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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님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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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 목사 (에제르치유나눔선교회대표, 온누리상담연구원원장)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꾸준히 해왔느냐에 따라 나이가 들면서 그 얼굴에 다양한 그림이 새겨지게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상이 안 좋은 사람을 자기 측근에서 배제시킨 일로 유명합니다.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얼굴에 배어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좋은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좋은 인상으로, 마음 속에 나쁜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나쁜 인상으로…

눈빛이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 두 뺨 가득 탐욕이 가득한 사람, 입가에 비웃음을 깨물고 있는 냉소적인 사람, 무뚝뚝한 입매, 사람을 노려보는 치켜 올라간 눈, 웃음기 없는 일자 양의 앙다문 입술, 화가 났을 때의 일그러진 표정… 이런 얼굴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짓고 다른 사람의 가슴을 턱턱 막히게 하는데도 그것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종종 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표정 때문에 또다른 사람이 상처를 얼마나 받게 되는지도 생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혼자서만 살아간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표정에서 많은 숨겨진 언어들을 읽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때로는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천성적으로 얼굴이 굳어 있거나 표정이 어두워서 도저히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링컨이 말한 ‘40세 이후의 얼굴’은, 적어도 4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삶이 새겨지고 인상으로 굳어져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으로 평가되는데,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마음을 결정짓고 그 마음이 투영되어 거스를 수 없이 흐르는 것이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면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다면 다른 사람이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온화함이 얼굴 가득 담겨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늘 바라본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닮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을 닮은 듯하다가 금세 악마의 얼굴로 바뀌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헷갈려 합니다. 어느 얼굴이 진짜 얼굴인지…

‘큰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 계속해서 바라보면 닮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한결같은 얼굴이셨지요. 약자들, 죄인들, 여인들, 어린이들… 그 당시에 천대받던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을 향한 온화한 표정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 주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그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된 얼굴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파와 시련을 거쳐 오느라 자신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어서인지 많은 경우 경직되고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자처럼 포효하는 표정의 설교로 사람들이 상처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연약한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보살피는 능력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약자를 섬기는 자, 자신을 낮추는 자가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자신을 낮추는 자를 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큰 교회 목회자는 자신이 큰 자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합니다. 큰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이 작은 교회 교인들보다 큰 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은연중에 가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의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함과 온화함이 그 얼굴과 태도에서 진심으로 풍겨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천하고 모자라 보이고 연약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신앙상담을 하다보면 목사님이나 교회 안의 지도자로 인해 심한 상처를 받은 형제 자매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물론 지도자들이라고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얼굴과 태도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자신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나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나 지도자들은.

저는 신학교를 지망하는 후배 목사후보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날마다 들여다볼 것을 권면합니다. 이것은 실력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살아온 삶의 여정이 힘들어서 그것이 얼굴에 이미 새겨져 버렸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는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열 번씩 거울을 보고 부드러운 눈매와 미소 띤 표정을 연습하라고 말해 줍니다. 특히 세상의 어두움에 눈이 쏠리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오래 바라보면 그 어두움이 어느새 얼굴 가득 깃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타인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이 어둡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애써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얼굴에 '주님 이미지'가 조금씩 새겨지게 되고 그 사람은 60세나 70세 이후에는 모세의 얼굴처럼 빛난 얼굴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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