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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 (계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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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 (계 4:10-11) 
 
 
❚면류관을 사모하라

오늘 설교는 지난 한 주간 진행된 특별새벽기도회의 결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가을부흥사경회를 준비하는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면류관을 사모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우리 효자교회 성도들은 다섯 가지 면류관 즉 ‘지혜로운 자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과 ‘기쁨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과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아야 하고, 효자교회 목회자와 중직자, 모든 지도자들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지요?

이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앞서 우리가 받은 모든 면류관을 마지막에는 다 벗어서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자는 뜻입니다. 설교 후에 부를 찬송이 찬송가 25장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도 바로 이 찬송가 25장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 이미 다 알고 계시지요?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 저 천사 기쁜 노래가 온 땅에 퍼지네
내 혼아 깨어서 주 찬송하여라 온 백성 죄를 속하신 만왕의 왕일세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위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 면류관을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의 썩을 면류관,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말 영광을 사모하지 말고 영원한 상급, 썩지 않을 면류관을 사모하고, 그 면류관을 상급으로 다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요? 우리가 받은 그 모든 면류관을 스스로 벗어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대신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존귀, 모든 영광, 모든 찬양 주님만 홀로 받으시옵소서! 이게 바로 우리가 맨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면류관을 내가 차지하려는 사람들

어느 목사님이 천국에 갔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보니 주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천국에 온 성도들을 맞이하고 계시더랍니다. 헌데 황공하게도 주님은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하고 안아주고 환영해 주시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해주시던 주님이 그 목사님이 앞에 딱 서니까 이상하게도 자리에서 안 일어나시고 그대로 앉아 목사님을 맞이하더라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주님, 너무하십니다. 제가 그래도 세상 있을 때 주님 위해 충성하고 일평생 목회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왜 다른 평신도들은 다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해 주시고 저만 자리에 앉아 맞이하십니까? 섭섭합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모르는 소리 마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네가 내 보좌 대신 차지할까봐 무서워서 못 일어나는 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분 표정을 보니 지금 굉장히 심각한데 그냥 웃으라고 한 유머입니다. 

그런데 이 우스갯소리에 뼈가 있습니다. 그만큼 목회자에게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차지하려는 유혹이 많다는 뜻이지요. 목회자가 하나님 일을 한다면서 실상은 하나님 받으실 영광을 대신 받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주님만 받으셔야 할 영광을 대신 차지하는 일이 많다는 말이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처럼 웃긴 웃었는데 웃고 나니 뒷맛이 왠지 씁쓸해요. 그러면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비록 농담이지만 나는 혹시 목회하면서 하나님 받으실 영광을 내가 대신 받은 적이 없는지?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셔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주님 받으실 영광을 내가 대신 받고 싶어 한 적이 없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디 목회자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대신 받은 적이 없었나요? 말로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실상은 내 만족이나 내 영광을 위해, 내가 칭찬 받고 인정받으려는 태도로 한 적은 없었나요? 말씀의 거울 앞에 겸허하게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봅시다. 10절과 11절을 함께 읽습니다.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 가서 본 환상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환상에서 사도 요한은 천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맨 먼저, 여기서 이십사 장로란 누구일까요? 이십사 장로란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모든 성도들을 뜻합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성도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입니다. 또 신약을 대표하는 성도는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그래서 구약 대표 열둘과 신약 대표 열둘을 합해 모두 24명의 장로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즉 신구약을 통틀어 모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성도들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 이십사 장로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단 헌법에 장로님들은 성도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뽑는 분들입니다. 마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로 보내듯이 우리 교인들을 대표하는 장로님들을 뽑아 당회로 보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이십사 장로들은 바로 신구약을 대표하며, 나아가 우리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는 분들이라 이겁니다.

