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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가문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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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심양에서 두개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동관교회라는 중국인교회는 역사가 135년이 된 교회이고 최초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여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한 교회로, 현재 주일날 5부 예배로 1만 1천명이 예배를 드리는 큰 교회입니다. 

그리고 서탑교회는 1913년에 한국인들이 가서 세운 교회로 내년이 100주년이 되는 교회입니다. 

지금 현재 서탑교회는 조선족 성도 1000 여명, 중국인 성도 1,500여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인구 800만의 심양시에서 수많은 교회 중에 이 두 교회가 큰 교회였습니다. 

서탑교회에서 수요저녁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는 일제치하에서 고달프던 당시 봉천으로 불렸던 심양에 와서 '봉천서탑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하였고 해방 전 한국인이 6~700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자 많은 교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한국 가는 길이 막혔을 때 미처 출발하지 못하고 남은 교인들이 10 여명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남아서 교회를 지키는데, 중국 공산정권으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고, 교회 건물도 빼앗기게 됩니다. 그들은 핍박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 나갑니다. 

그중에 처녀 집사로 ‘오애은’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교회를 이끌게 됩니다. 1979년에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나서 종교적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10여분의 나이든 성도들이 시정부청사 앞에서 데모를 합니다. 옛 교회 건물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그 당시에는 목숨을 건 데모였다고 합니다.

겨우 교회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아 문이 열려 들어가게 되자 바로 그곳에서 나오지 않고 버텼고 공산당 시정부도 교회 건물을 회복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교회가 다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고 부흥을 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 중심에는 일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해 온 ‘오애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오 목사님은 자신의 동생의 자녀들 중 한 딸을 택해 양녀로 삼고 신학을 공부시켰습니다. 

한국에 보내 장로회신학대학에서 공부를 시켜서 한국의 목사를 사위로 삼고, 그 조카딸에게 그 교회의 목회를 시켰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목사가 담임목사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조카딸이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그분이 '오명방' 목사님입니다. 

오 목사님은 고모에 뒤를 이어 목회를 잘 하고 있었는데, 심양의 큰 교회 동관교회에 어려움이 생기자, 그 교회에서 부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동관교회까지 담임하게 되었는데, 그 큰 교회가 네 파로 갈려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오 목사님이 부임하여 매일 성경공부와 예배를 통해 다시 회복하고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탑교회는 신학교까지 세워서 지금까지 수많은 조선족, 한족 목사들을 배출하여 중국 전역에 파송했습니다. 서탑교회 원로목사이신 오애은 목사님으로부터 지금의 오명방 목사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한 가문이 중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귀한 일입니다. 

사명은 가문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과 민족을 새롭게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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