸리는 확률이 2~3%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걸리지만 않으면 큰돈을 벌게 되니까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도둑이 정말 많지만 형벌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집행하시면 100% 상과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은 영혼의 만족과 물질의 축복을 받으실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규례가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 드리는 것, 십일조를 하는 것, 기도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규례가 있습니다. 영혼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만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규례들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기 교회는 십일조를 100% 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봤더니 대답하기를 교회에 내는 사람도 있고 도둑에게 내거나 병원에 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꼭 받아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둑에게나 병원에 내지 마시고 하나님께 내시기 바랍니다. 


Ⅳ.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일조 규례를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온전한 십일조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이뤄 드리는 진정한 십일조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통해 세 가지를 이루려 하셨습니다. 

첫째, 레위인들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 18:21). 

둘째, 절기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것을 위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 14:22~23). 

셋째,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신 14:24~25). 

이처럼 오늘날도 십일조를 통해 교회에서 전임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예배와 선교에 필요한 경비를 사용하며, 구제와 장학금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사역자들도 생계가 어려우니 주중에 나가서 일을 해야 되고, 예배와 구제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는 일주일에 하루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저와 일주일 내내 같이 다녀보십시오. 아마 2주 안에 반드시 쓰러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십일조를 많이 내든지 적게 내든지 상관없이 정해진 사례를 받습니다. 저는 뇌물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주는 것은 받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공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분들에게 커피 한잔 얻어먹지 않습니다. 밥을 사주면 사줬지 얻어먹지는 않습니다. 교회 카페에서도 공짜로 먹지 않습니다. 저한테 뇌물을 주면서 부정한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은 꿈 깨십시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감사기능을 강화해서 교회 재정을 한 푼이라도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또 너무 자린고비처럼 그러지는 않습니다. 넉넉하고 풍성한 것이 좋다고 판단될 때는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그러면 십일조만 내면 되지 왜 또 건축헌금을 내라고 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십일조를 온전히 내지 못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이제 그것을 건축헌금으로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역설적인 것이 많습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3).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일조에 관한 교훈도 매우 역설적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사람은 오히려 재물이 더 넘쳐나고, 내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것도 다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이라고 끝까지 우기신다면 이렇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율법 시대에도 10%를 드렸는데 은혜의 시대에 10%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가난해서 못 내고 나중에 돈 벌면 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십원도 안 내는 사람이 십억을 내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라는 최자실 목사님의 책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십일조를 띄어 먹는 사람은 도둑놈이라는 말을 듣고 도둑놈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십일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보고 사람들이 제 주머니가 춤을 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많이 베풀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제 주머니가 춤을 춘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았습니다. 

아직까지 십일조를 하지 않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 9:6). 많이 심고 많이 거두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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