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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애인석, 경로석, 원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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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4)

- 김학우 목사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고종의 밀사 노릇을 했던 호머 헐버트씨는 조선에 대해 “이 세상에서 노인 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잘된 나라”라고 했고, 한국 최초의 의료선교사 알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노인 천국”이라고 극찬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가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에 비해 유럽,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영국이 복지제도가 가장 잘된 나라로 꼽히고 있다. 이 중 독일은 사회복지 예산이 국내 총생산의 30%로, 스웨덴에 이어 세계 2위의 복지국가로 많은 나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애인석

이전과 달리 한국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많이 개선되었다. 이젠 한국도 유럽처럼 어딜 가나 주차장은 물론 공공시설에 장애인들의 자리가 마련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문턱도 많이 낮아졌고, 장애인 혼자서도 다닐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을 얕보는 습관이나 시각은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 같이 노골적으로 “아침에 장애인을 보면 재수가 없다”라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지는 않지만 장애인들을 기피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기피 현상을 누구보다 그 가족들이 더 잘 알고 있기에 가급적이면 장애인을 데리고 바깥 출입을 삼가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정해 놓은 장애인석은 비어 있기 마련이고 성질 급한 일반 사람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의식 가운데 하나는 장애인을 “신체 부자유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는 존엄성 내지 인격과 직결되는 말로서 신체적으로 불편한 것 때문에 부자유하다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표현이다. 신체 중 한 부분이나 혹은 전체가 불편하더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신체 불편(不便)한 자”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장애인을 흉내내는 사람, 이른바 병신춤이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인간문화재”라 하여 정부가 돈을 들여 장려하는 것은 장애인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까지도 무척 화나게 하는 일이다. 장애인들에게 숨겨진 내면의 약점과 아픔을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문화재의 의미를 왜곡한 것은 물론 장애인들을 세상 끝으로 밀쳐내는 비인간적인 행위다.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이뿐만 아니라 장애인 현행범에 대한 변호사의 변호에서도 잘 나타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한쪽 다리가 없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가는 곳마다 배척을 받아 일할 곳조차 없어… 이 몹쓸 짓을 했기에…”합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변호를 하기보다는 장애인의 약함을 더 앞세우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숨김으로 특혜나 자기 이익을 유도하는 태도는 육체적 장애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다리 하나가 없으므로 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신체적인 장애가 부도덕함을 변명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신체적 장애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한물 간 세대의 상징, 경로석

나는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해 서울을 비롯 지방에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객차 안에는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빈 칸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바로 “경로석”이었다. 대체로 젊은이들은 경로석 뿐 아니라 일반석에서도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했다. 나도 한 학생이 경로석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경로석에 앉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어떤 한 노인이 젊은이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자, 젊은이는 경로석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또박또박 말대꾸를 했다. 주로 노인 쪽에서 언성을 높였고, 젊은이가 이를 되받아 격렬한 말싸움으로 비화되곤 했었다.

현재 한국의 노인들은 사실 갈 곳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경로당이 있긴 하지만 더 늙게 된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노인들이 많다.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한 경로석은, 거세게 밀려나는 노인들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막아 보자는 의미에서 만든 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경로석만으로 노인들의 마음을 달래기는 역부족인 듯하다. 한국사회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나이가 들면 빨리 자리를 비우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인적 쇄신(人的 刷新)”이란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서 그런 바람이 불고 있다. 물갈이 대상은 곧 나이가 든 사람이란 등식이 성립된 지 오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다. 그러나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한물 간 세대”로 몰아붙여 내쫓는 것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일이다. 노인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경로석을 달라는 아니라 먼저 살아온 인생 역정(歷程)의 삶을 조금이나마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재빨리 내려와야 하는 자리, 원로석

가정과 사회, 공적 기관에서 내몰린 노인들이 더 이상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든 것이 “원로회”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한국은 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 “원로회”가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 “불교 범종단 최고 원로회”란 것이 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승종, 성불종, 선화종 등 불교 30여 종단에 속한 원로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각 종단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로, 새로운 승가 위상의 정립과 개혁, 각 종단의 단결을 목적으로 원로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초법적, 최고 지도체제나 다름없다.

개신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원로회와 교단을 대표하는 원로회, 심지어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회까지 조직되어 있어 그 예우나 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처음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원로회가 어느덧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원로회란 지나온 경륜과 업적을 감안해서 예우한 것 뿐인데, 현직의 연장선상에서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려는 욕심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원로회는 로마제국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 씨족이나 부족의 대표들로 구성된 각 원로들은 훗날 지역 영주가 되었다. 실제적으로 유럽 도시의 원천인 고대 그리스는 개인보다 도시국가(폴리스)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항상 다른 도시의 침입을 경계해야만 했고, 개인의 존망이 도시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런 오랜 역사와 생존을 위해 부족 사회의 어른, 부족의 대표, 족장들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원로회는 왕정 시대에 일종의 자문단의 기구로 존재하면서 로마의 역사와 함께 승승장구해 왔다. 왕이 원로원의 조언을 무시한다든가 거부했을 때도 있었지만 원로회가 왕을 마음대로 조종했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 후 로마 정치의 변화와 함께 원로회는 로마를 움직이는 주체적인 구실은 하지 못했고, 그 권한도 축소되어 명예적인 칭호로 전락하였다. 권력에서 밀려난 원로들을 가리켜 “디폰타니(Depontani)”라 불렀다. 즉 로마의 원로란 “다리 위에서 떠밀림을 당하지 않고 겨우 구제 받은 노인”이란 뜻이다. 과거 하늘을 찌르던 로마 원로들마저도 겨우 다리에서 떠밀리지 않고 구제를 받아 살아 남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유럽에서 원로회라는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유럽의 노인들은 “디폰타니”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다리에서 떠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다리 아래로 먼저 내려온 셈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원로들은 아직 다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의 장구한 역사가 “노인들이 너무 오래 권력을 잡고 있으면 다리에 떠밀릴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의 원로들은 아직 유럽의 원로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배우려는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교회는 베데스다 연못인가?

사람은 누구나 기차나 버스를 타게 되면 몸을 편안히 하기 위해 앉을 자리부터 찾게 된다.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게 되는 식탁의 자리, 밤이 오면 쉴 수 있는 잠자리를 찾는다. 입시, 취업을 위한 자리다툼은 실로 비극에 가깝다. 교회 직분의 자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총회장이나 노회장 같은 굵직한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장로, 권사를 위한 자리다툼까지도 베데스다 연못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죽을 자리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비롯, 프랑코 총독의 무덤, 수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무덤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믿음의 사람, 요셉도 애굽에서 죽을 때 “내가 죽은 후 나의 뼈를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창 50:25)고 한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누구나 자리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쉽게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필자 / 김학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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