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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조건 (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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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고전 13:13)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은 행복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돈, 둘째는 명예, 셋째는 쾌락입니다. 돈은 참 소중합니다. 돈 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불행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예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씁니다. 또한 사람들은 쾌락을 좋아합니다. 쾌락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다 얻으면 과연 행복할까요? 이런 것이 행복을 주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사막의신기루와 같습니다. 그 예로, 이 세 가지를 가장 이상적으로 잘 갖춘 사람을 찾는다면 세기의 미인 마러린 먼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금세기 최고의 미인이었습니다. 최고의 인기 배우로 전 세계 남성들의 우상이었습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자기 생일에 귀빈은 한명도 초대하지 않고 비밀리에 먼로를 초대하여 기뻐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에서도 마러린 먼로를 특별히 초대해서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마러린 먼로는 인기 정상에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헐리우드 상점에 있는 사진 10장 중 8장 정도는 먼로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런 마러린 먼로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이렇게 공허함 속에 살아가던 먼로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생을 마쳤습니다. 

인기 정상에서, 부의 정상에서, 모든 것의 절정에서 살았지만,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살한 그녀의 시신 옆에는 메모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돈, 인기, 명예, 이 모든 것은 찰나적인 행복의 요소에 불과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한 손으로 손뼉을 친 인생이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한 손으로 박수가 가능하겠습니까? 허공만 휘저을 뿐입니다.“내 인생은 허공을 휘저은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라는 뜻입니다. 허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복의 조건에 대해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어디에도 돈과 명예와 향락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도리어 돈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도서 5:10)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취하고 누려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모두가 황금이었습니다. 비빈이 1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면 산천초목이 떠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어서 말하기를“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14)라고 했습니다. 부귀, 권세, 향락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첫째, 믿음이 행복의 요소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 즉 의심입니다. 의심은 내게 주어진 행복의 기회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불행의 늪입니다. 

70년대 히트곡“여고 시절”로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 이수미 씨가 우리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하나님을 섬기다가 양평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분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불쌍한 중학생 여자 아이를 양녀로 키웠습니다. 이 아이는 이수미 씨에게 처음로 입양된 것이 아니고 몇 집에서 입양을 했다가 버린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늘 불안해하며 이수미 씨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또 나를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신이었습니다. 

이수미 씨가 “내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나를 엄마라고 불러봐.”라고 하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눈치만 보고 불안해하며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수미 씨는 통이 큰 치마를 입고 그 아이를 치마 속에 넣었다가 밖으로 밀어내면서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해도 아이는 마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이수미 씨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저 아이가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저 아이가 내 마음을 깨닫고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교회에 가서 전날처럼 새벽기도를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그 아이가 뛰어나오더니 “엄마!”라고 부르며 품에 안겼습니다. 깜짝 놀라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밤에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엄마가 교회에서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게 해달라고 울며 안타깝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 아이는 이수미 씨의 사랑 속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결혼을 했습니다. 

이수미 씨의 사랑을 믿지 못했을 때, 이 아이는 또 언제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사랑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불안한 마음 즉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떨쳐버리고 사랑을 믿었을 때부터 그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 사이에서도 불신은 공연한 불안과 불행을 불러 오듯,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더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각자가 섬기는 신도 많고 교주도 많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종교의 교주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교주는 죽고, 그가 남긴 사상이나 철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윤리나 도덕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된 생명은 없습니다. 교주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무덤에서 살아나신 후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9~11)

이처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이 세상을 떠날 때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하시기를“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하셨습니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드리면“보았느냐?”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을 믿습니다. 우리나라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건진 이순신 장군을 믿습니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들을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람이 죽을 때에 대략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던 사람은 죽음직전 아주 불안해합니다. 무엇엔가 가기 싫은 곳을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평안한 가운데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풍파 많은 세상을 이기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없는 것을 있게 합니다. 이 믿음은 이성과 합리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삶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고 하셨습니다. 

