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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잊혀지지 않는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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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을 비교적 오래한 오십대의 장로로서 설교 본문만 보면 설교 내용을
대강 짐작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솔직히 두려운 일이지만...)

같은 내용의 설교를 반복해서 듣다가 보면 줄거리를 거의 알게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어떤 내용을 더 추가하거나 삭제하면 더 좋을텐데 하고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었던 만나를 먹게 되면 큰 기쁨을 맛보게 된다.

지금까지 들었던 많은 설교 가운데는 듣고도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바로 잊어버렸던 '강의'가 있었는가 하면 두고두고 기억나는 '설교'도 있다.
언젠가 들은 설교 중에
'교회의 유형 세 가지'가 요즘 다시 마음에 생각나고 있다.

첫째, 대합실 같은 교회

기차나 버스 정류장 대합실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지만
주인처럼 지키거나 섬기는 사람이 없는 교회.

아마 이런 교회는 전시성 행사를 많이 하고 소란스러울지는 몰라도
열매가 그리 풍성할 리가 없을 것이다.

둘째, 훈련소 같은 교회.

훈련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훈련병이다.
그 훈련병들을 가르치기 위해 엄격한 훈련과 기합이 있을뿐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훈련병들은 윗 사람으로부터 야단을 맞지나 않을까 늘 불안하고
선착순 달리기 경쟁으로 늘 긴장하여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 훈련이면 좋으련만...

세째, 가정 같은 교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가정을 제외하고 세상 어느 곳,
어느 조직에 가보더라도 가장 어른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은 없다.
그런데 어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을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섬기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물론 가족끼리도 늘 서로 화목한 가운데 사랑하는 것만 아닐 것이다.
때로는 서로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한 핏줄된 마음으로 서로 감싸주고 덮어준다.
기본적으로 가정에는 사랑이 있다.
그런 가정같은 교회를 통하여 이땅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맛보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래 전에 읽은 글랜 와그너 목사님의 <하나님의 교회 VS 교회주식회사>라는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잊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있는데
'교회주식회사'라는 말이 있듯이 목회자가 사장(CEO)처럼 운영하는 교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리더'는 잘 따르지 않는 한 두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라도
대다수의 양들을 이끌고 목표 지점으로 강행하려 한다

그러나 '목자'에게는 양들이 따라가다가 때로는 들어받기도 하고 달아날려고도 한다.
그래도 한 마리의 양이라도 끝까지 찾아 감싸주고 안아주는 것이 '목자'가 아닌가.
병들고 지친 양을 품에 안고 다니느라 옷이 늘 지저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양을 위해 정성을 쏟는다.
목자는 양떼를 돌보는 일군이지 결코 양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직분이 아니다........

요즘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업 전문가인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부르신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디베랴 바닷가에 찾아오셔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강조하셨는지도...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이런 '목자'형의 목회자를 만나볼 수 있다면,
그런 목회자와 함께 주님을 섬기는 성도라면 정말로 행복한 양떼들이리라.
'목자'같이 양떼를 돌보는 목회자가 많아지기를 무릎 꿇고 간구드린다.



아굴라와 브리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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