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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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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일본의 성자요 일본의 사도 바울이라고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빈민 운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그는 부모님 두 분을 일찍 여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15살이 되었을 때 그의 고향 고베를 떠나서 동경으로 무작정 올라와 
어느 인쇄소에 취직을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20대 초반에 폐병에 걸렸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의사로부터 전연 희망이 없다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서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성도들이 찾아와서 
마지막 예배까지 드려 주었습니다. 
성도들이 돌아가고 난 그날 그는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더 남자답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그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모든 희망이 사라져서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만일 내가 믿는 예수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도 자살을 생각하셨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러 오셨다고 했으니까 
 예수님은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섬길 자를 찾아가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는 자신의 자살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날까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리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빈민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자살을 계획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이제 나는 사선을 넘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믿음의 스승이 되는 나가노 목사님의 뒤를 이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사선을 넘어서>, 이것은 훗날 그의 유명한 자서전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빈민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폐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다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그곳으로 찾아 간 것입니다. 
그는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어떤 술주정뱅이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술주정뱅이는 그에게 돈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빙긋이 웃으면서 달라는 대로 돈을 주었습니다. 
그 술주정뱅이는 그 길로 술을 사 마셨습니다. 
그러더니 돌아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여보시오, 저런 몹쓸 인간에게 돈을 주는 것은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오. 
 도리어 그를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된다오."

그 때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사람들에게 속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같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비로소 작은 사랑의 씨앗이 싹트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폐병으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고 
미국에 유학을 해서 프린스톤에서도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돌아오고 난 뒤에도 그는 일생토록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가 머물다 간 자리에도 작은 사랑의 씨앗들은 무수히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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