2010년 5월 3일자 조선일보에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적 보급로 끊고 후방차단...성공확률 5000분의 1 뚫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은 멕아더 장군에 의해 감행된“세기의 도박”으로 불리는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멕아더 장군이 계획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미 합참과 극동군 해군본부도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만조의 차이가 9m에 달하기 때문에 이 작전에서의 성공 확률은 1/5,000이라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이 길 왜에 다른 대안이 없음을 45분간의 브리핑을 통해 지휘관들을 설득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한민국을 구원하시기 위해 1/5,000확률이 아니라 1/50,000확률이라 할지라도 그 1/50,000확률을 적중시키시리라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이 작전이 적중되어 6.25전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맥아더 장군의 믿음이 주는 지혜요, 용기요, 결단이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에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950년 9월 29일 서울을 수복한 기념 연설에서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우리부대는 옛 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거리는 잔학무도한 공산주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며 시민들을 다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되찾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이런 하나님을 위해 나와 함께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합시다.”라고 했습니다.<1993년, 일신서적 멕아더 회고록 202~203쪽>

맥아더 장군의 요청에 따라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섰고, 장병들은 흙으로 얼룩진 전투모를 벗고 함께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주기도문이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의 두 손을 꼭 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하나님이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보내주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전선에서 어려울 때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요한복음 11:25을 암송하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전장에서도 매일 성경 한 장 이상씩을 꼭 읽었으며, 그가 참전한 작전 중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꼽히는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하면서도 매일 밤 함상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맥아더는 52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며 고백하기를“하나님의 게시에 따라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노병은 물러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 힘으로 2차 세계대전을 치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전쟁을 했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게시에 의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맥아더 장군의 믿음의 덕을 크게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6.25 전쟁에 패했더라면 지금 우리는 북한주민처럼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한 개인에게 나타난 능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남자 헬렌 켈러로 불리는 실로암 안과 병원장 김선태 목사(71)가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구걸하며 살았던 소경거지였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2007년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선태 목사는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입니다. ‘남자 헬렌 켈러’ 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절망을 헤쳐 온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숨 쉬는 드라마’로 헬렌 켈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뚝섬에서 놀고 있었는데 거기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함께 놀던 8명 중 7명이 즉사했고, 김 목사만 살아남았으나 파편을 맞아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10살 때였습니다. 얼마 후 부모님마저 폭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린 그는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다가 구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친척집을 나와서 거지가 되었습니다. 엄동설한에 밖에서 잠을 자다가 한쪽 다리가 동상에 걸려 썩기도 했고, 앞을 보지 못하므로 상한 음식을 얻어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번은 찬바람을 피해 나무를 가득 쌓은 남의 집 창고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창고에 쌓아놓았던 나무는 옻나무였습니다. 자고나자 온몸에 옻이 올라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평생 그의 은인이 된 한 할머니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간호를 해줬습니다. 기독교 신자였던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성직자의 삶을 꿈꾸게 된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 할머니가 말하기를“나는 돈은 없지만 일평생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대신 너는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다오.”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아원에서 살면서도 그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박사 학위 3개를 따는 꿈을 꾸며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박사 학위가 3개였던 헬렌 켈러처럼 가난하고 앞 못 보는 이들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군사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편된 문교부 정책에 의해 맹인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가 대학에 가려면 국가고시를 보아야 했는데, 당시에는 맹인은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문교부를 32번이나 찾아가 매달렸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는 공부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심을 했습니다. 무작정 문교부 장학과로 쳐들어가서 막대기를 휘두르며 항의를 하는데, 그때 마침 신문기자들이 와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기자들이 소경인 그를 장관실로 데려갔습니다. 결국 문교부 장관은 그에게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특전을 주었고, 그는 시험을 거쳐 숭실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전공했고, 미국 맥코믹 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훗날 명예 철학박사 학위와 명예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헬렌 켈러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마친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점자 성경과 점자 찬송가를 소개했습니다. 또 앞을 못 보는 젊은이 1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1986년에는 재계의 지원을 받아 서울 등촌동에 실로암안과 병원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개안수술을 받은 이가 3만 명이 넘었습니다. 또 실명 위기에 처한 35만 명에게 무료 안과 진료를 실시했습니다. 최근에는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안과 시설을 갖추고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김선태 목사의 가슴에 간직한 성경 구절은“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요한일서 5장 4절에“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 위안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2. 소망이 행복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요? 인간 최대의 난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농촌운동의 선구자 유태영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북 임실의 가난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만학도로 서울에 올라와서 구두닦이를 하며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 농촌의 가난이 너무도 안타까워 농촌 부흥을 꿈꾸며 세계 제일의 낙농 국인 덴마크에 가서 농업을 배우기 위한 유학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때마다 늘 ‘덴마크에 유학하게 해주세요.’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덴마크에 유학하기 위해 무작정 덴마크 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를 몰라 봉투에‘프레드릭 9세 국왕, 코펜하겐, 덴마크’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40일 후에 놀랍게도 덴마크 국왕 보좌관과 내무부로부터 덴마크 대학의 입학 허가장과 왕복 비행기 티켓이 날아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덴마크에서 공부를 한 후 이스라엘에까지 가서 농업을 공부하고 귀국해 새마을운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꿈을 품고 그 꿈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라”(롬 4:18)고 말씀하십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희망도 꿈도 꿀 수 없는, 바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꿈을 꾸라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 행복합니다. 꿈을 위해 땀 흘리는 과정은 또 다른 행복을 줍니다.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땐 또 다른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이 땅의 것만 아닙니다. 이 땅의 것은 모든 것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소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만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셨습니다.“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린도후서 5:1)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 박사는 임종이 가까워오자 곁에서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왜 우느냐?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죽음은 천국의 현관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할렐루야 찬양을 해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는 이화여대생 천명이 넘는 대형 합창단들이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곧 영원한 소망을 지닌 사람의 모습니다. 

