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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 13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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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 136:1-26)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켜야 하는 절기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하루 세끼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농촌에 사는 사람만 쌀밥 먹고, 우리는 굶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 추수감사절은 세상의 누구나 지켜야 하는 감사절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매일의 감사여야 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지만, 오늘 지키는 추수감사절이 우리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감사가 될 것입니다. 

한 영상을 보신 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로페차이 동영상 자료실 516번 “감사가 곧 행복입니다.”

17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작가 아이작 월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심령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이것,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뱀의 이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말을 깊이 생각해보면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즐겁고 복된 천국을 누리지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독사에게 물려죽는 고통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감사는 천국이요, 감사가 없다면 그는 지옥을 맛볼 수도 있다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감사를 잉태하면 또 다시 감사를 낳게 되지만, 풍족하여도 상대적인 비교와 불만을 가지고 불평을 잉태하면 마침내 불평을 낳게 됩니다. 한 번의 원망은 계속해서 더 큰 원망을 불러오고, 마침내 하나님을 향하여 멸시하며 반역하는 데까지 이르는 엄청난 원망과 불평으로 번져나게 됩니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과 믿음의 크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진 것 때문에, 소유에 비례하는 감사라고 하면 다시 소유에 비례하는 불평을 낳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비례합니다. 

우리의 감사가 어떤 감사가 되어야 합니까? 좋은 집, 좋은 사람들, 풍족한 생활, 좋은 인간관계, 사회에서 인정받고, 좋은 위치에서 넉넉하게 살아가면서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요, 불신자들도 이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는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모든 죄악을 대속해주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끝나지 않으면 중간평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제가 어떤 일,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진행하는 중에는 잘 했다 잘못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항상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고 있습니다. 

강원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문선재목사님이 계십니다. 목사님이 무슨 국립대 총장이야 하실 것인데, 목사님이 국립대 총장을 지내셨습니다. 강원대 교수협의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 회장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무조건 잡아다 자기의 잘못을 이실직고하라고 두들겨 팼습니다. 사표를 받아내기 위한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쓰는 조서에 무조건 도장을 찍을 터이니, 때리지만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교수직에 물러나고 강원도 성시화운동에 대한 비전을 접고 문선재교수는 장로회신학대학의 학생이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문선재에게는 해직교수라는 이름이 붙어다닙니다. 그에게 직장을 읽고, 꿈을 접어야 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해직교수라는 딱지가 붙어 다니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보 쌀이 떨어졌소.”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막막합니다. 아내의 말에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이제 돌이 지난 막내아이가 찬방에서 지내다보니 동상에 걸립니다. 그런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 저에게 양식을 보내주시고, 동상 걸린 내 딸을 고쳐주시옵소서” 이런 처절한 기도, 금식기도 아닌 굶식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선배 한 사람을 보내어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때는 문선재는 기도의 위력을 실감하였습니다.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기 위하여 장로회신학대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셨고, 연세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그가 한남대학의 교수로 들어갔다고 다시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남대학에서도 해직되었습니다. 한남대학교수로 다시 복직하게 되었고, 정권이 바뀌면서 강원대학교에 복직하게 되었고, 총장 직선 선거에 당당히 총장에 선임되어 목사님이 국립대학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해직교수, 비강원지역 출신, 비서울대출신, 거기에 목사출신, 이런 사람이 강원대 총장에 선임되었습니다. 강원대에 의대 설립을 공약으로 내어 걸었는데, 공약을 이행하라고 비난이 쏟아집니다. 마침내 김영삼대통령의 지원과 이영덕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로 의대를 설립하였습니다. 목사님으로 총장직을 수행하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더라 하여 강원도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은혜 중에 총장을 마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목사 총장은 어떤 문제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고 사무엘의 말을 신뢰했듯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문총장의 말과 행동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총장 4년의 임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년 후에 예일신학대학원 대학교의 총장이 되셨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나는 안다. 이 드라마를 쓰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저 배역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감사의 나 날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과 QT를 나누고 말씀묵상 수련회를 통하여 간절한 신앙고백이나 간증문을 받고 감격할 때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15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강춘실권사님이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제목은 내가 만난 광야에서의 감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권사님이 연약한 중에도 중보기도 사역을 이끌어오시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만난 광야에서의 감사”

“내가 만난 광야는 비로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요, 
고독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 곳
그래서 하나님께 대롱대롱 매달려 산 4년 반의 세월이었습니다.

광야는 내 실력이 필요 없는 곳이요, 
내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에벤에셀하여 주신 은혜가 기적이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하시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나,
기대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앞날에 대한 염려로 수없이 나를 겁주는 두려움이 창궐한 나날들이었지만
지금은 믿음으로 일어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광야의 체험의 시간을 즐기겠습니다.
나에게 있는 불순물이 모두 뽑아내지고 모난 부분이 둥글어지며
전무후무하게 성숙하게 만들어 줄 위대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견뎌야만 하는 것,
이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교정의 시간,
내 인생에 가장 특별하고 유익한 시간,
고난을 당해야 믿음이 드러나는 향기의 시간이고,날마다 이겨서 하나님의 시간까지 이르면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우겠으니 네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 
네가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나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지금 
나는 어떤 아무런 결정도 안 된 상태에서조차 
내 모든 염려, 조바심을 주님께 맡기며
나와 동행하시며 확신을 주신 체험들을 통해
주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응답으로 받고 
기쁨에 찬 나를 봅니다.
여리고성은 끄떡도 안하는데 성이 무너졌음을 선포하며 그 성을 잠잠히 기도하며 돌듯이
믿음으로 전능한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네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라 
너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 
네가 질병의 광야에서 수고한 보람이 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식이다. 
내가 너를 책망할 때마다 더욱 생각이 나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님의 말씀에 
감사의 눈물만 흐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관대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나를 질병의 풍랑이 이는 바다로 내모심은 
깨뜨리고 또 부스더라도 당신의 것으로 훈련시켜 가시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벅찬 감동의 쓰나미가 내 영혼 깊은데서 일어납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는 말씀에도 감사가 넘칩니다.
비록 손질 당함을 받아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하여
열매를 더 많이 맺어서 주님의 참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기대를 품게 하시니 이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 광야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주님만 바라보자고 하다가도 
세상의 염려, 걱정의 사나운 바람을 또 맞게 되면
여지없이 다시금 무너지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주님과 동행하라는 찬송으로 
날마다 전쟁 중에 엎어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나를 승리로 이끌어 주실 주님께 먼저 감사하며 나아갑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와 사랑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성품을 잘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찬양과 감사의 이유에 대한 서론이 1-3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찬양을 독려하는 도입부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아도 오늘의 본문 시136편만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집중하여 노래하는 성경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가장 좋은 시가 바로 시편136편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그리고 실제 생활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의 표준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하면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으시고, 영적으로 온전하시고, 실제생활에 있어서 가장 좋고 아름답고 진실함의 표준이 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사랑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라. 