다음으로, 이 이십사 장로가 누구 앞에 서있습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섭니다. 이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보는 환상은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을 대표해 이 분들이 주님의 보좌 앞에 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십사 장로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 성도들의 대표인 이십사 장로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마지막 때 보좌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일 먼저 보좌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엎드린다는 말은 굴복하고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뻣뻣하게 고개 들고 서는 것은 당신과 내가 동등한 위치라는 뜻이지만 그 앞에 엎드린다는 말은 완전히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고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맨 먼저 주님 앞에 엎드려 완전히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완전히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가톨릭에서 사제, 즉 신부로 서품을 받을 때는 십자가 앞에 완전히 큰 대(大) 자로 쫙 엎드리는 예식을 합니다. 

사제로서 온전히 주님께 복종하고 굴복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노회에서 거행하는 목사 안수식 가보셨습니까? 이런 순서가 없어요. 그냥 일반 예식과 똑같습니다. 너무 덤덤하고 감격이 없어요. 저는 이게 제일 아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회에서는 이번에 완전히 순서를 바꾸어 선배 목사님이 후배 목사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도 하고 순서를 아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려고 애썼다고 하는데 이것도 좋지만 저는 좀 순서 중에 십자가 앞에 납작 엎드리는 순서가 들어있으면 좋겠어요. 비록 형식처럼 보여도 얼마나 좋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유머처럼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영광 대신 차지하려는 유혹이 너무 많은데 처음 목사 안수 받을 때 이렇게 하면 좀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 발아래 엎드려야 합니다. 겸손히 나를 낮추고 그분께 절대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맨 밑바닥까지 나를 낮춰야 그 밑바닥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 낮아지고, 내가 안 내려가면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말씀 꼭 기억하고 언제나 엎드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납작 엎드리고, 날마다 기도로 엎드리고 또 엎드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둘째, 이렇게 엎드린 다음에 이십사 장로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합니다. 그리고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찬양의 내용이 11절에 나오지요?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우리의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경배와 찬양의 내용은 이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처럼 오직 하나님이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내용입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모든 존귀 영광 홀로 받으실만한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서 우리가 할 일은 찬양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설교가 필요할까요? 아니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예수님을 직접 대면해 말씀 듣는데 목사의 설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천국 가면 분명히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봉사도 필요 없습니다. 천사들이 다 수종 듭니다. 전도도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분들뿐이니까요 그런데 천국에서 찬양만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본문에서 이십사 장로가 한 것처럼 천군천사와 함께 ‘세세토록, 영원 무궁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저는 그런 꿈을 꿉니다. 제가 비록 천국 가면 실업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좋다. 천국에서 목회하고 설교하고 심방은 안 하지만 저도 천국천사와 함께 영원히 내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고 찬양하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나보다 먼저 천국 가신 부모님 가족과 함께, 그리고 먼저 가신 성도님들과 함께 주님을 행복하게 찬양할 그날을 꿈꾸며 기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이십사 장로가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한 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특새를 하며 사모한 ‘지혜로운 자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과 ‘기쁨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과 ‘썩지 않을 면류관’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까지 내가 받은 모든 면류관, 내가 천국에서 머리에 쓴 모든 면류관을 내 스스로 벗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천국에서 마지막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이 모든 면류관은 다 상급입니다. 그런데 엄연히 구원과 상급은 다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값없는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급은 우리가 노력해고 애써야 얻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기만 하면 다 구원 받습니다. 은혜로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달랑 구원만 받아 내 한 몸 겨우 천국에 턱걸이로 들어가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상급으로 찬란한 면류관, 자랑스러운 면류관을 쓰는 성도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 싸우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움에도 믿음을 꿋꿋하게 지키며 끝까지 잘 달려가면 상급으로 면류관 받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하면 상급으로 면류관 받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 봉사하고 섬기는 분들, 이 모든 노력과 충성의 대가로 상급인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애써서 받은 면류관, 우리가 그토록 노력해서 받은 상급을 왜 마지막에는 다 주님 앞에 벗어드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깝잖아요? 억울하잖아요? 아닙니다. 비록 내가 노력하고 수고해서 받은 면류관이지만 그조차도 다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세요. 이 모든 면류관, 그 모든 상급은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할 만하지만 주님 앞에는 하나도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왜요? 결국은 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달려온 그 믿음의 삶이 어디 내 힘으로 달려온 것이던가요? 내가 전도한 사람이 어디 주님이 그 마음 안 열어주셨으면 가능했을까요? 봉사나 충성 다 내 힘으로 했던가요? 주님이 열심 주시고 건강 허락해주지 않으셨다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요? 그러니 우리는 내가 받은 상급, 내가 노력해 얻은 면류관이라 해도 마지막에는 다 스스로 벗어서 “다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주님 받으시옵소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십사 장로처럼 우리가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내가 받은 모든 면류관을 주님께 다 벗어드리는 순간, 우리 할 일은 다 끝이 나는 것입니다.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구원 받고 천국만 가면 우리 할 일은 다 끝난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오늘 말씀처럼 천국 가서도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 주님께 바치는 일을 해야 비로소 내 믿음의 삶, 인생의 달리기가 온전히 마치게 되고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날을 꿈꾸며 사모하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벗을 면류관

