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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4 - 안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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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녘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던 오월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먼저 온 성도들과 인사하기 위해 강단에서 내려섰을 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오경님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기도 잔 해주쑈. 아 엊그제 화장실서 미끄러졌는디 허리가 육장 더 아프단 말이요. 집에서는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디…오늘이 주일이라 잔 움직거려 볼라고 나오기는 나왔소만 영판 힘드요예."

  예배 시작 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음을 확인한 나는 올해 여든 아홉인 오 집사님의 허리에 한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자 지켜보던 노(老) 집사님들이 앞을 다투어 "나는 머리가 뽀개질 것맹키로 아픔서 어질어질 허당께라우" "나는 외악편 어깨가 돌멩이 달아논 것맹키로 시단 말이요" 하는 식으로 한 마디씩 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노 집사님 모두에게 기도를 해 드리고 나서야 서둘러 강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마침 '안수'에 관한 말씀을 준비했던 터라 오히려 잘됐다 싶었습니다.

  "저는 예배 시작 전에 노 집사님 몇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손을 얹고 했으니까 굳이 말한다면 '안수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안수'는 죄사함과 복을 비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말씀만으로 고쳤는가 하면, 또 안수해서 고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아시는 분이십니다.…모든 사람에겐 망가진 부분이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신의 망가진 부분만 본다면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망가진 부분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다 망가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가운데 아직 온전한 또는 덜 망가진 부분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중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도 있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분도 있고, 말이 어눌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망가진 부분이 있음을 알면서도, 아니 온전한 부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주님, 저를 만져 주세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아멘'하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왜냐면 아멘은 '주님이 말씀을 통해 나를 만져주시고 새롭게 하신 줄 믿습니다' 하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얹어야 합니다. 거창한 기도만 생각하지 말고 서로를 위해 믿음으로 손을 얹어야 합니다. 그 때 여러분의 손 위에 예수님의 손이 포개지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이 시간도 주님의 손길이 우리 가운데 임한 줄 믿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강단에서 내려온 나에게 오 집사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허리가 하나도 안 아파라우. 목사님이 기도허실 때 목사님 손이 뜨근뜨근허드만…거짓깔맹키 암시랑토 안허요이."
  이내 오 집사님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고, 그 말을 들은 몇몇 성도가 '아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예배 시간, 먼저 온 성도들에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강단에서 내려선 나에게 오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번에 기도 받고 허리 나솨갖고 집에 강께 우리 손부가 그럽디다. 인자 할머니는 교회 안 나가믄 안 되겄다고…글고 오늘 나온디 우리 손부가 할머니 허리 나솨 줬응께 고맙담서 마늘 쪼까 줍디다. 얼매 안된디 갖다 놨응께 해 잡수쑈이. 근디 목사님, 눈이 어째 그랑고 무장 눈물이 난단 말이요. 잔 고쳐주쑈."

  나는 집사님의 두 눈에 손을 얹었습니다. 기도하는 사이 손 하나가 내 손 위에 포개졌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보니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박찬희 집사님의 손이었습니다. 오 집사님의 오랜 '예배 짝궁'인 박 집사님은 목사님이 '서로 손을 얹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랬노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말없이 박 집사님의 손을 잡아 드리자 집사님은 씽긋 웃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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