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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너그러움’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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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형 소장(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최근 한 목회자와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에 가장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목회자가 제시한 명제는 '너그러움'과 '넉넉함'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절실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너그러움'도 꼭 필요하지만 최근 별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사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어떤 것보다 너그러움의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너그러워서는 안될 것이다. 복음에 대한 기준은 추상같아야 한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부분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 교회 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목회해야 할 목회자들에게 너그러움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행히도 한국교회는, 한국의 목회자들은 너그럽지 않다. 넉넉함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너그러운 목회자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 속에 들어가면 매정해진다. 본질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그렇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에 배치되는 것은 가차없이 배제해 버린다. 그래서 한 하나님을 믿는 한국 교회가 이렇게 분열되어 있다. 같은 장로교라도 교단이 다르면 서로를 외면한다. 그래서 장로교 내 총회장들이 강단 교류라도 한번 하면 기독 언론에 주요하게 보도된다. 생각해 보자. 예수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교류하는 것이 어떻게 뉴스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한국교회 내에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수많은 목회자 모임들이 있다. 이 모임들의 특성은 대부분 너그럽지 않다. 너그러운 주님의 사랑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서 어렵게 만들어진 모임들도 '우리끼리' 의식들로 그득하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예수를 알기 이전 그는 누구보다도 매정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닌 것들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기준은 변했다. 복음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었지만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다.

크리스천들은 너그러움을, 관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교회에는 넉넉한 평화가 있어야 한다. 그 안에는 어진 목회자, 너그러운 성도들이 가득차야 한다. 주님 대신 양들을 먹이는 목회자가 오만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리더는 강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오만하지만 선동적인 특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인간 문제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잘 드러내며, 자신의 직위나 직급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이 리더로 등장할 것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로버트 할리 박사의 말이다. 앞으로는 너그러운 리더십, 광의로 이야기하면 감성의 리더십을 지닌 리더들이 각광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불도저식으로 밀고 나가더라도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러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마음으로 따른다. 한국교회가 너그러워질 때, 세상은 그제서야 비로소 그 넉넉한 성품의 근원인 하나님을 다시 주목하게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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