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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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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 기독교사에 염학섭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은 복입니다. 

(愛恩 염학섭 목사님은 1897. 2. 1-1970. 9. 13. 독립투사로 일평생 충성, 희생, 겸허, 청빈이라는 신앙생활의 4대 비결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명 바쳐 목양하신 영적 거장이셨다. 
다음은 그가 남긴 ‘은총의 회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염 목사님이 함경도 북청군 이곡면 삼기교회에서 풍산군 능귀면 양평교회로 옮겨 가실 때의 일입니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삼기교회 교우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모임을 조촐하게 가졌습니다. 그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김유경이라는 한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4남 3녀의 자식들과 시어머니, 시할머니까지 계신 대가족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송별금을 준비해서 참석해야 예의라고 생각한 그 여인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참석을 못했습니다. 

떠나기 이틀 전 그 여인은 ‘찹쌀 두 되’를 보자기에 싸 가지고 전도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전도사님, 이교회를 떠나시는 날 꼭 이 쌀로 밥을 지어 잡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이 가져온 쌀 두 되는 다른 집의 쌀 두 가마니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고 전도사님은 감격했습니다. 어떻게 쌀을 구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떠나는 날을 이틀간 연기해서 그 내력(來歷)을 알아보았습니다. 

쌀 큰 한 되에 25전 하던 당시에 그녀는 자기 머리를 깎아서 받은 1원 중 50전을 투자하여 전도사님에게 줄 쌀 두 되를 샀고, 나머지 돈으로 식구들 양식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여인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머리칼을 팔아 마련한 쌀 두 되의 내력을 전해들은 전도사님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상의한 끝에 그 쌀을 가치있게 사용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선 쌀 두 되를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아서 50전을 받고 우리 집안 식구들이 얼마씩 낸 돈을 합쳐서 모두 3원을 마련하였습니다. 

염전도사님은 그 돈으로 새로 부임해 간 양평교회에서 ‘백미 두 되 적선 전도회’란 이름을 붙여 가난한 과부를 기념하는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녀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양평교회 교우들에게 그녀의 갸륵한 마음씨를 전하고 그 돈 3원으로 교회의 경제력을 굳건하게 하자고 제안하였더니 교우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강아지 열 마리를 사서 교우들이 각자 분담하여 6개월을 키웠습니다. 다음에는 개를 판 돈으로 돼지새끼 열 마리를 사서 1년간 키웠습니다. 다시 돼지를 판 돈으로 송아지를 구입하여 2년간 길렀습니다. 소를 판 돈을 3년간 불렸더니 거액의 돈이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금융조합에 만여평 토지를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갚지 못하여 매각하는 일이 있었는데 조합과 토지주인과 합의하여 교회가 그 땅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있는 돈을 지불하고 나머지 잔액은 해마다 갚는다는 조건으로 계약이 성립되어 토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 남녀 교우들이 합심 단결하여 그 토지에서 농사지어 나온 돈으로 해마다 빚을 갚아 8년이 지난 후에는 남은 땅값과 그 동안의 이자까지도 다 갚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만여 평 땅이 완전히 교회 소유가 되었습니다.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그 지방에 대규모의 허천강 수력전기 댐 공사가 시작되어 땅값이 갑자기 5배 이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1만여 평의 땅을 비싸게 팔아서 다시 3만여 평의 싼 땅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남녀 교역자 주택과 정미소를 지었습니다. 땅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도 교회재정이 풍족히 유지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난했던 그 과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여인은 항상 기도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항상 그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그 과부의 집에 마침내 축복이 임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계에서 열 식구가 근근히 연명하던 그녀의 집안이 내가 떠나고 3년 뒤에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집에 생전의 남편이 남겨 준 유일한 재산인 1정보 가량의 돌산이 있었는데 쓸모없다고 생각한 돌산이 변해 옥토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쓸모 있는 산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해마다 홍수 때면 그 마을의 논밭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함경남도 도청 토목과에서 나와 대규모의 제방공사를 시작했는데 그 해에는 공사에 필요한 돌을 그녀의 돌산을 깨뜨려 사용한 것입니다. 돌이 모두 제거되자 밑에서 나온 땅은 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옥토였습니다. 

돌 값은 돌 값대로 받고 밑에서 나온 옥토는 옥토대로 소유하게 되어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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