3. 사랑이 행복의 요소입니다. 

동물은 먹이를 먹고 살지만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도 희망도 소중하지만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사람이 외로워합니까? 왜 인생을 포기하려 합니까? 단순히 병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사랑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사랑에도 가짜와 진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 즉 육체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잘 변합니다. 육체적 사랑은 조건적 사랑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났다가 헤어지며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대중가요에도“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육체적 사랑은 결국 눈물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조건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을 땐 사랑했는데 돈 떨어지고 나면 버리는 사랑입니다. 젊고 예뻤을 땐 사랑했는데 늙고 병들면 버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가짜입니다. 가짜의 특징은 기대를 갖게 하다가 실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고 복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사랑은 무엇입니까? 죄지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끝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하셨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입은 사람은 참된 행복, 영원한 행복인 하늘나라의 행복을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여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탈선하여 다른 여자와 살고 있고, 그녀는 파출부로 힘겹게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하는 말이 “시골에 홀로 계신 시어머니가 병들어 자리에 누워 계시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다만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돌려보냈습니다. 며칠 후 그 여자 집사님이 다시 찾아와서 말하기를“기도할수록 성령님은 시어머니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양심이 괴로운 것보다 고생이 되더라도 가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시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집사님을 떠나보내면서 목사님은 독백하기를“아, 바보 같은 여인이여! 하지만 당신은 진정한 자유자요, 승리자로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참 사랑이란 받기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수고하며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데살로니가전서 1:3)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희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젊은 애기 엄마가 밤잠을 설치며 애기를 키우면서도 마냥 행복해 합니다. 이처럼 참 사랑은 수고하며 희생하며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희생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할 사람이 우리들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변합니다.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농부의 수고는 다 헛된 것이 되고 말 듯, 참된 행복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것을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믿음입니다. 

인간최대의 난제인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갖게 되는 절대적 소망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세상의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 세상의 것과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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