오늘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4-9)

이 온 우주가 얼마나 넓습니까? 과학자들도 상상만 하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150억 광년의 거리가 된다고 짐작합니다. 빛이 똑똑 하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빛이 1광년, 일 년 동안에 가는 거리가 약 9조 5천억 Km라고 하는데, 우주는 150억 광년의 거리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개의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10의 28승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수치는 천문학적인 수이지, 10의 28승이라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주 공간에 지구라는 별을 만들어 매달아 놓으시고, 우리 인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놓아서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오늘 살아 있어 이렇게 마음껏 숨쉬고, 움직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게 건강주셨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3. 이스라엘에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의 지나온 한국의 역사를 보면, 지정학적으로 중국이라는 대국, 러시아라는 대국, 일본이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국내 총생산 G1이 미국이고, G2의 나라가 중국이고 G3가 일본입니다. 현재 우리는 나라는 그 G2와 G3 사이에 끼어 있으니, 죽고 살기로 경쟁하면서 장차 G5 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멀리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있다면 국가 경쟁력이 생기지 않고, 오늘과 같은 경제적인 번영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잘 사는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더불어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어가게 하시고, 세계원조국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독립을 주시고 경제적인 번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4.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3-26)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영, 사탄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피 값을 주시고 살리셨습니다. 죄악에 매어 포로되어 살던 죄의 종들을 건지시려고 독생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1988. 7월 서울 올림픽을 며칠 앞둔 때에 47세의 젊은 목사가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어 의식이 사라지고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가고 의사는 얼굴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목사는 너무나 절망스러워 “하나님 죽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목사가 중풍에 걸려서야.”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하나님, 내일 눈 뜨기 전에 나를 데려가 주세요,” 눈을 뜨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죽게 해 주세요,”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 듣지 않으셨고, 교회에서는 24시간 목사님의 회복을 위해 릴레이기도를 하고, 장로님들은 조를 짜서 병원 당번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장로님들이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켰습니다. 목사님은 물리 치료를 거부합니다. “나는 죽을 건데 물리치료는 무슨...” 그러나 장로님이 “평소에는 같이 걷지 못했으니 병원에서라도 한번 같이 걸어 보십시다.” 하면서 목사님을 일으켜 세웁니다. 목사님이 그 일그러진 얼굴과 반쪽 몸으로 혈기를 부리면 얼마나 무서운지 장로님이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장로님들이 거의 강제로 걷기를 시키고, 걸음마 연습을 하고, 드디어 30m 걸었을 때, 장로님들이 “우리 목사님 만세, 만세”를 외쳤고, 어느 날 목사님이 “기도합시다,” 말문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장로님들이 “할렐루야!” 하면서 박수하였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일주일 기도한 후에 일어서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야 이놈아, 너는 왜 감사할 줄 모르냐?” 그때 목사님이 “이 몸으로 감사는 무슨 감사.. ” 하는데 “아직 몸이 반쪽이 성하지 않으냐?” 그때, 감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몸을 반쪽이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원망이나 불평은 하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생명 다해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리면서 병을 고침 받아 17년간 더 살면서 서울 강북제일교를 크게 부흥시키며, 성전을 크게 건축하고 돌아가신 윤덕수 목사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아파보지 않고, 몸져눕지 않고, 잠을 못자본 적도 없고, 소화가 되지 않아 약을 먹은 적도 없고, 어떤 사람처럼 스트레스 받아 우울해 본 적도 없고, 아내하고 싸운 적도 없고, 장로님들과 다툰 적도 없고, 좋은 동역자에 , 좋은 장로님에, 좋은 교인들, 좋은 가정, 다 좋아서 훨씬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프고 난 후에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여 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1차원적인 감사는 조건부의 감사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거나 많이 가진 것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2차원의 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받은 것이 있어 받는 것 중에서 일부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3차원 감사는 무조건의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병들었어도, 실패하였어도,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몰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감사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뒷북을 치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무엇에든지 성공하려면 앞북을 치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르는 한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도 뒤늦게 치는 뒷북감사는 그 효력이 약하다고 합니다. 앞북 감사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복음성가를 잘 부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복음성가 중에 습3:17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스바냐3:17의 말씀을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가장 귀한 선물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구원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속해주신 그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면서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우리 사람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보시면서 천군천사들 앞에서 흐믓하게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꾸준히 잠잠히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에 은혜가 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이 복음성가 한 번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라"

우리는 우리는 구원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나를 능력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이 복음성가 한 번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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