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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넷째 딸을 가졌을 때 험한 소리를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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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넷째 아이를 가졌을 때,
저와 아내는 전혀 임신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미 예쁜 딸아이가 셋이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어서
피임을 거의 완벽하게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내는 심한 몸살 증세가 있어서,
“감기인가 봐요!”하면서 감기약을 지어다 먹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의약분업이 실행되기 전이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증세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다 아내는 “아차! 임신이 아닌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과연 임신이었습니다.
그동안 감기약을 많이 먹었던 것을 이야기했더니,
의사는 한마디로 “아기를 떼는 것이 좋을 걸요!”라고 말하며 그 계획까지 운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병원을 나오면서 “나쁜 놈! 생명을 죽여 돈 벌어먹자고 그런 소리를 해!”라고 하였지만,
그 의사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이후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나면 어쩌지?”하면서 울며, 불며 걱정에 걱정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죽일 수 있겠어? 만약 기형아가 태어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우리가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겠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불안한 마음은 아이를 낳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부교역자로서 담임목사님께서 은퇴하신 교회를 전담사역하고 있었던 때라
아내의 심정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까지 걱정할만한 여유가 제겐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미련하고, 우둔하고, 몰인정하고, 나쁜 남편지요.
아내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설마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형아를 주시겠어?”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였던 것은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래도 바보스러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래서 항상 “뭐 잘 되겠지!”하고 말았습니다.
제게는 제가 감당해야 하는 교회의 사역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냥 힘든 사역에 지쳐 기도하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생각해보면 ‘나는 이렇게 나쁜 남편이구나’ 싶습니다.
아내는 홀로 이 문제를 놓고 수없이 울며, 불며 기도하였습니다.
부교역자의 아내라는 자리가 참 묘하여, 이런 사실을 교회에 알려서 기도를 부탁하지도 못한 채 아내 혼자만의 기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윽고 출산의 날이 되어 무료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모자보건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사내아이를 기대하였지만 아내는 딸을 낳았습니다.
아주 건강하고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기쁜데, 주위의 모든 분들은 아내가 네 번째도 딸을 낳자 너무 너무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데 무슨 아들을 원하겠습니까?
우리는 넷째 딸 때문에 추호도 서운해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 넷째 나경이는 참으로 예쁩니다.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는 넷째아이를 보면서, “이거 갈수록 우리가 영리한 아이를 낳는데, 몇 만 더 낳으면 천재도 낳을 수 있겠어!”라고 하며 기뻐합니다.
우리 나경이는 이제 11월 7일이면 세 돌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말 귀한 딸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順天바람직한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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