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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베풀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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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가의 100년 기부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1900년 봄 뉴욕 카네기홀에서 기독교 해외 선교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캐나다 의사 출신으로 조선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올리버 에비슨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에비슨은 조선 최초의 근대 병원 제중원(濟衆院·광혜원 후신)의 운영을 책임지던, 
고종의 시의(侍醫)였습니다. 

“환자 40명을 수용할 수 있게 시설을 늘리려 합니다. 도와주실 독지가가 없으신지….” 

그때 뒤쪽 두 번째 발코니에서 강연을 듣던 루이스 세브란스가 나서서 
“마침 선교지 어딘가에 병원을 지으려 했다”며 1만 달러를 쾌척했습니다. 

세브란스는 존. D. 록펠러와 함께 클리블랜드의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을 운영하던 대주주였다고 합니다.
세브란스의 기부로 서울역 맞은편 복사골에 병원을 완공한 것이 1904년 11월 입니다. 
기증자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불렀습니다. 
서울에서는 43번째 양옥이었다고 합니다. 

세브란스는 1907년 직접 조선을 찾아와 병원을 보고는 다시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세브란스는 자기 주치의도 보내 세브란스에서 봉사하게 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의 여러 방 중 하나는 닭장처럼 쓰였다고 합니다. 

돈 없는 환자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았지만 공짜로 진료받은 사람들은 고맙다며 
닭 한 마리씩을 들고 왔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도 많아 따로 닭장 방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무료진료로 병원 운영이 어려워질 때마다 도와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 존이었다고 합니다.
 
클리블랜드의 세브란스 홀은 세계적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본거지라고 합니다. 
이 공연장도 1928년 존 세브란스가 지어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브란스가(家)의 자선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계속 이어져 왔다습니다. 
병원에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 북장로교회’ 명의로 매년 후원금이 입금됐다고 합니다. 

병원 직원들은 그냥 “미국 교회가 좋은 일 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원 120년을 맞는 병원측이 추적해보니 돈의 출처는 아들 세브란스가 만든 기금이었다고 합니다. 

올리버 에비슨이 루이스 세브란스에게 병원 지을 돈을 줘서 고맙다고 하자 세브란스가 말했습니다.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큽니다.” 

세브란스와 록펠러가(家)야말로 베풀 수 있을 때 베풀 줄 알았던 행복한 부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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