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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전도자가 받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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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교회 구일옥 장로는 1980년 10월 교회에 출석하게 되어 학습과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 교사(중등부)와 서리집사, 장립집사 그리고 장로에 이르는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교회에 나온 지 3년 후인 1983년 4월에 현재 최준옥 집사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다합니다. 

최준옥 집사는 은혜를 입고, 그동안의 타성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생활로 변하면서 교회 봉사에 마음을 쏟게 되었는데 최 집사는 부산에 계시는 부모 형제를 향하여 영적인 눈이 열리고, 그들을 전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합니다. 

최 집사는 남편 구 장로가 장남(2남 3녀의 맏이)이면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사는 것도 불효이지만, 그보다도 더 큰 불효는 부모님을 전도하지 아니함으로 그 분들을 지옥에 가도록 그냥 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최 집사의 시부모와 형제들은 이미 불교신앙에 깊이 빠져있는 처지였고, 심지어 서울에서 아들이 보내주는 생활비 중에 일부를 부처 앞에 바칠 정도였습니다. 

평소 부자지간의 관계는 좋았지마는 이들 부부의 전도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부모가 예수 신앙을 거절하는 큰 이유는, 개종하면 오랫동안 절에 같이 다니면서 사귄 친구들을 다 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에 가면 정말 평생에 떨어지거나 이별이 없는 좋은 친구가 있는데 그 분이 예수라고 전도하였으나 결과는 실망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6년 추석 때 부모님께 예를 표하기 위하여 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그 당시 시아버지는 67세였고, 시어머니는 65세였습니다. 그때 최 집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큰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최 집사는 부모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100일간 매일 아침 식사를 금식하고, 점심때까지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서원의 기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곧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서울을 몇번 다녀간 시동생에 의하여 발각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부산의 부모에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소식을 들은 시누이들까지도 부모님에게 “서울 큰 며느리를 너무 고생시키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 예수 믿으세요.”라고 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구 장로 부부는 해마다 아버지 생일에는 부산에 내려가서 부모님께 예를 드리고 형제를 만났고, 구정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서울 아들집에 모여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1987년 구정이었습니다. 그때 최 집사는 계속 금식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최 집사의 초췌해진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기 위해 부모님이 상경하여 아들 집에 머물던 주일 아침에 시어머니가 식탁에서 “얘, 아가야! 이리 와서 같이 밥 먹자. 너희들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으마.”라고 하였습니다. 그 주일에 시어머니가 교회에 처음으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 후 시어머니가 부산 집에 가서 그동안 보물처럼 간직하던 불경서적과 염주를 모두 버리고 인근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때가 1987년 4월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이 소식을 알려 주면서 며느리에게 금식을 중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1988년 2월에 다시 상경하신 자리에서 시아버지도 함께 교회에 가겠다고 응락하면서 “나도 7, 8세 때에 교회에 가본 적이 있다.”고 혼자만이 간직했던 뜻밖의 말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등록한 교회가 아주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 후 그 부모님은 독실한 신자가 되어 “너희들이 처음에 전도했을 때부터 나갔으면 좋았을 것인데…”라고 후회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 분들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지 2년이 지나면서 십일조 생활도 하게 되고, 교회가 모든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예수를 영접한 때가 69세였는데, 항상 자신이 늦게 믿어 하나님께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아쉬워 하다가 하루는 목사님께 “하나님이 가장 좋아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분은 전도지 10,000부를 가지고 노방 전도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1992년 10월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시장 입구와 학교 교문 같은 곳에서 전도지 7,820부를 배포하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성경을 한해에 무려 4독을 할 정도였고, 지금(77세)도 계속해서 성경을 노트에 필사하고 있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진단을 받고 난 후 늘 기도하던 중, 지난 4월 어느 날 새벽기도 중 어떤 분이 나타나 약사발을 가지고 와서 먹여 주면서 병을 고쳐주겠다고 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이 한 달 후에 또 반복되었는데, 그 후에 병이 깨끗이 나아지는 치유의 기적도 맛보았습니다. 

그 아버지 어머니께서 경향교회 입당감사예배(98. 5. 16)에 오시기를 구 장로에게 부탁한 바로 그 주간 그 주일(98. 5. 10)에도 아버지께서는 낮 예배를 드리고 노방전도를 나가려고 교회 사무실에 와서 전도지를 요청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교우들이 만류하였으나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전도하셨는데 바로 그 이틀 후 화요일에 아버지께서는 다시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지시고, 5월 14일(목) 새벽에 큰 며느리 최 집사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소천하셨습니다. 이때 아버지의 향년이 79세였습니다. 

그 분의 전도는 온 교회에 감동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 분은 전도일지를 기록할 정도로 전도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 분이 1992년도 일본관광 도중 뇌출혈을 일으켜 치료를 받을 때에, 병원에서 아들 구 장로에게 자신의 전도지 배포 일지를 보여주며 자신은 전도지를 더 배포하고 죽어야 한다고 하여 온 가족이 부등켜 안고 울었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 장례식에 경향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의 전도 열정은 그 장례식에 참예한 모든 조문객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습니다. 그는 비록 늦게 부름을 받았지만 저렇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주일예배까지 교회에서 드리고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과연 그는 별같이 빛나는 마지막 인생을 살았습니다.

복음의 씨를 뿌린 전도자가 받을 상급이 있고, 물을 주듯이 가르치고 양육한 자가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씀 합니다.(고전3:9) 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말이며,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복음전파 힘써서 항상 하느뇨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여기서 얻자 이 열심을 곧 다 하면 상 받으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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