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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름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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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진재수
어려서부터 놀림감을 받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내가 나타나면
“재수 엄마! 재수 있어요?”
“재수 없다!
이렇게 놀리기 시작했다.
“야! 재수 옴 붙었다!” 이런 정도는 예사였다.
“에이! 재수 없어!”침을 탁 뱉는다.
내가 화를 내면
“내가 언제 너 보고 그랬어? 그냥 재수 없다구!” 이러는 것이 아닌가?

어떤 아이들은
내 이름을 뒤집어서 “수재진”
말도 안 되지만 여기에서 “수제비”가 다 나온다.
“야! 수제비” 뭐 이러는 것이었다.
또 여기서 “수제”가 나왔다.  
(우리 전라도에서는 밥 떠 먹는 ‘수저’를
‘수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머니 은혜’ 노래를 배울 때는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고...”
이래야 되는 것을
“진 재수 마른 재수 갈아 뉘시고...” 이러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내 이름이 싫었다.
상당히 음성(陰性)적인 이름이라서
내 성격이 내성적이 된 것이라고
“내 이름은 왜 이렇게 지었어!”
이렇게 혼자 불만을 가졌다.
워낙 효자(?)인지라
한번도 부모님께 이런 불만을 이야기 해 본적이 없지만
정말 나는 내 이름을 지은 부모님이 미웠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시편 23편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에서 언뜻
내 이름의 ‘수’ 자가 ‘물가 수(洙)’자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 ‘재’자는 ‘실을 재(載)’이니까
“음.....물가로 실어서 간다.....”
그리고 우리 성씨인 진(晉 또는 晋: 이 성씨는 정말 희성이다. 보기 드문 성씨이다.)인데
이 진(晉, 晋)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의 진(進)과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물가로 실어 나아간다!”
여기에서 내 이름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후부터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 영어로 내 이름을 써야 할 경우에는
Jin jae soo 라고 쓰던 것을
Jin jesu 라고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
Jesus를 닮고 싶고, 또 닮아가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과 같이.....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거 정말 내 자신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바로 목회자가 된 것이다.
내 이름의 뜻대로 이루어 진 것이다.
내 이름이 항렬(行列)도 따르지 않고 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을 만났다.
십 수 년 전 우리 문중 형제들이 모여
모든 조상의 묘를 합하여 납골묘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때만해도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고 난 뒤에
이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실은 같은 항렬의 형제들 이름을 다 올린 것이다.
나는 15명의 문중 형제 간 중 가장 막내이다.
그런데 그 많은 형제간 중에 믿는 형제가 아무도 없다.
그 중에 내가 목사가 되었으니
이거 시제(時祭)라도 지내는 때는 보이지 않는 눈총이 있었다.
자! 그런데
납골묘를 만들고 난 뒤 그 비석을 읽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형제간들의 이름이 족보에 있는 대로 비석에 새겨졌었다.
그런데 그 항렬자가 ‘목탁 탁(鐸)’자였다.
형제간들의 이름에 그 글자를 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비석에 적힌 모든 형제들의 이름이 다 탁(鐸)자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형탁(亨鐸), 성탁(晟鐸), 인탁(仁鐸) 원탁(元鐸) 용탁(龍鐸) 영탁(鈴鐸).......
친 형들의 이름도 이탁(以鐸) 용탁(用鐸).
“탁탁탁탁타타타타타탁.......” 영락없이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그 모든 이름 가운데 내 이름만이 그대로 재수(載洙)로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모든 형제 중에 나 혼자 예수님을 믿고......거기에다가 목회자까지 되었구만......”

한편으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씁쓸하여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이름 콤플렉스야 벗겨졌지만
안타까움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하다.
“에구! 언제나, 언제나.......모두 예수님을 믿을려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順天바람직한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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