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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의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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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어머님의 등에 업혀서 교회당을 출입하면서부터 귀에 익은 노래는
" 예수 사랑하심은.."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등의
찬송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십 대에 들어 서면서부터, 그러니까 군대 시절부터 하나님은
내게 무척 "무서운 하나님"으로 각인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전방에서 밤마다 추위에 떨면서 철책선을 지키던 시절은 아주 멀리서 희미히게
들리던 교회 종소리만큼 하나님은 내게서 멀리 계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니 나를 외면 하시기에 이런 고난의 때를 허락하신다고 생각되어 차라리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마음으로 나 자신을 학대하면서
보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간첩 작전차 출동하던 군 트럭이 다리 난간 아래로 추락하면서 동승하고 있던
많은 전우들이 사망하거나 부상 당하는 사고 현장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로
생명을 연장받아 덤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새벽마다 간구하시는 부모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다짐하였지만 그 결심이
그리 오래 가지를 못하게 되더군요.

결혼 후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자녀들로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셨지만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며 살았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내 생명처럼 사랑하는 아이들의 무서운 질병을 통해
내게 매질하시거나 내게 아주 견디기 어려운 다른 채찍으로 징계하시며 항복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기를 거듭 거듭하였답니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를 여러번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징계의 채찍이 너무 아파서 그로 인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아도 하나님이 무섭게만 보이던 시절이었지요.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무서워하며 주인의 것을
되돌려 주었음에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할 때는 자신의 것을
되찾기에만 관심있는 "무서운 하나님"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니 주인의 관심은 자신의 것을 종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종들의 두목처럼 각종 지시사항을 만들어 놓고 잘못할 때마다 일일이
적어두는 것을 낙으로 삼으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칭찬 받기 어려울 바에는 세상 즐거움이나 마음 껏 즐기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사실 그럴만한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 눈에는 신앙 생활 잘하는 것 같이 보였을지 모르지만 늘 세상과 하나님께
양다리 걸치고 살면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처럼 불순종과 징계,
회개와 순종이 반복되는 세월을 보냈답니다.

미련하고 둔해서 내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하나님의 고집(?)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런 나를 나이 오십에 장로로 세워주셨는데 그 무섭던 채찍들은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나"(렘 31;18)를 주님 앞에 충성하는 청지기로 세우시려는
사랑의 매였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자를 끝까지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자녀들을 향해
"나의 친구"(요15; 13-15))라, "동역자"(고전 3:9)라 불러 주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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