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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속에 만연된 미신(迷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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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즉 기독교는 부패한 중세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 때부터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복음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부르짖어 왔습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은 복음을 훼손하는 것에 지나쳐 각종 미신적인 성물숭배(聖物崇拜), 유물(遺物)숭배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 최후 만찬에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성배를 찾는다는 영화 인디아나죤스??)부터 베드로의 머리카락, 스데반의 뼈,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쌌다는 세마포 성의(聖衣)에 탄소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예수님의 형체가 드러났다는 등등...까지. 지금도 로마 교황청의 창고 어디엔가는 순교자들의 뼈 조각 따위들이 지극정성으로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물따위를 숭상하다보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무지하고, 미신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여러분, 로마 카톨릭(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 성경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말씀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있을지는 몰라도 대부분은 성경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래서 6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하던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알곡 보다는 쭉정이가 많지."라고 하셨다지요.


그런데 "흉보고 닮는다"더니 요즘 교회 안에도 각종 미신적인 태도와 모습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우려 됩니다. 혹시나 갈릴리 마을 분들도 그럴까 하여 노파심에 같이 생각해 보자고 글을 올려 봅니다.


1. "미신(迷信)"은 무엇인가?


저는 <미신>을 한 마디로 말해서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 나름대로 처방을 내려 처신하는 일체의 행위와 태도>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지극 정성과 어떤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미신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2.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미신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든 미신을 배격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부터도, 우리 사회 전반에 걸려 오랜 세월동안 젖어 있는 미신적 문화 까닭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성전(聖殿)과 관련하여...


어쩌면 이곳을 찾는 분들 중에도 교회 건물을 향해 <성전>이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성전은 구약적인 개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주심으로 1년 1차 대제사장들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고, 그 결과로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단번에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가 있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속제의 제물이 되신 주님까닭에 우리는 두 번 다시 양이나 기타 짐승의 피로 번제를 드리는 제사는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더 이상의 성전은 없습니다.


교회 건물은 그래서 교회당(敎會堂), 또는 예배당(禮拜堂)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슨 베들레헴성전이니, 예루살렘성전이니(Y순복음교회)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요, 무지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갈 때 구두를 벗고 올라갑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서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던 것을 연상하셨는지는 모르나, 한마디로 넌센스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슬리퍼는 왜 신습니까? (참고, 저희 집에서는 슬리퍼를 화장실에서만 신습니다.) 저도 강단에 올라갈 땐 신발을 벗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취향이며(강대상 뒤 마루에 방석을 놓고 기도하기 때문에), 청결 상의 문제일 뿐 강단이 더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40대인 저희 자랄 때, 예배당에서 기타를 치는 것이 가(可)하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종종 교회의 젊은 학생들과 연세 있으신 장로님등 어른들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기타를 치는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분들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신디싸이져, 드럼 도입, 랩 찬양, 헤드폰 마이크 등등을 가지고 젊은 아이들과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모두가 본질과 비본질적인 요소들의 혼재(婚材)속에 명확한 철학이나 성전 개념의 확대해석에서 오는 갈등이라 여겨집니다.


(2) '강대상'과 관련하여...


저는 어느 교회에 저녁예배 설교하러 갔다가 특이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강대상 한쪽 귀퉁이에 강대상을 헌물한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저를 청하신 목사님과의 친분 관계를 생각해서 단순히 '수고를 기억하는 기념차원'일 것이라고 은혜롭게(?)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만, 뒤이어 사회를 보시는 분(소위 '평신도')께서 작은 강대 아래에서 시종일관 있는 모습을 보면서, 또 그것을 아무 거부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을 보면서 이러한 강대상의 구분도 미신적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목사의 강대와 목사 아닌 분들의 강대가 구분되어야 합니까? 성경적인 근거가 있나요?


(3) '성경'과 관련하여...


성경책은 그야말로 책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루담배 말아 피기 좋은 "고급종이"로 만든 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 초대교회의 이기풍 목사님은 화장실에서 성경책 찢어 담배 말아 피우면서 남은 조각에 기록된 성구 구절들을 읽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야사(野史)도 있지 않습니까?

성경책 자체가 무슨 신통력을 발휘하는 마법의 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경책(요즘엔 성경책도 4만원 넘더군요) 가졌다는 것'을 '좋은 믿음을 가진 것'으로 쉽게 동일시하며 자부심과 위로를 받는 분들을 보면, 목사로써 정말 기가막힐 때가 많습니다. 자동차에 성경책 싣고 다닌다고 사고 안 나는 것 아니고, 성경책을 베고 잔다고 신구약 성경이 머리 속에 자동으로 들어오는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영빨(?)이 더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경책은 오직 읽는 자들에게 유익이 되고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4) '주의 종(?)'과 관련하여...


이것은 소위 목사를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도 사실 목사입장에서 이렇게 귀하게 떠받들어 주면 싫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당한 양심으로 서서 생각해 보면, 이런 모습이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성장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 지 모릅니다.  

목사직은 '위임직'입니다. 그래서 목사 위임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교회 공동체가 '우리 모두가 주의 종이지만, 우리는 생활에 바쁜 사람들이니까 당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목양(牧羊)을 하라'고 위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의 소명과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정신은 목회자는 주님을 머리로 모신 교회 공동체의 한 부분을 맡아 감당하는 "기능직"이요, "은사"들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의 종, 심지어 종 님(?)이라고까지 해가며 '지나친 섬김'과 또 이를 당연시하는 '군림'은 주의 종을 잘 대접해야 복(福)을 받고, 건드려봐야 재미없다는 기복(祈福)주의적 사고에 다름아닙니다.
  

(5) '헌금'과 관련하여...


헌금에 대한 문제는 언젠가 이곳에서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어서 또 다시 길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헌금과 축복을 지나치게 연결하는 복채(卜債)적 사고방식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만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일조를 떼어먹었더니 사업이 안되더라, 꼭 그 떼어먹은 만큼 손해를 보게 하시더라, 아니면 애가 아프더라 등등... 하나님을 그렇게 잡신(雜神)처럼 취급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십일조 떼어먹어도 사업이 잘되고, 아프지도 않고, 손해 안보는 사람들 많습니다. 십일조는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청지기적인 고백을 표현하는 리트머스시험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마치 투자했으니 이익을 발생시켜 달라는 장삿셈처럼 기브엔테이크(Give and Take)식으로 축복을 흥정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부흥사는 눈먼 아버지 이삭을 속여 별미를 바치고 축복을 받은 야곱의 경우를 들며 부흥회 마지막날에는 "별미헌금"을 가져오라고, 축복 기도를 해 주겠다고 하니, 자기가 무슨 이삭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눈 먼 아버지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셔서  불꽃같으신 눈으로 인생들의 중심(中心)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이 가당찮은 넌센스에 말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그 무지(無智)와 남들보다 더 축복(祝福)을 받겠다는 이기적 탐욕(貪慾)에 한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부터, 나 서있는 자리에서부터 미신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타파(打破)하고 개혁해 간다면 그만큼 한국교회는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올린 글에 대한 반론이 있으신 분들은 감정 대응이 아닌 성경적인 근거로 논거를 펴시면 저도 신중하게 다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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