중국에 가면 유명한 명승지인 ‘장가계’(張家界)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여기 가본 분이 있을 텐데 엄청난 험산준령에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절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대단한 곳입니다. 그런데 가이드 말이 왜 이곳을 ‘장가계’라 부르게 되었는가 하니 항우를 무찌르고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 유방에게 세 사람의 영웅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책사 장량(혹은 장자방)의 성을 딴 것이랍니다. 장가, 즉 장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사는 지역이라는 뜻에서 ‘장가계’라 불렀다는 겁니다. 

장량은 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으로 왕이 많은 땅과 관직을 내리는데도 사양하고 이곳 험산준령에 숨어 살았습니다. 나중에 한 고조 유방은 세 영웅 중 한신과 소하를 죽입니다. 권력이라는 게 다 그렇듯 일이 끝나니 토사구팽을 당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 이 험산준령에 숨은 장량만은 죽임을 면하고 살아남은 데서 유래한 지명이 바로 장가계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유방의 총사령관으로 군사를 지휘한 영웅 한신 장군은 왜 죽임을 당했는가? 전쟁이 한창 진행될 때 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되어 도움이 절실한데 한신은 편지를 보내 자신을 제나라 왕, 제왕으로 책봉해주면 돕겠다고 통보합니다. 도움이 절박할 때니 유방은 하는 수 없이 한신을 제왕으로 책봉하는데 속으로 얼마나 괘씸했겠어요? 나중에 전쟁이 다 끝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한신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큰 상을 받지만 결국 괘씸죄에 의해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죽임을 당하게 된 한신이 남긴 유명한 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입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니 사냥개는 쓸모가 없어져 삶아먹는다는 뜻이지요. 요즘도 이 말 참 많이들 쓰지요? ‘팽’ 당해서 억울한 사람들 말입니다. 물론 한신도 억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 달리 생각해봅니다. 한신이 정말 왕 앞에서 납작 엎드렸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왕으로 봉해달라고 하지 말고 “모든 영광은 왕이 받으소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장량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지요. 그렇습니다. 부하 장수가 할 일은 모든 영광을 주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목숨 걸고 싸워 큰 공을 세웠다 해도 마지막 모든 영광은 내가 아닌 왕이 받아야 합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 하지 말고 오히려 내 왕관을 벗어 드렸어야지요. 이걸 지켰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한신은 편안히 죽을 때까지 부귀와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지막으로 내 면류관을 벗어야 합니다. 그 모든 면류관, 비록 내가 노력하고 수고해 얻은 것이지만 다 벗어 주님께 드리고 주님만 영광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히려 나는 더 큰 영광을 받고 더 큰 상급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가을부흥사경회, 드디어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저녁 7:30부터 시작인데 20분 전부터 찬양하니까 일찍들 오셔서 찬양으로 마음을 열고 은혜 받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 은혜를 사모하며 이 금 자리, 앞자리부터 채워 앉으시고 경배와 찬양으로 미리 우리 마음을 여시고, 강사 고만호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고 사모하며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면류관 영광 홀로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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